'여러가지 의문이 나를 괴롭힌다. 정말 실제하는 것이란 없고 모든 것이 환상이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이 카펫을 너무 비싸게 산 것이 분명하다.'(우디앨런:깃털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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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 나의 부모님은 케임브리지 대학을 방문했다. 그곳 기숙사 거실에서 몇몇 학생들과 토론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 남편이 된 래널드와 그의 좋은 친구 톰 그리고 다른 학생들이 난로 주위로 모여들었다. 찻주전자는 따뜻한 차가 준비되었다고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소리 내어 끓고 있었다. 사상에 대해 토론하던 중, 힌두교인인 인도 학생이 기독교 사상의 진리에 대해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의 아버지는, 현실적으로 그가 스스로 말하고 믿는 대로 행동하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믿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증명하려고 했다. 아버지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실재만이 있어서 그것이 모든 사물과 사상을 포괄한다고 믿나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질문이 계속됐다. "물론 그 말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똑같다는 뜻이겠죠. 우리에게 보이는 차이점은 단지 일시적인 것이요, 환상에 불과하고요. 그래서 독립된 인격은 존재하지 않지요, 그렇지요? 결국 선과 악이나 잔인함과 비잔인함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말이 아닌가요?"
그가 다시 아버지의 말을 긍정했다. 그러자 함께 있던 다른 학생들은 인도에서 온 친구가 믿는 힌두교 신앙의 의미를 깨닫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톰은 불현듯 그런 신앙이 현실 세계와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논쟁을 하는 대신 끓고 있는 찻주전자를 그 학생의 머리 위로 가져갔다! 모두들 너무나 놀라 어안이 벙벙했고, 인도에서 온 친구의 얼굴은 놀란 나머지 창백해지고 말았다. 그때 톰이 확신에 차서 말했다.
"당신이 믿는 것이 정말 진리라면 잔인함과 비잔임함 사이에 궁극적인 차이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내가 이 끓고 있는 물을 당신의 머리에 붓건 붓지 않건 간에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겠죠?" 얼마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 아무 말 없이 방을 빠져 나갔다. 불행하게도 그가 믿는 것은 실제 삶과 조화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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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깊은 숲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을 잃었다고 상상해 보라. 더구나 폭풍우까지 몰아친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러다 당신은 이내 허름한 오두막집 한 채를 발견하고는 안심을 한다. 창문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당신은 그 집이 분명히 쉴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달려갈 것이다. 문을 두드려 본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누군가를 불러 본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이제 창문 쪽으로 돌아가는 안을 들여다본다. 휴, 안심이다! 그 집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벽난로에는 장작이 타고 있고, 주전자는 달가닥달가닥 소리를 내며 끓고 있다. 식탁 위에는 저녁이 차려져 있고, 가운데에는 갓 구워 낸 파이가 놓여 있다.
자, 이제 과학적인 관찰을 한번 해 보라.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비록 집 안에 아무도 없어도, 당신은 그 집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 누군가가 벽난로에 불을 피워 놓았고, 주전자에 물을 담아 올려놓았으며, 식탁을 차렸고, 파이를 구워 놓았을 테니까.
이런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우리는 곧 어떤 사람이 그 집으로 돌아와 준비되어 있는 저녁을 먹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당신이 그 숲 속에서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당신이 하나님이나 천사를 볼 수 없는 것처럼, 그 집주인도 눈으로는 직접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집주인이 존재할 거라는 증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당신이 그 숲 속의 허름한 집을 상상했던 것처럼 이 세상을 한번 보라. 창조주가 있다는 증거가 보이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확실히 믿을 만한 증거인가? 우주라는 집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느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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