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이탈리아 프리울리 지방에 메노키오라고 불리는 방앗간 주인이 살았다. 그는 딸을 여읠 때 제법 혼수를 마련해 줄 정도로 살았고, 촌장 노릇을 할 만한 수완도 있었다. 그는 촌구석에서는 드물게 글을 읽고 쓸 줄 알았고,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줄도 알았다. 난독이었을망정, 저급하고 값이 싼 것이었을지언정 그는 꾸준히 책을 읽었다.
그의 입에서 자주 불경한 소리가 나왔다.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 - 천지창조와 삼위일체를 부인하며 시쳇말로 다윈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나름의 종교관을 피력했다. 그의 생각은 기독교나 회교나 종교적인 위상이 다른 것은 아니라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그는 교회의 권위를 부정했고 성직자의 가혹한 착취와 부정한 축재를 비난했다. 심지어 온갖 기독교(로마 카톨릭) 의식은 인민 대중으로부터 재물을 뜯어내기 위한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치즈에서 구더기가 나오듯, 신과 인간은 모두 혼돈 속에서 창조되었다고 말했다. 지인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임을 분명히 했다.
누가 보아도 이단이었다. 결국 그는 종교 재판(이단 심문)에 걸려들어 투옥과 방면을 되풀이하다, 이단으로 지목된지 15년 뒤인 1599년 화형당한다. 메노키오는 이웃의 눈에는 별종, 성직자의 눈에는 건방진 녀석이었고 당대 윤리에 비추어 불태워져 마땅한 자였다. 진즈부르그는 평균적인 촌부도 아니고, 전형적인 대귀족도 아닌 인물 - 그러기에 민중 문화와 상층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개인을 통해, 그 경계가 드러내는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역사적 구조체를 추적해나간다.
진즈부르그가 특히 주목하는 지점은 먼저 메노키오가 일상에서 떠들어댄 이야기와 공식석상에서 한 발언 사이의 간극이다. 다음 그의 장서와 그의 발언 사이에는 어떤 틈이 있는지 면멸히 검토한다. 이 간극, 이 틈에 16세기 유럽의 역사적 변동을 볼 수 있는 창이 놓여 있다고 본다.
진즈부르그에 따르면, '역사가는 계량적 엄밀성을 중시하는 물리학자나 수학자보다 몸에 나타나는 징후를 통해 병을 알아내는 의사나 짐승의 발자국과 체취를 따라가 결국 사냥감을 찾아내는 사냥꾼의 모습을 더 닮았다.' 이런 생각 때문이겠지만 진즈부르그의 역사 서술은 소설의 구성을 방불케 한다. 일화가, 한 장면이, 지나고 보면 복선이요 암시이다. 메노키오를 비롯한 인물들은 그 성격이 압축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단 심문 과정은 할리우드 영화문법이 특화한 법정 공방 장면 이상으로 흥미진지하다.
역사가는 16세기의 육중한 교회 문서로 남은 메노키오에게 조용히 말을 건다. 하찮은 문헌과 촌사람들의 증언이 이에 화답한다. 개인의 삶이 구체화되면서, 사회 변동의 실상은 세부가 풍부한 이야기가 된다.
--- 본문 내용 요약
..."심문관님, 제발 제 말에 귀기울여주십시오. 옛날에 한 위대한 군주가 자신의 귀중한 반지를 갖게 되는 사람이 자신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임종을 앞둔 왕은 자신의 반지와 똑같은 다른 두 개의 반지를 더 만들어 세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자신이 왕위 계승자이며 진짜 반지를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반지들은 너무나 비슷하여 진짜를 구분하기가 불가능하였습니다.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아버지 하느님은 기독교인과 터키인 그리고 유대인과 같이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자녀를 가지셨고 그들 각각에게 자신의 계율에 의해 살도록 하셔서 우리는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제가 기독교인으로 태어났으므로 기독교인으로 살기를 원하고 만약 터키인으로 태어났다면 터키인으로 살기를 원했을 이유입니다."...
--- pp. 176~177
... "제가 생각하고 믿는 바에 따르면, 흙, 공기, 물 그리고 불, 이 모든 것은 혼돈 자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는 마치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구더기들은 천사들입니다. 한 지고지선한 존재는 아들이 하느님과 천사이기를 원하였고, 그 수많은 천사들 중에는 같은 시간대에 그 큰 덩어리에서 만들어진 신도 있었지요." 겉으로 보기에도 메노키오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전달되면서 단순화되고 왜곡된 것임에 틀림없다. '혼돈'이라는 어려운 말은 사라지고 정통 교리적인 다른 말, 즉 '태초에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로 대체되었다. 치즈-구더기-천사-위대한 권위-하느님(천사와 인간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으로 이어지는 계열은 치즈-구더기-인간-하느님(인간들 중에 가장 강력한 자)이라는 별도의 계열로 단축되었다.
--- p.185
..."심문관님, 제발 제 말에 귀기울여주십시오. 옛날에 한 위대한 군주가 자신의 귀중한 반지를 갖게 되는 사람이 자신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임종을 앞둔 왕은 자신의 반지와 똑같은 다른 두 개의 반지를 더 만들어 세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자신이 왕위 계승자이며 진짜 반지를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반지들은 너무나 비슷하여 진짜를 구분하기가 불가능하였습니다.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아버지 하느님은 기독교인과 터키인 그리고 유대인과 같이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자녀를 가지셨고 그들 각각에게 자신의 계율에 의해 살도록 하셔서 우리는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제가 기독교인으로 태어났으므로 기독교인으로 살기를 원하고 만약 터키인으로 태어났다면 터키인으로 살기를 원했을 이유입니다."...
--- pp. 176~177
... "제가 생각하고 믿는 바에 따르면, 흙, 공기, 물 그리고 불, 이 모든 것은 혼돈 자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는 마치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구더기들은 천사들입니다. 한 지고지선한 존재는 아들이 하느님과 천사이기를 원하였고, 그 수많은 천사들 중에는 같은 시간대에 그 큰 덩어리에서 만들어진 신도 있었지요." 겉으로 보기에도 메노키오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전달되면서 단순화되고 왜곡된 것임에 틀림없다. '혼돈'이라는 어려운 말은 사라지고 정통 교리적인 다른 말, 즉 '태초에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로 대체되었다. 치즈-구더기-천사-위대한 권위-하느님(천사와 인간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으로 이어지는 계열은 치즈-구더기-인간-하느님(인간들 중에 가장 강력한 자)이라는 별도의 계열로 단축되었다.
--- p.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