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의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의 매트릭스를 작동시키는 지배적인 사조라면, 당연히 교육 문제에 파고들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거대한 사기극』 178쪽에,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용 교과서 속에 상당한 자기계발 이데올로기가 숨어들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자기계발 사상은 어린이들이 보는 동화와 교과서에 영향을 미칩니다. 국정교과서 파동도 당연히 이와 연결될 것입니다. 어느 정치인은 청년들이 ‘헬조선’을 말하게 되는 원인을 교과서의 좌경화에서 찾습니다. 이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게 만든 사회 구조에는 눈을 감게 하고, 스스로의 노력과 열정의 부족에만 눈을 돌리게 하겠다는 것이지요. ---「‘진실’에는 ‘진실’이라는 값어치가 있다 _ 일문학자 박유하」중에서
종편에서 품격 있는 평론을 기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원인은 시청률에 목매달고 있는 방송사 쪽에 있지만, 거기에 편승한 ‘철학 없는’ 평론가들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평론가의 자격을 규제할 어떤 방법이 있지도 않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정치평론 시장에 나온 온갖 상품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소비자의 안목만이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미디어 정치 시대에 여러 미디어를 통해 활동하고 있는 모든 평론가들은 작든 크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그것이 역사와 우리 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정치가 공적 영역이듯이 정치평론가들은 정치가 공적 영역의 결정을 둘러싼 권력 투쟁 또는 권력 게임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드러내 주어야 합니다. 저는 정치평론을 통해 내 나름으로 광의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비자의 말대로 정치가 ‘법法?술術?세勢’로 이루어져 있다면 저는 정치평론이라는 법을 통해 내 정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기려면 중간층을 잡아라 _ 정치평론가 고성국」중에서
‘만화는 예술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부터 만화는 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치하고 촌스럽지만 우리가 지금껏 즐겼던 것이 예술이었는데, 지금까지 해 오던 만화를 예술이라 부르기 민망해하면서 오히려 대중과는 멀어지는 작품이 나오는 거죠. 어떤 장르가 됐든 예술은 대중성과 재미를 포함해야 하고, 만화는 그걸 더 잘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저의 딜레마 역시 인터뷰도 자주 하고 ‘먹물’들은 좋아하는데,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겁니다. 상징이나 은유가 멋있기는 하지만 누가 보느냐에 따라 대중성이나 전달의 한계가 있죠. 그래서 훌륭한 ‘작품’이 아니라 ‘전달’ 효과가 극대화된 재미있으면서도 노골적인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만화는 ‘예술’이 되면서 망했어요 _ 만화가 최규석」중에서
철학은 ‘꼼꼼히 따져 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걸 비판 정신이라고 하는데, 논술의 본래 취지는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고, 글을 쓰게 하고, 합리적 비판 사고를 키워 주는 것입니다. 거기서 얻어지는 비판적 사고의 향상이 논술 목적이죠. 논술 고사는 고전의 제시문을 놓고 오늘의 삶이나 사회와 연관을 지어 보고 자신의 생각을 개진해 보라는 거라서, 철학 시험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고3은 수능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수능이 끝나고 5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방대한 고전을 읽고 논술을 준비해야 합니다.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데 그런 무리는 ‘입시 논술’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오는 거지, 논술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입시 논술’의 폐해는 아주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시키지 않으면 아무도 고전을 읽지 않게 되죠. ---「철학·문학·영화, 경계를 가로지르는 저술가 _ 자유저술가 김용규」중에서
언어로 사고하는 사람들, 그것을 문서의 형태로 남긴 사람은 다 작가죠. 다시 말해, 작가는 자신의 사고를 언어와 문서의 형태로 남긴 사람, 그러기 위해 사고와 언어를 갈고 닦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작가가 되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사항입니다. 그런 뜻에서 작가는 굉장히 폭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고, 오히려 소설가와 시인만을 작가라고 지칭하는 것은 매우 협소한 개념이죠. 늘 말하지만, 한국에는 문학의 자리가 너무 큽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시로 치장할 수 있는 권리가 자신들에게 당연히 주어진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시인들이 그렇습니다. 조선시대에 과거를 해서 장원급제하고 벼슬에 오르는 사대부 의식이 그대로 있는 거죠. 그런데 더 재미난 것은, 한국에서 문학 하면 자동적으로 시와 소설을 가리킨다는 거죠. 저는 그걸 ‘장르 피라미드’라고 하는데, 희곡은 그 피라미드의 가장 밑변, 혹은 장르 피라미드의 열외라고까지 할 만큼 소외된 장르입니다. 잘나가는 시인과 소설가들의 목소리는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할 수 있지만, 극작가는 있는 듯이 없습니다. 저는 어디서나 대담을 볼 수 있는 소설가와 시인보다, 들리지 않는 그들의 목소리를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장정일에게 묻는다: 내가 만난 작가가 모두 내가 되고 싶은 사람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