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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씨 부인 스캔들 1-2 세트

변씨 부인 스캔들 1-2 세트

[ 전2권, 초판종료 ]
리뷰 총점9.5 리뷰 22건 | 판매지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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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3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024쪽 | 148*210*60mm
ISBN13 9791104906732
ISBN10 110490673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이미 정혼한 몸이오.”
사모관대를 쓴 새신랑이 신방에 들어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비록 세상에 인정받지 못한 혼인이었으나 내 심중에 내자는 그 여인 하나뿐이오. 죽는 순간까지.”
첫날밤에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연지곤지를 찍고 원앙금침 옆에서 다소곳이 기다리던 새신부 백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신랑의 얼굴을 보았다. 번듯한 생김이긴 하나 파리한 혈색에 그늘진 눈언저리가 한없이 음울해 보였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주무시오.”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새신부의 옷고름조차 풀어주지 않은 채 단호하게 일어섰다.
“그렇다면!”
백영이 다급한 마음에 지아비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저도 모르게 나온 대담한 행동에 자신조차 놀랐지만 그만큼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왜 저와 혼인을 하신 겁니까?”
“문중의 뜻이었소. 그대도 위세 높은 이씨 가문의 며느리 자리면 충분한 것 아니었소? 내 마음까지 바라진 마시오.”
새신랑은 싸늘한 말투만큼이나 매몰차게 옷자락을 잡아채 백영을 떨쳐냈다. 그녀가 주안상 위로 엎어지며 와장창 소리가 났다. 그리고 모란을 수놓은 아름다운 활옷이 음식물로 더럽혀졌다. 하지만 그는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신방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활짝 열린 방문으로 점점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너무나 잔인하게 깨달았다. 붉은 달 아래 길게 드리운 저 그림자조차 그녀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백영은 울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죽어버려!’
모욕감은 강렬한 원망으로 바뀌고 그를 향해 소리 없는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신방을 뛰쳐나간 새신랑은 날이 밝아서야 돌아왔다. 어딜 다녀온 것인지 안색이 몹시 창백하고 식은땀까지 흘리더니 빈껍데기처럼 허물어져 버렸다. 그리고 사흘을 고열에 시달리며 사경을 헤맸다. 의원이 다녀갔으나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고 백약도 무효했다.
“남원, 남원으로…….”
힘겹게 눈을 뜬 지아비가 울컥 검은 피를 토해냈다. 눈자위와 입술까지 까맣게 타들어간 모습이 이미 죽은 사람과 진배없었다.
“서방님! 정신을 차려보십시오. 이대로 가시면 아니 됩니다!”
백영이 그를 붙들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그의 죽음이 사무치게 애달파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니었다. 죽어버리랬다고 정말 죽다니, 두려웠다. 그리고 억울했다. 첫날밤조차 보내지 못한 사내로 인해 자신의 남은 인생 역시 무덤 속에서 살게 될 거라는 것이.
“남원의…… 그네를 뛰던 그곳에…… 네가 찾는 그것을…….”
그가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백영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새까맣게 변해 버린 손톱이 그녀의 살을 파고들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남원이라니요?”
“춘향아!”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낯선 여인의 이름을 부르고선 손이 툭 떨어졌다. 백영의 지아비 이몽룡은 그렇게 허무하게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나이 겨우 열여섯이었다. ---「초야」중에서

3년 후.
“도련님, 그러면 불부터 끄고 벗사와요.”
“불을 꺼서야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너의 가는 허리를 안고 꽃잎 같은 입술을 열어 주홍 같은 혀를 빨면 저고리 고름이 절로 풀리고 치맛단이 사라락 흘러내려 백옥보다 흰 속살이 보일 터인데!”
“아잉, 부끄러워 나는 못 해요!”
“오늘 밤 가시버시 맺은 사이에 뭐가 부끄럽다고.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너와 나 벗고 놀고 업고도 노니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용궁 속의 수정궁, 월궁 속의 광한궁, 이 궁 저 궁 다 버리고 합궁하니 너의 다리 사이 오목궁에 나의 심술 방망이로 떨구덩 길을 내자구나!”
낭독이 절정을 향해 나아가는데 ‘어머나!’ 하는 누군가의 탄성에 뚝 끊겼다. 그러자 숨죽여 듣고 있던 규방의 여인들이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다과상 앞에 앉은 모두의 시선은 방 한가운데서 번갈아 서책을 낭독하던 두 부인에게 쏠려 있었다. 예조판서 댁 며느리 홍씨 부인과 좌의정 댁 조씨 부인이다.
“벌써 신음이 터져 나오면 어쩌누? 이제 시작인데.”
홍씨 부인이 가볍게 눈을 흘기며 퉁을 줬다.
“맨몸으로 업음질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있단 말이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묻는 이는 한성판윤의 여식이자 예문관 응교의 부인 박씨다. 판의금부사 댁 유씨 부인, 호조판서 댁 마씨 부인, 대사간 댁 숙영 낭자 등, 한다하는 집안의 아녀자들로 이루어진 다례 모임에서 장안 최고의 인기 소설 ‘춘향뎐’을 은밀히 낭독 중이었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 도령이 퇴기의 딸 춘향에게 한눈에 반하여 그날로 첫날밤을 치르고 혼인을 약조하는 내용으로, 어지간한 춘화보다 색(色)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도성 안 부녀자들이 너도나도 필사본이라도 구하려 안달이었다.
“물론 있다마다요. 벗고 하는 놀음 중엔 말놀음이 최고지요.”
홍씨 부인이 의미심장하게 모두를 둘러보았다.
“말놀음이라니? 그건 또 뭐랍니까?”
“내숭들은. 다들 첫날밤에 해보시지 않으셨소? 마씨 부인은 말놀음을 하다 아들을 셋씩이나 생산하셨다지요?”
“어머나, 망측해라!”
오가는 부인들의 농에 숙영 낭자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숙영이 너도 허참판 댁 도령과 곧 혼례를 올리려면 알아둬야 할 것이니 미리 잘 들어두어라.”
홍씨 부인이 짓궂게 웃으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랑 사랑 내 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 이리 오너라, 벗고 놀자! 벗은 김에 춘향이 너는 말이 되어 방바닥을 기어라. 나는 마부가 되어 네 엉덩이에 딱 붙어서 낭창낭창 가는 허리를 잡고 볼기를 딱딱 치며 ‘이랴! 이랴!’ 하거든…….”
이팔 이팔 둘이 만나 미친 마음 세월 가는 줄 모르는가 보더라. 술술 읽어 내려가는 이팔청춘들의 놀음에 온몸이 간질간질 노골노골해지려는 찰나, 누군가 탁자를 탕 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참으로 민망하여 함께 앉아 있기가 힘들군요! 벌건 대낮에 사대부가의 부녀자들이 모여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입니까? 이런 모임인 줄 알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끔하게 일갈하는 이는 바로 백영이었다.
혼인한 지 사흘 만에 지아비를 잃고 따라 죽으려 약을 먹었으나 구사일생 살아나, 이번엔 몇 날 며칠 곡기를 끊어 굶어 죽으려 하였으나 시부모의 만류로 그 또한 이루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스스로 죄인이라 책망하며 삼 년을 하루같이 통곡으로 보냈다는 그 유명한 정절녀, 변씨 부인!
탈상을 한 그녀가 오랜 칩거 끝에 처음으로 다례 모임에 참석한 터였다. 흰 백(白)에 꽃 영(榮), ‘하얀 꽃’이라는 이름처럼 청초한 얼굴에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가녀린 모습이지만 커다란 눈망울엔 당찬 결기가 어려 있었다.
“조만간 그 댁에 열녀문이 내려질 것이라는 풍문이 맞나 보군요. 이리 절개가 높은 며느리를 두셨으니 그 댁 어른들은 참으로 좋으시겠습니다.”
홍씨 부인이 은근히 비꼬아 말했다.
“열녀문이 백 개가 내려진들 지아비의 목숨과 바꾸겠습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차가운 무채색의 차림만큼이나 싸늘하게 답하며 백영이 돌아섰다.
“흥, 고고한 척하기는!”
“그래도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희 어머님께선 늘 변씨 부인의 절개를 본받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절개는 무슨, 팔자가 세니 서방을 잡아먹은 게지. 이래서 집안에 사람이 잘 들어와야 된다니까.”
이런저런 수군거림이 뒤에서 들려왔지만 못 들은 척 방을 나섰다. 그런 백영의 얼굴에 얼핏 짓궂은 미소가 스쳐갔다.

달도 없는 깊은 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저잣거리에 쓰개치마를 쓴 두 여인이 나타났다.
“아씨, 제발 그만두세요.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러다 걸리면 우리 다 죽습니다. 장안 최고의 정절녀가 밤이슬을 맞다니요. 사람들이 아씨를 얼마나 칭송하는지 아시잖습니까?”
점순이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며 종종걸음을 걸었다. 넙대대한 얼굴부터 살짝 엿보이는 귓불에까지 이름처럼 점이 많기도 하다.
“지랄염병! 내가 열녀가 되고 싶어 된 것이냐? 과부가 목숨 부지하고 살려면 열녀 흉내라도 내야지 어쩌겠느냐? 이런 씹다 뱉을 열녀 행세, 정말 적성에 안 맞아서 못해먹겠다! 첫날밤이나 보내고 이 꼬라지가 됐으면 덜 억울하지, 이렇게라도 풀지 않으면 이 창창한 나이에 밤마다 어찌 참고 살라고!”
두 뺨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백영이 그렁그렁한 큰 눈에서 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낮에 보았던 고고한 정절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비틀비틀 갈지자걸음에 술 냄새가 폴폴 풍겨왔다.
“술도 좀 작작 드시라니까요. 술만 마시면 우는 버릇을 고치시든가요!”
‘삼 년을 하루같이 곡을 한 열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술버릇이 더러운 게지. 고주망태 욕쟁이 열녀라니……. 아이고, 이년의 팔자야!’
점순이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드디어 대망의 완결편을 다 쓰지 않았느냐? 기분이 좋아서 딱 한 잔 했다.”
“한 잔은 무슨. 걸음이나 똑바로 걸으면서 공갈을 치십시오.”
“염병에 땀도 못 낼 년! 주인아씨에게 공갈친다는 몸종은 너밖에 없을 게다!”
“이렇게 욕 잘하는 주인아씨도 아씨밖에 없을 겁니다요.”
티격태격하는 모양이 주인과 노비 사이가 아니라 오래된 동무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시집오면서도 데려온 점순이는 항상 백영의 곁을 지키는 하나뿐인 벗이었다.
“흥! 두고 봐라. 이번 완결편이 나오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질 터이니!”
“아휴, 그렇겠지요. 춘향뎐을 쓴 자를 찾아내려고 발칵 뒤집힐 테니까요. 남녀가 보자마자 눈이 맞아 그날 당장 동침을 했다 하여 막장이라 난리가 났었는데 이번 것은 대궐까지 발칵 뒤집힐 이야깁니다요. 어찌 이리 겁이 없으십니까?”
“지들이 나를 잡겠다고? 작자 미상을?”
눈물이 쏙 들어간 백영이 자신만만하게 코웃음을 쳤다.
미상.
이것은 그녀의 필명이었다. ‘콩쥐팥쥐뎐’, ‘선녀와 나무꾼-완전한 사육’, ‘별주부뎐-자라부인의 역습’, ‘이솔낭자뎐-아오, 이솔아!’, ‘진주난봉가’, ‘이십팔색기가(二十八色妓家)’ 등 요즘 인기 좀 있다 하는 소설들은 모두 천재 매설가 ‘미상’의 작품이었다.
그녀의 작품 속 여인들은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결국엔 임금이나 돈 많고 잘생긴 사내를 만나 백영 본인은 물론 도성 부녀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다. 막장이라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미상의 소설은 불티나게 팔렸다. 특히 아녀자들의 가슴에 불을 확 싸지르는 끈적끈적한 남녀상열지사에 관해선 그녀가 최고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이 춘향뎐인데, 상권과 중권에 이어 완결편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마지막 원고를 넘기는 날이었다.
“아씨, 근데 서방님의 함자는 밝히지 않아 아무도 이 도령이 이몽룡인지는 모르겠지만 춘향이가 정말 살아 있다면 춘향뎐 때문에 곤란해지지 않았을까요?”
“내가 왜 그 여우같은 계집을 배려해야 하는데? 아주 없는 얘기를 쓴 것도 아니고!”
“그래도 그냥 소설도 아니고 이리 난잡한 소설에 등장을 했으니 시집이나 제대로 갈 수 있겠습니까?”
“뭐야? 난잡? 그리 못마땅하면 너는 안 보면 될 게 아니냐? 부인네들은 좋아서 환장하는데 소설이 인기만 많으면 장땡이지.”
“쯧쯧, 그러니 막장이라고 욕을 먹는 겁니다.”
“너는 대체 누구 편을 드는 게냐? 내가 춘향이라는 년 때문에 첫날밤에 어떤 수모를 겪었는지 알지 않느냐? 그러고도 서방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 계집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버렸다. 그런데도 수절은 그 계집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지!”
백영이 다시금 울컥하자 길바닥에서 몹쓸 주정을 할까 싶어 점순이가 얼른 제 주둥이를 때렸다.
“어휴, 요놈의 주둥이! 제가 잘못했습니다요, 아씨. 이제 다 왔으니 진정하시고 완결편이나 이리 내주세요.”
어느새 천 서방의 유기전 앞이었다. 낮에는 유기를 파는 점포이지만 밤이면 은밀히 춘화나 농도 짙은 패관 소설 등을 파는 곳으로 미상의 작품은 이곳에서만 거래했다. 직접 나서기 조심스러운 백영을 대신하여 언제나처럼 점순이가 원고를 안고 소리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뒷문에 기대서 꾸벅꾸벅 졸다 제풀에 화들짝 놀라 깨어보니 아직도 점순이가 나오지 않았다.
‘이리 오래 걸릴 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문을 밀어보았다. 고요한 실내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몇 발짝 더 안으로 들어가니 뜻밖에도 천 서방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옆엔 춘향뎐 완결편이 떨어져 있었다.
“꺄아악!”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목 밑으로 날카로운 칼날이 들어왔다.
“네가 미상이냐?”
싸늘한 목소리에 술이 확 깨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검을 겨누고 있는 건 흑색 가면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사내였다. 두려움에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얼어붙어 있는데 어디선가 놋그릇이 날아와 가면자객의 어깨를 강타했다.
“아씨, 도망치세요!”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점순이가 달려 나오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백영은 자객의 자세가 잠시 흐트러진 틈을 타 그를 힘껏 밀치고 밖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이내 등 뒤에서 그녀를 뒤쫓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백영은 두려움에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황급히 길모퉁이를 도는 순간, 쏜살같이 튀어나온 한 선비와 세차게 부딪혔다. 그 바람에 선비가 달려오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녀를 덮치며 넘어졌다.
난향(蘭香).
몸과 몸이 포개어지며 선비에게서 난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하지만 그 그윽함도 잠시, 백영의 입에서 또다시 ‘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몸 위로 쓰러진 선비의 한 손이 그녀의 봉긋한 가슴을 움켜쥔 것이다! 한데 발딱 몸을 일으키기는커녕 한술 더 떠 그녀를 와락 끌어안고 한 바퀴 구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백영이 미처 저항할 새도 없이 두 사람이 쓰러져 있던 자리에 자객의 검이 내리꽂혔다.
“나리, 무슨 일이십니까!”
때마침 옆구리에 큰 칼을 찬 무사 둘이 모퉁이에서 뒤쫓아 나오자 그제야 선비가 벌떡 일어나 자객에게 통렬하게 소리쳤다.
“네 이놈! 감히 뉘 앞이라고 그따위 살기를 뿜어내느냐?”
“비켜라. 불필요한 살육은 나도 원치 않는다.”
잠시 멈칫하던 자객이 다시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피를 보는 걸 구경만 하라고? 그렇게는 못 하지!”
선비가 더없이 용맹스럽게 앞으로 나서더니, 냅다 두 무사의 등을 떠밀었다.
“량주, 숙휘! 출동하라!”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무사들이 떨떠름하게 칼을 빼 들었다. 시큰둥한 표정과는 달리 무사들의 검술은 예사 실력이 아니었다. 하나 자객 또한 만만치 않아 두 사람과 겨루면서도 좀처럼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합이 거듭될수록 아무래도 수가 많은 쪽이 유리해지며 자객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덩치 큰 무사의 검이 자객의 어깨에 꽂히려는 찰나 ‘펑!’ 소리와 함께 자욱한 연기가 퍼지더니 자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막탄을 던지고 도주한 것이다.
“네 이놈! 어딜 도망가느냐? 악의 무리를 처단하기 위해 내가 돌아왔다! 콜록콜록! 아이고, 매워라.”
뒷짐 지고 구경만 하던 선비가 뒤늦게 나서 매운 연기에 콜록거리면서도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지가 언제 악의 무리를 처단했다고. 정작 싸움은 등 떠밀린 무사들이 다 한 것을!’
백영이 기가 막혀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가 돌아서 달려왔다.
“아니, 아직도 쓰러져 계십니까?”
그러더니 다짜고짜 백영의 손을 덥석 잡고 일으켜 세웠다.
“어딜 손을 대시오!”
조금 전 가슴을 범한 무례까지 합하여 있는 힘껏 선비의 따귀를 날렸다.
찰싹!
찰진 소리와 함께 무언가 땅바닥에 떨어져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서서히 짙은 연기가 걷히면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 순간, 백영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아! 저 사내는…….’
그것은 별빛 하나 없는 암흑 속에서 느닷없이 밝은 태양을 만난 듯한 엄청난 광명이었다. 선비의 온몸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낡고 빛바랜 도포도 곤룡포처럼 보이게 하는 훤칠한 키에 도공이 섬세하게 빚어놓은 것 같은 날렵한 콧대와 턱 선, 길고 우아한 외까풀 눈매, 백영은 이토록 잘생긴 사내는 태어나 처음 보았다. 아니, 그저 잘생겼다기보다는 아름답다는 편이 더 어울릴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피부가 옥같이 희고 이목구비가 수려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얼굴에 서린 총기와 신비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눈빛, 그것이 그를 자체발광하게 하였다.
‘절세가인이 이런 이로구나!’
여태껏 그녀가 꿈꿔왔던 소설 속 남자주인공이 책을 찢고 걸어 나온 듯함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화가 잔뜩 난 선비는 벌게진 한쪽 뺨을 감싸 쥐고선 고함을 질러댔다.
“감히 나의 뺨을 때리다니! 생명의 은인에게 이 무슨 경우입니까?”
‘그러게, 내가 저 빛나는 얼굴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먹장구름 같은 후회가 밀려오는데 그가 불쑥 다가와 얼굴을 마주 댔다. 그리고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깊은 눈으로 백영을 바라보았다. 그 강렬한 눈빛에 사로잡혀 버린 백영은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고 그대로 빨려 들어가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고 저도 모르게 하아 탄식이 나왔다.
“어휴, 술 냄새! 아까 부딪힐 때부터 진동하더라니 내 이럴 줄 알았지. 어디다 대고 술주정이시오?”
선비가 코를 쥐고선 냉큼 떨어져 나갔다. 동시에 그녀의 환상이 산산이 부서지며 호감이 대번에 적대감으로 바뀌었다.
“술주정이라고요? 예, 저 취했습니다! 저는 고주망태라 치고, 그럼 처음 본 아녀자의 가슴을 더듬고 손목을 낚아채는 건 대체 무슨 경우입니까?”
“가, 가슴을! 어이구, 나리, 대체 어쩌자고 그러셨습니까?”
기골이 장대한 무사가 커다란 덩치가 무색하게 발을 동동 구르며 말까지 더듬는다.
“내가 만지려고 만진 게 아니라 넘어지면서 땅을 짚었는데 뭔가 뭉클…….”
“그러니까, 만지긴 만지셨군요.”
옆에 선 호리호리한 체구의 무사가 생김만큼이나 차분하게 말을 정리했다.
“만진 게 아니라 만져진 게다! 그러니까 그게…….”
“사죄하시지요.”
두말 필요 없이 딱 잘라 말한다. 참으로 에누리 없는 성격 같다. 그러자 선비가 억울해서 미치겠다는 심정을 온몸으로 내뿜으며 펄쩍펄쩍 뛰었다.
“내가 왜? 왜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동남동 방향 오십 보 거리에서 강렬한 살기를 느껴 도와주려고 바람처럼 달려간 것을 너희들도 보지 않았느냐? 그러다 넘어져 실수로 잘못 짚은 것인데 목숨 구해주고 뺨까지 얻어맞고 사죄도 내가 하라고?”
“용맹스럽게 검을 들어 제 목숨을 구해주신 두 무사님께는 백번 감사드리나 멀쩡하게 생긴 양반께서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백영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말하는 꼴을 보니 얼굴만 반반하고 싹수는 저잣거리 개나 물어가라 던져준 사내로다.
“멀쩡하게 생긴 양반이라니, 내가 누군지 모르시오? 아무리 내가 삼 년간 도성을 떠나 있었다 해도 이렇게 눈에 번쩍 띄게 잘생긴 얼굴은 흔치 않을 터인데?”
사내가 진정 놀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재수는 없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고개를 이리 갸우뚱 저리 갸우뚱 할 때마다 우측 얼굴, 좌측 얼굴이 번갈아 보이며 그 어느 쪽으로 봐도 날렵한 콧날과 완벽한 옆선에 백영의 심장이 또다시 쿵 내려앉았다.
‘나의 심장이 이리 요란하게 뛸 수도 있구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온몸을 뒤흔들었지만 백영의 자존심상 저런 오만방자한 사내에게 쉽사리 마음을 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댁이 대체 뉘신데?”
“허참! 잘 들으시오, 나는 이 나라 조선의!”
“조선의 뭐? 조선의 왕이라도 되시오?”
“나는 이 나라 조선의 최고 점쟁이 완얼 선생이오! 완전한 얼굴, 완벽한 얼굴, 완얼 선생!”
“점쟁이?”
그게 뭐 별거라고 저리 갖은 폼을 다 잡는지 백영이 다시금 어처구니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민폐, 왈패, 싸움패라 하여 패완얼이라고도 하지요. 하하하!”
덩치 큰 무사가 말을 덧붙이며 쩌렁쩌렁하게 웃어젖혔다. 그러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호랑이도 때려잡을 기세로 목청 높여 제 이름을 외쳤다.
“저는 고량주라 합니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으르렁대는 것 같다. 떡 벌어진 어깨와 선 굵은 번듯한 얼굴에선 야성미가 넘쳐 흐르고 부리부리한 눈 하며 호탕한 언행이 누가 봐도 영락없는 무인이다. 벌어진 옷깃 사이로 량주의 탄탄한 가슴 근육이 훤히 드러나 백영이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 바람에 호리호리한 무사와 눈이 마주치자 통성명 시간이라 생각했는지 그도 이름을 밝혔다.
“위숙휘입니다.”
그는 량주와는 정반대의 인상이었다. 약간 마른 듯하면서도 긴 팔다리가 돋보이는 훤칠한 키에 소멸할 것 같이 작은 얼굴, 조각 같은 미남은 아니지만 눈을 살짝 가리며 흘러내린 긴 머리칼 아래 단정한 이목구비에선 차도남(차가운 도성 남자)의 매력이 물씬 풍겨왔다. 군더더기 없는 차분한 말투와 지적인 분위기가 무인이라기보다는 제갈량 같은 책사의 풍모였다.
패완얼, 고량주, 위숙휘.
‘뭐지? 저 비현실적인 인간들은? 내가 아직 술이 덜 깬 걸까?’
백영은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세 사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보고만 있어도 왠지 취해 버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절녀 변씨 부인의 위험한 이중생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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