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왜 이러지……. 약을 먹어도 갈수록 심해지니……. 이게 무슨 중병이 든 건가……?
정남희는 또 이런 생각을 하며 한 손으로 이마를 받쳤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러나 눈앞에는 노란 불똥들이 오락가락할 뿐 어지러움은 가시지 않았다. 한기도 어깨가 움찍거릴 정도로 심해지고 있었다.
약기운이 떨어져서 그래. 어서 가서 약만 먹으면 괜찮아져. 병은 무슨 병이댜. 일이 좀 힘드니까 그런 거지. 기운 내, 이것아! 넌 그래도 호강이야.
정남희는 다시 스스로를 위로하고 독려하며 눈을 크게 뜨고 어금니를 물었다. 그러나 어지럼증과 한기는 기세가 더 드세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서 가서 약을 먹을 생각으로 걸음을 빨리 했다. 그러자 걸음걸이는 표나게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독일사람들이 그녀를 힘끔거리거나 유심히 쳐다보기도 했다.
얼굴이 창백해진 정남희는 심하게 비틀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책상 서랍에서 약병을 꺼냈다. 병뚜껑을 열면서도, 약을 손바닥에 받으면서도 그녀의 두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알약 네 개를 다급하게 입에 털어넣었다. 물을 마신 그녀는 의자에 털퍽 주저앉아 더디게 약병을 끌어당겨 뚜껑을 닫으려다가 멈추었다. 그녀는 힘없이 풀린 눈으로 약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병에 씌인 약 이름은 아스피린이었다.
이제 네 알 가지고는 안 되는 거야……. 약효가 빨리 떨어지니까 이래. 한 알을 더 먹으면 그만큼 오래 견디겠지. 근데……, 약 많이 먹으면 안 되잖아?
정남희는 천천히 병뚜껑을 닫았다. 그러나 다시 병뚜껑을 돌리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곧 시작될 야근을 생각하고 있었다. 네 알을 먹고는 야근을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었다. 정남희는 아스피린 한 알을 더 먹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까지 남은 30분을 생각하며 침대에 쓰러졌다.
--- pp.205~206
"채옥아, 너 고집 좀 부리지 마라. 무슨 기집애가 엄마 말을 그리도 안듣니 그래. 다 절 잘살리려고 그러는 건데. 미국에 가서 멋들어지게 폼잡고 살면 좀 좋으니."
임채옥의 어머니 황 집사는 한편으로 꾸짖는 척, 다른 한편으로 군침을 돌게 하며 딸을 살살 꼬드기고 있었다.
"엄마, 제발 그 말 좀 그만해요. 난 미국이 싫다구요. 그리고 난 시집간 출가외인이에요. 그러니까 날 데려갈 생각은 하지 마세요."
임채옥은 말만큼 싸늘한 기색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미국이 왜 싫어, 요런 맹추야. 미국이 사람 사는 천국이라는 거야 세 살 먹은 어린애들도 다 아는 일이잖아. 너, 이민 가고 싶어 환장을 하면서도 못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서 그래!"
황 집사는 소리를 빽 질렀다. 이아래턱이 이중으로 겹치도록 피둥피둥 살찐 얼굴에 노기가 드러나 있었다.
"엄마, 우리나라가 뭐가 모자라고 딸리는 게 있다고 이민을 가겠다고 그 야단이세요, 그래. 난 도대체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너 정말 바보 멍청이니? 모자라고 딸리는 게 없다니, 아니 세탁기가 있니, 청소기가 있니, 설거지 기계가 있니, 부라자·스타킹을 어디 하나 제대로 만드니? 이런 걸 일일이 다 말을 해야 알겠니? 물자 풍부하고 사람 살기 좋기로야 미국이 천당이고 우리나라는 지옥인 거야 두말할 것 없잖니?"
"어머, 엄마 참 이상하네요. 그런 물건들야 돈만 있으면 도깨비시장에서 얼마든지 구해다 쓸 수 있는 거야 엄마가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돈 많은 엄마가 척척 구해다 쓰면 될 걸 가지고 왜 딴 나라로 이민까지 가고 그러느냐구요. 미국에 가면 말이 통하기를 해요, 아는 사람이 있기를 해요. 무슨 재미로 살려고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구요."
--- pp.69~70
"채옥아, 너 고집 좀 부리지 마라. 무슨 기집애가 엄마 말을 그리도 안듣니 그래. 다 절 잘살리려고 그러는 건데. 미국에 가서 멋들어지게 폼잡고 살면 좀 좋으니."
임채옥의 어머니 황 집사는 한편으로 꾸짖는 척, 다른 한편으로 군침을 돌게 하며 딸을 살살 꼬드기고 있었다.
"엄마, 제발 그 말 좀 그만해요. 난 미국이 싫다구요. 그리고 난 시집간 출가외인이에요. 그러니까 날 데려갈 생각은 하지 마세요."
임채옥은 말만큼 싸늘한 기색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미국이 왜 싫어, 요런 맹추야. 미국이 사람 사는 천국이라는 거야 세 살 먹은 어린애들도 다 아는 일이잖아. 너, 이민 가고 싶어 환장을 하면서도 못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서 그래!"
황 집사는 소리를 빽 질렀다. 이아래턱이 이중으로 겹치도록 피둥피둥 살찐 얼굴에 노기가 드러나 있었다.
"엄마, 우리나라가 뭐가 모자라고 딸리는 게 있다고 이민을 가겠다고 그 야단이세요, 그래. 난 도대체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너 정말 바보 멍청이니? 모자라고 딸리는 게 없다니, 아니 세탁기가 있니, 청소기가 있니, 설거지 기계가 있니, 부라자·스타킹을 어디 하나 제대로 만드니? 이런 걸 일일이 다 말을 해야 알겠니? 물자 풍부하고 사람 살기 좋기로야 미국이 천당이고 우리나라는 지옥인 거야 두말할 것 없잖니?"
"어머, 엄마 참 이상하네요. 그런 물건들야 돈만 있으면 도깨비시장에서 얼마든지 구해다 쓸 수 있는 거야 엄마가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돈 많은 엄마가 척척 구해다 쓰면 될 걸 가지고 왜 딴 나라로 이민까지 가고 그러느냐구요. 미국에 가면 말이 통하기를 해요, 아는 사람이 있기를 해요. 무슨 재미로 살려고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구요."
--- pp.6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