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술과 음식을 먹고 고성이 오가는 도박장, 레스토랑, 여인숙에서 신곡을 발표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청중이 조용히 앉아 음악을 감상한다는 건 생소한 일이었다. 그는 이제 막 유럽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피아노라는 악기에 주목하고, 비교적 낯선 음악 형식인 피아노 협주곡을 선보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이 협주곡들은 아주 쉬운 것들과 아주 어려운 것들을 이어주는 즐거운 징검다리입니다. 지루함 없이 귀에 아주 선명하고 기분 좋게 들어와요. 전문가들이 좋아할 만한 악구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지만 악구들을 분석할 능력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 들어도 왠지 모르게 그냥 아름답게 들리도록, 그렇게 썼어요.” --- p.16
베토벤은 빈에서 가장 많은 피아노를 망가뜨린 피아니스트였다. 연주에 도취해 피아노를 때려 부수듯 두들기면 줄이 끊어지고 해머가 망가졌다. 첫 화음을 치면서 줄을 6개나 끊어뜨린 적도 있었다. 그의 제자 체르니는 “그 시대의 약하고 불완전한 피아노포르테는 그의 거인적인 연주 스타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면서 “베토벤의 손은 털로 수북하게 뒤덮였고, 손가락 끝부분은 대단히 뭉툭하며, 10도를 다 짚을 수 없는 크기였다. 그 손으로 많은 사람의 눈물을 자아냈지만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그의 화음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고 전한다. --- p.19
오케스트라 공연이라면 약간 뒤쪽 좌석이 명당이다. 무대와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의 소리가 넓게 퍼지면서 조화로운 음향을 만끽할 수 있다. 지나치게 무대와 가깝거나 좌우로 치우치면 여러 악기의 소리가 뒤죽박죽 섞여서 들린다. 게다가 공연 내내 고개를 젖히고 무대를 올려다봐야 한다. 청각보다 시각을 중시한다면 무대 뒤편의 합창석도 훌륭한 선택이다. 청중을 등지고 서 있는 지휘자의 표정이 보이는 유일한 좌석이다. 게다가 입장권도 가장 싸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에서는 합창석이 가장 빨리 매진된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를 거장의 손짓과 몸짓, 표정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0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예술에 재능이 있기를 내심 바랐다. 어쩌다 보니 국어 교사가 되었지만 학창 시절엔 성악가를 꿈꾸었다. 취미 삼아 배운 피아노는 수준급이었다. 결혼하고는 교회 성가대 반주를 맡았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도 주일이면 건반을 두드렸다. 열음이는 말수가 적었다. 클수록 낯가림이 심해졌다. 가족 이외엔 다른 사람을 만나려 들지 않았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이내 울었다. 바깥에 나가 노는 대신 집에서 읽지도 못하는 책을 끼고 살았다. 두 돌 반에 한글을 깨쳤다. 그때부터 아이의 손엔 언제나 책이 들려 있었다. --- p.45
국제 콩쿠르는 모든 게 달랐다. 지금까지 나갔던 대회는 커튼 앞에서 혼자 연주하면 커튼 뒤에 앉은 심사위원들이 10분도 안 듣고 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국제 콩쿠르는 1차 때는 25분, 2차 때는 40분을 연주하고, 3차 때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방식이었다. 1차만 통과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엉겁결에 3차까지 올라갔다. 나는 슈만의 [아베크 변주곡], 리스트의 [꼽추의 춤],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4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K.467] 등을 연주했다. --- p.49
손열음은 무언가를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 자유로운 성격이 음악에도 자연스럽게 배어났다. 스승은 그런 제자의 즉흥적 표현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지킬 건 지키는 기본 틀과 원칙을 가르쳤다. 손열음은 김대진을 만나면서 피아노 테크닉뿐 아니라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눈을 떴다. 그때부터 음악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 p.52
(피아노에 대한 재능) 사실은 굉장히 늦게 그런 생각을 가졌어요. 솔직히 전혀 모르고 있다가, 대학교에 갔는데 제가 남들에 비해 악보를 빨리 본다는 걸 알았어요. 중학교도 일반 중학교를 나왔고, 중학교 졸업하고 바로 대학교에 갔으니까요. 다른 친구들이 연습할 때 어떻게 하는지 몰랐죠. 대학에 와서 악보를 보는데, 동기 언니가 저한테 “너 지금 처음 치는 거야?”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왜요, 이상해요?”라고 답했던 게 기억나요. 사람들이 제가 비정상적으로 악보를 빨리 보는 거라고 해서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 그것도 악보를 빨리 본다는 거지 잘 친다는 얘기는 아니니까. 눈이 크다고 예쁘다는 건 아니잖아요. 악보는 잘 보지만 피아노를 잘 친다는 생각은 거의 안 했던 것 같아요. --- p.75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을 보며)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다 좋은 거예요. 첫째로 클래식 시장의 파이를 확 넓힌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좋고, 둘째로는 제일 권위 있는 콩쿠르 중 하나에서 1등을 했으니까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콩쿠르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다음 단계로 진입했으면 좋겠는데, 성진이가 큰일을 했다고 봐요. --- p.81
(연주 중 몰입)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유체 이탈해서 내가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장면 있잖아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순간이 그런 식으로 내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거든요.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건 고행인데, 그 순간엔 육체가 완전히 자유로운 느낌인 거죠. --- p.87
(클래식의 가치) 저도 많이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이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많은 발전이 이뤄진 음악이 있었나 싶어요. 예를 들면 국악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만 계속해서 형태가 변해 오지는 않았잖아요. 그런데 서양 음악은 200~300년 사이에 바흐에서 쇼스타코비치까지 말도 안 되게 진화했거든요. 클래식 음악은 다른 문화와 비교할 때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모든 사상과 세계관을 담아 왔기 때문에 고전이라고 불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 p.94
누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물으면 답하는 곡이다. 600여 개의 가곡을 남긴 슈베르트는 멜로디 작곡가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8세기 말까지의 가곡관이 단지 시詩가 잘 전달되도록 하는 반주의 개념이었다면 슈베르트는 시의 해석가였다. 손열음의 표현에 따르면 종종 대단치 않은 시마저도 천상의 선율로 바꿔 놓았다. 슈베르트 가곡에서의 피아노 파트는 단순히 시의 운율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개되는 게 아니라 전주, 간주, 후주를 통해 성악 파트와 동등하게 독자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도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곡이다. --- p.118
스승의 지도에 따라 피아노를 치지 않을 때도 손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늘 공이나 밥그릇 같은 것을 잡고 있어야 했다. 손가락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이밖에도 손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일본산 도구들을 사용했고, 한 손가락씩 따로따로 움직이도록 하는 악력기도 썼다. 이남주는 피아노는 손으로만 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민다고 할 때 발끝부터 힘을 주고 미는 것처럼 온몸의 근육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느냐가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을 결정한다.
--- 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