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은 대개 우울증을 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즉 자기가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징계하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울증의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즉 모든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다 뒤집어씌우고 자기 혼자서 책임지려고 하는 것이다.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일단 우울증이라고 하면 육체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대개 사람들은 위나 간이 탈이 나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우울증에 대해서는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것을 대단히 기피하고 싫어하는 것을 보게 된다. (...) 사람들은 그동안 사람 안에 있는 감정의 요소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연애할 때나 필요하지 밥 먹고사는 데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사치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은 중요한 것이다.
사실 우울증의 원인은 '본노'의 감정에 있다. 사람들은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고 자꾸 화를 내고 있다. 특히 내성적이거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분노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표출하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 삼킨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그 분노의 감정이 그 사람 안에 있는 '감정의 연못'을 말려버린다. 예를 들어 지구에는 많은 양의 물이 있어서 지구 표면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것을 막아주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만일 지구 표면에 물이 없으면 밤과 낮의 기온 차이가 달 표면과 비슷하게 섭씨 백 도 이상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 안에는 감정의 못이 있어서 급격한 감정의 상승이나 하강을 막아주어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게 해준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화가 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화가 가라앉게 되고 의심을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차차 마음이 안정을 되찾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지속적으로 화를 내면 이 분노의 감정이 마음 속에 있는 감정의 못을 모두 다 갉아먹어버려서 감정의 변화를 지켜 줄 수 있는 안정 장치가 없어져버리게 된다. 그때부터는 아주 작은 분노도 그의 인격 전체를 지배하게 되고, 아주 작은 의심도 강박관념으로 그를 지배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우울증의 내부적인 현상인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해로운 것은 자주 자기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지속적으로 분노의 감정을 품음으로 감정이 완전히 말라버리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소망도 기쁨도 모두 사라져 버린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모두 감정으로 느끼게 되어 있는데 감정이 모두 다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화를 낸다고 하자. 그리고 그 다음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화를 낸다고 하자. 자꾸 그렇게 할 때 나중에는 화를 낼 일이 없는데도 자동적으로 화가 나며 나중에는 기뻐해야 하는데도 화가 저절로 나버린다. 감정 통제가 자신의 의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 pp 129~131
(...) 그래서 부모들은 청소년의 얼굴이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같다고 말한다. 부모들이 집에서 보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나도 신경질적이고 게르으고 말도 죽으라고 듣지 않는데, 교회나 친구들 사이에서 그 아이는 예의바르고 모범적이며 남을 위하여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아이에게 집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더이상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는 집단(?)인 것이다. 자기가 어떻게 행동하든지 이해하고 용납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 그래서 집안에서 청소년들은 특징은 반항적이며 함부로 행동하는 거친 모습이다. 이것은 더이상 나를 집 안에 가두어 어린아이 취급을 하지 말아 달라는 시위인 것이다. 그 대신 친구들의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하여 그들과 비슷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그들이 자주 듣는 노래를 듣고, 그들이 좋아하는 영화나 탤런트에 관심을 많이 가진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유행이나 문화라는 것이 쉽게 형성되는 것이다. (...)
바로 여기에 청소년들 세계의 모순이 있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면 가정에서 독립할 뿐 아니라 친구들로부터도 어느 정도 독립을 해야 자신의 독자적이니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반대로 집으로부터는 독립을 하지만 같은 또래 집단에서는 더욱 동화됨으로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하기 대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일시적인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자기 식구들이 아닌 제3자인 친구들 속에 깊이 동화되어 그들이 자기르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하는지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라고 보아야 한다.
--- pp 22~23
(...) 그래서 부모들은 청소년의 얼굴이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같다고 말한다. 부모들이 집에서 보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나도 신경질적이고 게르으고 말도 죽으라고 듣지 않는데, 교회나 친구들 사이에서 그 아이는 예의바르고 모범적이며 남을 위하여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아이에게 집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더이상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는 집단(?)인 것이다. 자기가 어떻게 행동하든지 이해하고 용납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 그래서 집안에서 청소년들은 특징은 반항적이며 함부로 행동하는 거친 모습이다. 이것은 더이상 나를 집 안에 가두어 어린아이 취급을 하지 말아 달라는 시위인 것이다. 그 대신 친구들의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하여 그들과 비슷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그들이 자주 듣는 노래를 듣고, 그들이 좋아하는 영화나 탤런트에 관심을 많이 가진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유행이나 문화라는 것이 쉽게 형성되는 것이다. (...)
바로 여기에 청소년들 세계의 모순이 있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면 가정에서 독립할 뿐 아니라 친구들로부터도 어느 정도 독립을 해야 자신의 독자적이니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반대로 집으로부터는 독립을 하지만 같은 또래 집단에서는 더욱 동화됨으로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하기 대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일시적인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자기 식구들이 아닌 제3자인 친구들 속에 깊이 동화되어 그들이 자기르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하는지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라고 보아야 한다.
--- pp 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