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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오페라

비바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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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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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2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07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8933268
ISBN10 8988933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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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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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구 flypaper@yes24.com
노동법을 전공한 법학자로서의 행보뿐 아니라, 인문, 예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필력을 통해 르네상스적 인물이라는 평을 획득한 저자는 귀족문화로 대표되는 오페라를 두고 `음악의 정치성과 사회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오페라이다'고 진술한다.

“지금 한국에서 오페라를 비롯한 서양음악이 일부 부유층이 누리는 환상적 고급오락의 대명사인 양 오해되고 있는 점도 그러한 천민자본주의의 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오페라를 시작한 모차르트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당시로서는 비참한 환경에서 살았던 음악노동자에 불과했다. 모차르트는 천재였기 때문에 일찍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생활의 비참함으로 인해 일찍 죽었다.”

저자의 시각에 따르면 모차르트를 비롯한 유수의 음악인들은 모두 `음악노동자'라는 명함을 지닌다. 이는 『내친구 빈센트』, 『오노레 도미에』 같은 전작에서 이미 고흐나 고야 등을 노동자 화가라고 칭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요지는 예술 작품을 노동의 산물인 생산품이나 상품과 같은 것으로 파악하자는 것. 예술 작품을 노동의 결과로 냉정하게 짚어 보는 과정을 통해서 예술 작품에 드리운 환상을 제거하고 사회적 리얼리티를 확보해, 특권층에 부여된 예술의 향유권을 돌려 받자는 것이다.

저자가 오페라의 대중적인 향유를 위해 집중한 과정은 `오페라 사회사'. 이른바 사회적인 맥락에서 오페라의 시대정신을 읽어내야만, 정신적 소산임과 동시에 사회적 체험의 표현인 오페라, 혹은 음악과의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함을 말한다.

이 책은 문학이나 미술 같은 여타 장르와 대동소이하게 오페라를 그 시대의 정치, 사회의 산물이자 반영으로 파악하여 계몽, 혁명, 민족, 자유, 국가, 민중, 여성, 현실, 민주주의라는 9개의 기본 개념하에 오페라의 사회사를 정리해낸다. 이 과정에는 <호프만 이야기>, 거쉰의 <포기와 베스>,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같이 오페라의 현대적 소산인 오페레타나 뮤지컬, 혹은 오페라에 버금가는 대표적인 작품 또한 언급된다.

아쉬움이 커서였겠지만, 저자가 지적하는 오페라 책에 대한, 나아가서 음악 책 전체의 시선에 대한 부족함의 질타는 신랄하기까지 하다. 하나같이 작곡가의 생애나 작품의 내용, 줄거리 및 초연의 역사, 가수나 지휘자에 대한 에피소드, 음반에 대한 소개에 머문다는 아쉬움은 익숙해졌을 만큼 지긋지긋할 정도여서 안타깝다. 그 당시의 사회 현실에 대한 설명이나 작품의 사회사적 의의를 찾기는 힘겹기만 하다. 음악 자체의 역사만 있지 음악을 둘러싼 현실 이야기가 없음은 둘째 치더라도, 음악가의 반 이상이 독일인으로 채워져 있는 상황에서, 사랑이야기, 것도 왜 여차하면 불멸로 나아가는가에 대한 소박한 의문이자 문제제기가 이 책이 씌어진 의도임은 무릇 특별할 것이다.

이 책은 오페라의 역사와 나란히 거론되었던 수많은 고유명사에 대한 사전적 설명 아니라, 오페라의 대중적 확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선 만큼 오페라를 하고 보는 사람들이 자기 시대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저자의 권유는 고압적이지 않고 나긋나긋하기만 해서 흐뭇하다.

“한때 68혁명의 여파로 인해 배격되어야 할 기성 고급예술의 하나로 멸시되었던 오페라. 현재의 범세계적인 오페라 붐은 경제력의 확대와 정치적 진보주의의 퇴조에 따른 것이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18~19세기의 오페라 자체가 반드시 국가나 자본의 권력만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대중적인 오페라의 왕 베르디의 작품조차 소외된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을 보내며 억압하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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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계속 혁명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어느 혁명의 경우도 그렇듯이 곧 반동을 초래한다. 1814년 구체제로 돌아가자는 빈회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귀족사회를 완전히 부흥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후 오페라는 빈회의로부터 제1차대전 사이의 1백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빈회의 50년 전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그리고 그 25년 전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시민혁명에 의해 세상의 중심은 귀족계급에서 시민계급으로 전환되었다.
혁명 전에는 왕후 귀족이 개인 소득에서 음악가와 음악회를 지원했으나 이제는 시민이 낸 세금을 통해 지원하는 체제로 변했다. 그래서 교향악단도 오페라단도 국립 또는 시립의 공공적 조직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그 변모의 중심은 교향악단이 아니라 오페라단이었음을 우리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도 다수 있다고 하는 바그너 숭배자들은 바그너에 대한 최대의 비난인 그의 작품이 히틀러의 제3제국에 의해 문화적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 점을 부정할 것이다. 암흑 같은 어둠 속에 횃불이 타오르고 나치 깃발이 휘날리는 대집회장에서 광란의 히틀러 연설이 끝나면 바그너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나오는 바그너 음악과 함께 폭격을 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히틀러는 바그너를 열광적으로 좋아했다. 특히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의 험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선원들의 합창, <탄호이저> 서곡에 나오는 진군의 나팔소리, 전쟁의 여신인 <발퀴레>와 <로엥그린>의 전투 장면은 전쟁광인 히틀러를 열광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듯이 바그너의 작품이 그 의도와 달리 나치스에 의해 악용된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 속에 그러한 이용을 가능하게 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왜냐하면 바그너의 사상과 저작, 특히 만년의 그것이 공공연히 노골적으로 반유태주의와 인종주의를 드러내고 있고, 1870년대의 바그너와 제3제국을 연결하는 문화적, 정치적 전통이 사실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그너는 흔히 말해지는 것과 달리 명백히 정치적인 인간이었다. 그의 정치성을 부정하고 음악성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바그너가 1848년 혁명에 참여하여 11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는 것도 예술적 관심 때문이라고 설명하나, 납득하기 어렵다.
프랑스 혁명에 이어진 정치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제국주의와 그것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문제였다. 흔히 음악은 비정치적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그 반대로서 음악은 민족적 동질성을 창출하고 민중을 민족으로 묶는 것에 중심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 그 어떤 예술보다도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2세기간의 음악에 민족주의만큼 심각한 영향을 끼친 것은 없었다. 민족주의 음악이라고 부를만한 계열에는 뒤에서 보는 베버부터 바그너, 베를리오즈에서 바르토크, 쇼팽에서 쇼스타코비치까지 수많은 작곡가가 포함된다. 그들은 자기 민족의 음악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했다.
러시아의 글링카나 무솔그스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체코의 스메타나 등의 경우에 더욱 분명하다. 그들은 모두 독일식 음악의 영향에 눌려 처음에는 개성 없는 작품들을 작곡했으나 그후 자신의 민족과 민족음악을 발견하면서 음악적 개성을 찾았다.
먼저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그 후 러시아와 체코에서 오페라는 민족음악과 민족의식의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명백하게 정치적인 활동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오페라 극장은 정치적 감정을 표명하는 곳이 되었고 애국적인 아리아나 합창의 엥콜이 법에 의해 금지된 정치적 시위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했다. 따라서 오페라극장에서 정치를 배제해야 한다거나 배제함이 옳다고 하는 주장은 적어도 19세기의 이탈리아나 체코에서는 바보 같은 소리에 불과했다.
베르디는 1839년 처녀작인 <산 보니파쵸의 오베르토Oberto, Conte di San Bonifacio>를 스칼라극장에서 상연하여 성공을 거둔다. 그 앞에 <로체스텔>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었으나 분실되었다. 다음 해 <하루만의 임금님, 거짓 스티니스라오Un giorno di regno, ossia Il finto Stanislao>(1840)가 실패로 끝나 오페라 작곡을 포기할 정도에 이르렀으나 제3작 <나부코Nabucco>(1842)의 대성공으로 재기했다.
바빌로니아 왕 나부코를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힌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황과 심정을 절실히 묘사함으로써 당시 오스트리아의 압정 하에 있던 밀라노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희망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이탈리아는 혁명과 반동의 악순환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폴리의 반란은 1820년에 진압되었고 그 다음 해 터진 피에몬테의 반란도 억압당했다. 1831년 교황령에서 반란이 터지자 교황은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여 그것을 진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부코>에서 울려퍼진 헤브라이인 포로들의 우렁찬 합창은 이탈리아의 자유를 위한 음악으로 이탈리아 전역에 울려 퍼졌다.
<나부코> 상연 이듬해인 1843년 베르디는 십자군전쟁을 소재로 한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 I lombardi alla prima crociata>를 상연했다. 십자군이 '오늘 성지는 우리의 차지가 될 것인가?'라는 절규에 관중들이 환호하여 최초의 상연은 중단되고 말았다.
경찰은 몇 번이나 요구된 앵콜을 저지할 수 없었다. 당시 앵콜은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누구나 롬바르디아 십자군이 당시의 이탈리아인이고 사라센은 오스트리아로서 그들이 이탈리아를 분열시켰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나폴리, 교황령, 토스카나에서 봉기한 연합반란군은 패배했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불러일으킨 바스티유 감옥 습격 3년 전에 초연된 최초의 현대 오페라였다. 이전에도 그런 환상의 화해 결혼을 주제로 한 오페라가 있었으나 <피가로의 결혼>은 평민의 승리와 귀족의 패배를 보여주는 점에서 명백히 민중적이고 반체제적이며 현대적이다.
보마르세의 희곡을 기초로 한 것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희곡은 당시로서는 반체제적인 폭언이라고 할만한 정도의 대사도 포함한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었으나 오페라에는 그런 부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의도적인 생략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에는 백작에 대한 피가로의 도전적인 아리아를 통하여 계급투쟁은 분명히 드러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계급투쟁만이 아니라 백작부인을 비롯한 여성들의 아리아를 통한 남성에 대한 여성의 투쟁도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피가로의 결혼>은 페미니스트들의 환영을 받을 법도 하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에게 그 작품은 그 인간의 표현으로 이해되고 예술가의 자기표현이 작품의 의식적 목적이 된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경우에는 인간과 작품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즉 연극이나 영화로 보여진 <아마데우스>나 그의 신화적 전기가 보여주는 천진난만한 - 좋게 말해서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조잡하고 유치하며 교만한 - 천재의 모습은 그 작품에 나타나는 성숙도, 즉 풍부한 감정표현이나 사회의식과 일치되기 어렵다.
천재로서의 모차르트는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심으로 더욱 일찍부터 평등의식을 지녔고 권위에 대한 복종을 좋아하지 않은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그런 의식을 가졌으리라고 보기는 어렵고 10대까지는 사회적 관행에 따르는 타입이었다고 봄이 옳다. 그러나 20대 후반의 모차르트는 그 전에 귀족의 사랑을 받은 신동이 아니라 귀족에 저항하는 반항아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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