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의 명상은 크게 지(止, Shamatha, 사마타)와 관(觀, Vipassana, 위빠사나)으로 나뉜다. ‘지’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그치는 것이다. 산만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삼매에 이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관’은 모든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조용히 관조하여 그때의 상태를 자각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알아차림’을 한다. 인간의 괴로움은 망상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망상이 일어나는 매 순간을 ‘망상’, ‘잡념’, ‘고통’ 등의 언어로 확인하면 사고의 흐름이 차단되어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인지하게 된다. ‘지’를 통해서는 선정(禪定 : 마음이 하나의 경지에 정지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을 얻고 ‘관’을 통해서는 지혜를 키운다.
---「1장 새벽」중에서
먹고 있을 때 먹는 것을 알아차린다. 나의 손이 음식이 담긴 수저를 들고 입으로 가져간다. 입안에서 음식물을 천천히 씹는 것을 알아차린다. 씹은 음식을 삼킨다. 다시 수저로 의식을 가져간다. 이런 방식을 남방불교에서 ‘위빠사나’ 라고 부른다. 항상 깨어 있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는 명상의 한 방법이다.
인간의 마음은 이리저리 제멋대로 헤매는 사나운 짐승과 같다. ‘나’ 라고 하는 자기인식이 너무 확고해서 순간순간 욱,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누가 나의 일에 참견을 한다, 누가 나의 방식을 비판한다, 누가 나의 험담을 한다, 누가 나의 의견에 반기를 든다. 이럴 때마다 이 ‘나라는 적’은 생각한다. ‘저 사람은 왜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고 있지?’ 그리고 곧 화를 낸다. 이렇게 화가 날 때 스스로를 관찰해서 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아, 내가 지금 막 마음속에서 화가 일어나고 있구나.’
---「3장 오전」중에서
물을 본받아야 한다. 최고의 선인 물과 같이 다투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논쟁하지 않아서 서로 겨루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쟁(爭)하지 않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렇다면 나쁜 사람, 싫은 사람, 관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으로 율곡 이이는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마을 사람 중에 선한 자는 반드시 가까이 지내면서 정을 통하고, 마을 사람 중에 선하지 않은 자는 나쁜 말로 그의 좁은 행실을 밝혀서는 안 되며, 다만 범연하게 대하되 서로 왕래하지 마라. 만약 이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자라면 만났을 때 다만 한훤(寒喧, 춥고 더움을 묻는 날씨 인사) 이야기만 나누고 다른 말은 하지 마라. 그러면 스스로 점점 멀어져서 원망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_『격몽요결(擊蒙要訣)』 접인장(接人章)]
이 얼마나 명쾌하고 현명한 대답인가. 날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천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으로 도에 대한 이야기를 통하여 사람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도의 관계가 되도록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5장 오후」중에서
시자 입장에서는 국사가 자신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연달아 부르자 ‘무슨 일인가’, ‘언짢으신 일이라도 있는가’,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시자는 그저 예, 라고 대답할 뿐이다. 누가 부르면 예, 하고 대답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부른다고 해서 내가 잘못한 일이 없는가를 생각해 보거나, 부르는 자가 나에게 뭔가 언짢은 일이 있는가 보다 생각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자세가 아니다.
국사는 지금까지 자신이 시자를 저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시자는 이미 많은 것을 깨달아 국사에게 연연해하지 않고 ‘진정한 나’ 즉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면 우선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면 ‘진정한 나’는 어느새 어디론가 숨어 버리게 된다. 그 ‘진정한 나’ 대신 ‘표면적인 나’, ‘가짜 나’가 나타나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5장 오후」중에서
하루 중 고요함으로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고요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야만 한다. 안락한 곳에서 몸도 마음도 조용히 쉬면서 하루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계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고요함으로 오늘과 내일을 바라보는 중에 삶의 지혜가 생겨난다. 오늘 있었던 일(色, 실체)들 중에서 적당하지 않았던 것들은 공(空, 텅 빔)으로 돌려 버리고, 내일 일어나면 좋을 일(色, 희망)들을 공(空, 상상력)으로 생각해 본다.
---「7장 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