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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

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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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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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아침독서 추천도서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3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404쪽 | 636g | 152*215*25mm
ISBN13 9791195588640
ISBN10 11955886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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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커튼 뒤에 숨어서 다시 밖을 내다보았다. 여자아이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후…….”
빌리는 파자마 위에 걸쳐 입은 낡은 목욕 가운을 바짝 잡아당겨 꼬챙이처럼 마른 몸을 꽁꽁 감싸고 허리띠를 꽉 묶었다.
그렇다.
빌리 샤인이 지금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다.
물론 집 밖이나 거리로 나가는 건 아니다. 그렇게 정신 나간 짓은 하지 않는다. 빌리가 나가려는 ‘밖’은 그가 살고 있는 작은 연립형 아파트 1층의 발코니다. 베란다든 발코니든 내키는 대로 불러도 좋을 그 코딱지만한 공간에는 녹슨 접이식 의자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빌리는 다시 밖을 내다보았다. 폭풍우나 전쟁, 외계인 침공의 때가 다가오는 걸 바라보는 듯한 표정으로. 그는 미닫이문에 방범용 빗장처럼 끼워두었던 빗자루를 밀어냈다. 손가락에 먼지와 보푸라기가 뽀얗게 묻어났다. 빌리는 부끄러워졌다. 평소 청결하게 지낸다고 자부했던 탓에 더욱 창피했다.
“빌리, 명심해.” 그는 소리 내어 혼잣말을 했다. “모든 걸 깨끗하게 해야 해. 당장 사용할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것도 예외는 아니란 말이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유리문을 밀어서 아주 조금 열었다. 차가운 바깥 공기가 느껴졌다. 빌리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문제의 여자아이가 고개를 들어 흘깃 빌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다시 고개를 돌려 자기 발치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이의 머리는 형편없이 헝클어져 있었다. 일주일은 족히 빗질을 안 한것 같았다. 파란색 가디건 단추도 비뚤게 채워져 있었다. 기껏해야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두 팔로 무릎을 감싼 채 계단에 앉아 자기 신발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영 싱거운 반응이다. 빌리는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면 뭔가 극적인 리액션을 보일 것이라 예상했다. 정확하게 어떤 걸 예상했냐고 물으면 딱히 대답할 수는 없지만.
빌리는 크게 세 번 심호흡을 하고 부들거리는 몸으로 힘겹게 발코니로 한 발을 내딛었다. 발코니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어찔 하고 현기증이 났다. 겨우 한 발을 더 내딛여 녹슨 의자 가장자리에 아주 조심스럽게 앉았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발코니 난간 너머로 몸을 숙였다. 그곳에서 1미터 정도 거리에 있는 아이의 머리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안녕, 정말 좋은 저녁이지?” 빌리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 p.5~6

“힌맨 할머니와 펠리페 아저씨가 나를 돌보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요.” 그레이스가 말했다. “우리한테 뭐라고 말했는지 알지만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죠. 하지만 난 진짜 이유를 알아요. 그건 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레이스의 말을 들은 레일린은 걸음을 멈췄다.
레일린은 놀란 얼굴을 숙여 그레이스를 보았다. 그레이스가 방금 뭔가 끔찍한 말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레이스는 그런 레일린을 보면서 자신이 뭔가 나쁜 말을 했는지 머릿속으로 재빨리 되짚어 보았다. 하지만 나쁜 말은 없었다.
“그레이스,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 거니?”
“그게 사실이니까요.”
“왜 그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지 않는데?”
“사실 나도 확실하지는 않아요. 내 목소리가 너무 커서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죠. 사람들이 늘 나보고 시끄럽다고 하거든요. 사람들은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들은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다른 아이들과는 몇 마디 나누고서 엄마에게 바로 돌려보내면 돼요. 그런데 나는 우리 엄마에게 쉽게 돌려보낼 수 없어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레이스는 레일린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이 모든 말을 했다. 레일린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레이스가 상심하게 만들기라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레일린이 왜 그러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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