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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의 보물상자

미코의 보물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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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340g | 128*188*20mm
ISBN13 9788946420182
ISBN10 894642018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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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도 성을 팔아 돈을 버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매매도 훌륭한 일이야. 자부심을 가져도 돼’라는 허울 좋은 말을 들으면 구역질이 난다. 싱글맘 대부분이 ‘빈곤층’인 이 나라에서 치코와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돈은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낫다. 아니, 있는 편이 훨씬 나은 게 당연하다. 궁핍한 어른은 마음이 피폐해져서 자식에게 화풀이를 한다. 그로 인한 갖가지 사건 사고로 뉴스가 도배되는 세상이다. 나는 그런 인생은 사절이다. 치코는 나와 ‘다른 아이’여야 한다. --- p.22

아무리 괴로워도 주변에서 작은 보물을 찾아 간직하면 누구든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쳐주셨다. “무서웠던 할머니도 좋은 말을 해주셨어요.” “어, 뭔데? 가르쳐줘.” “미코의 손은 고마운 손이야. 너의 두 손은 타인에게 감사 인사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거란다.” “고마운 손이라…….” 나베짱이 굳은살 박인 자기 손을 응시했다. 인생의 전환점에 선 사람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을 것이다. --- p.36


아내는 다이스케보다 미코를 훨씬 더 엄격하게 키우는 것 같다. 미코를 야단칠 때는 옆에서 보고 있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행동에서 미코를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미코가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어느 날 밤 미코가 갑자기 “찌찌 먹고 싶어요” 하면서 울먹인 적이 있다. 그때 아내가 자기 젖꼭지에 벌꿀을 발라두고 실컷 빨게 해주었다. 할미는 젖이 안 나와. 미안해. --- p.51

나의 집요한 질문에도 아내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후후. 그건…….” 아내는 2층에 있는 미코에게 들리지 않게끔 하려는 듯이 자그마한 소리로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 나는 아내의 의도를 듣고 가슴이 벅차올라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거니까.” “…….” “여보, 부탁해요.” “…….” 아직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 p.67

나는 멍하니 생각하며 걸었다. 미코의 장갑은 그물코가 촘촘했다. 태그가 없는 걸 보니 이것도 할머니가 떠준 모양이다. 낙엽처럼 짙은 갈색의…… 별로 예쁘지도 않은 장갑. 나는 여태까지 손으로 뜬 장갑을 껴본 적이 없다. 왠지 궁금해져서 손가락을 슬쩍 넣어보았다. 투박하고 뭔가 촌스러운 감촉. 손을 오므렸다가 폈다가 해보았다. 털실 때문에 손등이 조금 따끔거렸다. 하지만 미코 말대로 따뜻했다. --- p.89

어쩌면 나와 미코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실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실은 복잡하고 갑갑한 가정환경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자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실이다. 그 실이랑은 별개로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애정의 바다’에 갈증을 느껴왔다는 점. 달콤하지만 위험을 내포한 연인 사이의 그런 ‘애정’이 아니라, 농밀하면서도 흔들림이 없는 그래서 안심감을 주는 ‘애정’을 마음속 깊이 원해왔다는 점이다. --- p.138

대인공포증인 내가 전혀 긴장하지 않고 본연의 모습 그대로 대할 수 있는 타인은 아무리 세상이 넓다 해도 미코뿐이다. 미코는 타인의 일에 절대 간섭하지 않고, 타인이 하는 일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분명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흐음, 알겠어. 바이바이” 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손을 흔들 것이다. 그 극단적인 담백함이 대인공포증인 내겐 ‘구원’이자……, 그와 동시에 ‘고통’이었다. --- p.178

미코의 소중한 ‘보물상자’가 뒹굴고 있다. 경첩이 비뚤어져서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다. 지난밤 내가 발로 차서 부서뜨렸다. ‘보물상자’가 부서졌을 때, 미코의 마음도 함께 부서졌다. 내가 아무리 때려도, 난폭하게 범해도, 미코는 비명 하나 지르지 않고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인형처럼 그저 천장만 바라보며 눈물만 주르르 흘렸다. --- p.192

혹시 어머니는 이 편지를 쓰고 싶어서 ‘채소 선물’을 보내는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상자와 마음의 뚜껑을 동시에 닫고 편지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버렸다. 이 많은 채소를 어떻게 한다지? 순간 미코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업소 아가씨로서는 드물게 부지런히 요리를 하는 여자다. 네 살배기 딸 치코 때문이다. 감기 걸린 미코와 한창 자랄 나이인 치코. 무농약 채소가 갈 곳은 정해졌다. 나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골판지 상자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 p.225

“미코는 자기 인생이 마음에 들어?” 어찌된 일인지 마치 타인의 목소리처럼 갈라져 나왔다. 마치 나 자신에게 묻고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으음, 어떨까…….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죽고 싶을 만큼 나쁘지도 않아요. 그보다 나는 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거든요.” “비교하지 않아?” “네. 비교하지 않으면 내 인생도 특별할 건 없죠. 나도 그냥 보통 사람이에요.” “그렇군.” “내 인생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건 내 눈을 훈련시켜온 덕분일 거예요.” --- p.253

세 번째 ‘사랑해’라는 글을 눈으로 읽고 있을 때 시야가 흔들렸다. 다음 순간, 아…… 하면서 엄마 수첩에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급히 옷소매로 닦았다. 볼펜으로 쓴 글자라서 번지지는 않았지만, 얇은 종이가 조금 구겨져버렸다. 내가 태어난 후로 수첩에 기록된 엄마의 ‘오늘의 보물’은 거의 대부분 내가 한 행동이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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