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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選 맛지마 니까야 (상)

精選 맛지마 니까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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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72쪽 | 153*224*30mm
ISBN13 9788968492655
ISBN10 896849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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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중표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졸업, 철학박사, 불교학연구회장 역임,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전남대학교 호남불교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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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본법문(根本法門) 경
(1. Mulapariyaya-sutta)

해제
이 경은 한역(漢譯) 『中阿含經』 106. 想經에 상응하는 경이며, 별행경(別行經)으로는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낙상경(樂想經)』이 있다.
근본법문(Mulapariyaya)이라는 이름의 이 경을 『맛지마 니까야』의 편집자가 첫 경으로 선정한 것은 『맛지마 니까야』의 편집 의도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맛지마 니까야』의 편집자는 이 경을 서두에 배치함으로써 『맛지마 니까야』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의 주제는 ‘부처님께서 가르친 모든 가르침의 근본’이다. 그렇다면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는 이 경에서 “무지한 범부들은 ‘sanjanati’하고, 열반을 추구하는 수행자와 열반을 성취한 아라한과 정각을 성취한 여래는 ‘abhijanati’한다.”고 말씀하신다. ‘sanjanati’하지 말고 ‘abhijanati’하라는 것이 ‘부처님께서 가르친 모든 가르침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sanjanati’는 무엇이고, ‘abhijanati’는 무엇인가?
‘sanjanati’는 ‘하나의, 함께, 같은’의 의미를 지닌 접두어 ‘sam’과 ‘알다’라는 의미의 동사 ‘janati’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함께 알다. 같은 것으로 알다. 하나로 알다’이다. ‘함께 알고, 같은 것으로 알고, 하나로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대상을 개념(槪念)으로 인식한다는 말이다. ‘책상’이라는 개념은 세상의 모든 책상을 ‘하나의’ 대상으로, ‘같은’ 대상으로 삼고 있다. 세상에는 똑같은 책상이 하나도 없지만, 우리는 모든 책상을 함께 싸잡아서, ‘책상’이라는 하나의 동일한 개념을 사용하여 같은 것으로 인식한다. 이와 같이 어떤 대상을 ‘개념’을 가지고 인식하는 것이 ‘sanjanati’이다. 이 책에서는 이것을 ‘개념적으로 인식하다.’로 번역했다. 오온(五蘊)의 상(想), 즉 ‘sanna’는 ‘sanjanati’의 명사형으로서 ‘개념적으로 인식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현대적인 의미로는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이성(理性)’이다. 이 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이성적이고 개념적인 인식을 중생들의 잘못된 인식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abhijanati’는 ‘~에 대하여, 향하여, 두루’의 의미를 지닌 접두어 ‘abhi’와 ‘알다’라는 의미의 동사 ‘janati’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에 대하여 알다. 두루 알다.’이다. ‘~에 대하여 안다.’는 것은 ‘대상을 직접 몸으로 상대하여 체험적으로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컴퓨터를 안다.’라고 할 때, 컴퓨터를 개념적으로 아는 것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은 앎의 내용이 다르다. 눈앞에 있는 컴퓨터를 보고, 그것이 책상이 아니라 컴퓨터라는 것을 아는 것은 컴퓨터를 컴퓨터라는 이름, 즉 개념을 가지고 인식한 것이다. 이것이 ‘sanjanati’다. 우리가 컴퓨터를 개념적으로 안다고 해서 컴퓨터에 대하여 진정으로 아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컴퓨터에 대한 진정한 앎이다.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알기 위해서는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실습을 해야 한다. 우리는 직접 컴퓨터를 손으로 만져보고, 사용법에 따라 실습을 함으로써 컴퓨터가 어떤 것인 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이 ‘abhijanati’이다. 직접 몸으로 대상을 상대하여 체험을 통해 그 대상에 대하여 아는 것이 ‘abhijanati’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것을 ‘체험적으로 인식하다.’로 번역했다. ‘신통(神通), 승지(勝智)’로 한역된 ‘abhinna’는 ‘abhijanati’의 명사형으로서 ‘체험적으로 인식하는 지혜’를 의미한다.
범부(凡夫)든, 수행자나 아라한이든, 인식의 대상은 다르지 않다. 부처님 당시의 인도인들은 이 세계가 물질적으로는 사대(四大), 즉 땅(地), 물(水), 불(火), 바람(風)이라는 존재로 이루어져 있고, 그곳에 생명을 지닌 유정(有情)들과 여러 천신들이 살고 있으며, 하늘 위에는 범천(梵天)을 비롯하여 수많은 천상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존재들에 대하여 개념적으로 인식하지 말고, 체험적으로 인식할 것을 가르쳤다. 부처님께서 가르친 것은 이 세계를 초월한 그 어떤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존재들에 대하여 바르게 인식할 것을 가르쳤다. 이것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의 근본이라는 것을 이 경은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한때 세존께서는 욱깟타(Ukkattha)의 쑤바가(Subhaga) 숲 속에서 가장 큰 쌀라(sala)나무 아래에 머무시었습니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습니다. 비구들은 “존경하는 스승님!”하고 대답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모든 가르침의 근본이 되는 법문을 설하겠소. 잘 듣고, 깊이 생각하도록 하시오. 내가 이야기하겠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어!”라고 그 비구들이 대답했습니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성인(聖人)을 무시하고, 성인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인의 가르침에서 배우지 못하고, 참사람(正士)을 무시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서 배우지 못한 무지한 범부는 땅(地)을 땅으로 개념적으로 인식한다오. 땅을 땅으로 개념적으로 인식하고 나서 땅을 생각하고, 땅에 대하여 생각하고, ‘땅이다.’라고 생각하고, ‘땅은 나의 소유(所有)다.’라고 생각하고, 땅을 애락(愛樂)한다오.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는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오.
비구들이여, 마음의 평온을 성취하지 못한 유학(有學) 비구는 누구나 더할 나위 없는 행복(瑜伽安穩)을 희구하며 살아간다오. 그는 땅(地)을 땅으로 체험적으로 인식한다오. 땅을 땅으로 체험적으로 인식하고 나서 땅을 생각하지 않고, 땅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땅이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은 나의 소유(所有)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을 애락(愛樂)하지 않는다오.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는 정확하게 알고자하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오.
비구들이여, 비구로서 번뇌(漏)를 멸진(滅盡)하고, 수행을 완성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목적에 도달하여 존재의 결박(有結)을 끊고 바른 지혜를 갖추어 해탈한 아라한은 누구나 땅(地)을 땅으로 체험적으로 인식한다오. 땅을 땅으로 체험적으로 인식하고 나서 땅을 생각하지 않고, 땅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땅이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은 나의 소유(所有)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을 애락(愛樂)하지 않는다오.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는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오.
비구들이여, 비구로서 번뇌(漏)를 멸진(滅盡)하고, 수행을 완성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목적에 도달하여 존재의 결박(有結)을 끊고 바른 지혜를 갖추어 해탈한 아라한은 누구나 땅(地)을 땅으로 체험적으로 인식한다오. 땅을 땅으로 체험적으로 인식하고 나서 땅을 생각하지 않고, 땅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땅이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은 나의 소유(所有)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을 애락(愛樂)하지 않는다오. 그 까닭은 무엇인가? 탐욕(貪)이 지멸(止滅)하여 탐욕에서 벗어났고, 분노(瞋)가 지멸(止滅)하여 분노에서 벗어났고, 어리석음(癡)이 지멸(止滅)하여 어리석음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오.
비구들이여, 아라한이며 등정각(等正覺)인 여래(如來)는 땅(地)을 땅으로 체험적으로 인식한다오. 땅을 땅으로 체험적으로 인식하고 나서 땅을 생각하지 않고, 땅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땅이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은 나의 소유(所有)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을 애락(愛樂)하지 않는다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여래(如來)는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오.
비구들이여, 아라한이며 등정각(等正覺)인 여래(如來)는 땅(地)을 땅으로 체험적으로 인식한다오. 땅을 땅으로 체험적으로 인식하고 나서 땅을 생각하지 않고, 땅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땅이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은 나의 소유(所有)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땅을 애락(愛樂)하지 않는다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여래는 기쁨이 괴로움의 뿌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유(有)로부터 생(生)이 있고, 유정(有情)의 노사(老死)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오. 비구들이여, 그래서 ‘여래는 어떤 경우에도 갈망하는 마음(愛)을 지멸(止滅)하고, 소멸하고, 단념하고 포기하여 무상(無上)의 등정각(等正覺)을 몸소 깨달은 등정각(等正覺)이다.’라고 나는 말한다오.

[물(水;apa), 불(火;teja), 바람(風;vaya), 유정(有情;bhuta)들, 천신(天神;deva)들, 생주(生主;pajapati), 범천(梵天;brahma:色界初禪), 광음천(光音天;abhassara:色界二禪), 변정천(遍淨天;subhakinna:色界三禪), 광과천(廣果天;vehapphala:色界四禪), 승자천(勝者天;abhibhu:色界四禪), 공무변처(空無邊處;akasancayatana), 식무변처(識無邊處;vinnanancayatana), 무소유처(無所有處;akincannayatana),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nevasannanasannayatana), 보인 것(dittha), 들린 것(suta), 사량(思量)된 것(muta), 인식된 것(vinnata), 단일성(單一性;ekatta), 다양성(多樣性;nanatta), 일체(一切;sabba), 열반(涅槃;nibbana)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세존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에 만족하고 기뻐했습니다.


2. 일체의 번뇌(漏) 경
(2. Sabbasava-sutta)

해제
이 경은 한역(漢譯) 『中阿含經』 10. 漏盡經에 상응하는 경이며, 『增一阿含經』 40. 6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별행경(別行經)으로는 안세고(安世高)의 『一切流攝守因經』이 있다. 이 경의 주제는 일체의 번뇌(漏)를 막는 법이다. 번뇌(漏)로 번역한 ‘asava’를 한역(漢譯)에서는 ‘漏’로 번역했다.
‘asava’는 ‘흐르다’는 의미의 동사 ‘asavati’의 명사형으로서 ‘흐름’을 의미한다. ‘asava’는 원래는 고행주의(苦行主義)의 용어로서 자이나교에서도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자이나교의 교리에 의하면, 우리의 영혼인 지와(Jiva;命)는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존재로서 전지전능(全知全能)하며, 지고한 행복의 상태에 있다. 그런데 악행(惡行)을 하면 카르마(karma;業)라는 물질이 흘러 들어와서 고통을 일으킨다. 이렇게 외부에서 카르마(karma)가 지와(Jiva)의 내부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자이나교에서는 카르마의 유입(流入)이라는 의미에서 ‘asava, sk. asrava’라고 불렀다. 자이나교에서는 이와 같이 고통을 주는 것이 외부에서 유입된다고 보기 때문에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무소유(無所有)라는 5가지 계행(戒行)을 통해 카르마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고 가르치며, 이미 유입된 카르마는 고행(苦行)을 통해 소멸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부처님께서도 ‘asava’를 괴로움을 일으키는 요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지만, 그 의미는 자이나교와 약간 다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괴로움이 무명(無明)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무명의 상태에서 지각활동을 하면, 지각의 대상에 대하여 탐욕이 생긴다. 이것을 무지한 지각활동에서 탐욕이 흘러드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 누(漏), 즉 ‘asava’이다. 불교수행은 이러한 누(漏)가 흘러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누(漏)가 흘러들지 않게 하려면 누(漏)가 흘러드는 문(門)을 잘 지켜야 한다. 누(漏)는 우리가 지각활동을 할 때 흘러든다. 그러므로 지각활동을 잘 지켜봐야 한다. 6근(根)을 문(門)이라고 부르고, 이것을 수호(守護)하라고 하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이 경에서는 이러한 누(漏)가 흘러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경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범부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함으로써 갖게 되는 ‘자아(自我)’에 대한 사견(邪見)들이다. 이 경에서는 ‘자아’에 대한 사견(邪見) 6가지를 이야기한다.

(1) 나의 자아(自我)는 존재한다. (atthi me atta.)
(2) 나의 자아(自我)는 존재하지 않는다. (natthi me atta.)
(3) 나는 자아(自我)를 가지고 자아(自我)를 개념적으로 인식한다. (attana va attam sanjanami.)
(4) 나는 자아(自我)를 가지고 비아(非我)를 개념적으로 인식한다. (attana va anattam sanjanami.)
(5) 나는 비아(非我)를 가지고 자아(自我)를 개념적으로 인식한다. (attana va anattam sanjanami.)
(6)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에서 선악업(善惡業)의 과보(果報)를 받는 나의 이 자아는 ... 영원히 그대로 머물 것이다. (yo me ayam atta vado vedeyyo tatra tatra kalyanpapakanam kammanam vipakam patisamvedeti, so kho pana me ayam atta ... sassatisamam that’ eva thassati.)

이 6가지 사견(邪見)은 단순한 6개의 견해가 아니다. 이것은 1. 근본법문(根本法門) 경에서 범부들의 인식방법이라고 했던 ‘sanjanati’, 즉 개념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견해들이다. 여기에서 자아(自我)로 번역한 ‘atta’는 우파니샤드에서 모든 존재의 본질로 이야기하는 아트만(Atman)의 팔리어(Pali) 표기이다. 우파니샤드에서 우리의 진정한 자아(自我)라고 이야기하는 아트만은 불변의 영속적인 실체이며, 여기저기 여러 세상을 윤회하면서 선악업(善惡業)의 과보(果報)를 받는 행위와 인식의 주체이다. 이것이 사견(邪見) (6)의 내용이다. 브라만교가 지배하던 부처님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아트만이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참된 자아(自我)라고 믿었다. 그러나 브라만교를 부정하고 새롭게 출현한 사상가들은 대부분 그러한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했다. 사견(邪見) (1)과 (2)는 이와 같은 당시의 사상적 대립을 보여준다.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는 (2)의 입장에서는 영원히 변치 않고 존재하면서 윤회하는 아트만의 존재를 입증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트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1)의 입장에서는 아트만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 (3), (4), (5)는 (1)의 입장에서 아트만의 존재를 입증하는 방법이다. 이 경에서는 아트만의 존재를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트만의 존재를 인식하는 방법이 ‘sanjanati’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번역에서 ‘sanjanati’를 ‘지각하다. 인식하다.’의 의미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렇게 ‘sanjanati’를 ‘지각하다. 인식하다.’의 의미로 해석하면 (3), (4), (5)의 의미는 모호해진다. (3)은 팔리어로 ‘attana va attam sanjanami.’인데, ‘attana’는 ‘atta’의 구격(具格)이고, ‘attam’은 대격(對格)이다. 따라서 ‘sanjanati’를 ‘지각하다. 인식하다.’의 의미로 번역하면 ‘나는 아트만을 가지고 아트만을 지각한다.’가 된다. (4)와 (5)도 같은 형식의 문장이다. 이런 의미로 이 경을 읽은 독자들은 (3), (4), (5)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3), (4), (5)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sanjanati’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역으로 ‘sanjanati’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3), (4), (5)의 논리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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