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를 거닐던 그날 불현듯 이런 생각도 들었다. 효과적인 사역이나 목회를 하려고 애쓰는 것이 오히려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우리는 훼방을 놓고 있었다. 우리의 전략, 프로그램, 목회 자원, 기업체 식의 교회 부흥 테크닉 등은 해결책이 아니라 도리어 문제점이었다. 진정한 해법은 그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죽여야만 한다. 그럼,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대신해 주신다면…?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이 계속해서 용서하고, 축복하고, 치유하고, 변화시키고, 가르치고,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증언하는 일이다.” --- p.9
“나는 더 이상 목회를 지속하기 힘들 만큼 바쁘고, 지치고, 절망감마저 느끼고 있는 중견 목회자와 사역자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 책을 썼다. 바라건대 자기식의 ‘성공’에 도취되어 살아가는 일부 목회자와 사역자들도 이 책을 읽고 새로운 길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 p.11
“사역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그분이 현재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진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어떻게 동역할 것인가?’ 이것은 아주 오래 된 교리를 내 식대로 고쳐서 말한 것이다. 최초로 그 같은 사상을 선보인 사람은 1세기 사도 시대 말에 살았던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주교였다. 그는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교회가 있다’(우비 크리스투스, 이비 엑클레시아)라고 말했다. 20세기 스위스인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도 비슷한 말을 했다.” --- p.13
“나는 목회자들이 갖는 불안감과 좌절감에 신학적 해답이 분명히 있다고 확신한다. 그 해답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그분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나의 관심사는 복잡한 신학 사상이나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해법이다. 신학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는 결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감히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때 우리의 사역이 어떻게 되는지를 지금부터 이야기하겠다.” --- p.23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만 교회와 교회 사역이 가능하다. 예수님이 영혼 구원의 짐을 지고 그 사역을 하셔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일을 할 능력이나 힘이 없다. 나는 나 자신의 한계성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나는 메시아가 아니다. 그래서 더 이상 누구를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혔기에 무대 중앙에서 물러났다. 나는 ‘내 사역’이라는 보좌에서 물러나고 주 예수님의 사역이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했다. 그러나 사역은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 p.29
“지난 주일 당신 교회의 주보에 적혀 있던 내용들을 떠올려 보라. 십중팔구 당신의 이름이 목사, 혹은 전도사로 그곳에 올라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교회의 다른 목사와 전도사들도 교역자로서 이름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교회 주보에 ‘담임목사: 예수 그리스도’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정작 들어가야 할 이름은 빠져 있는 것이다!” --- p.33
“성경 주석은 설교와 가르침만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라. 그 외에는 사용처가 없다. 따라서 그 두꺼운 주석 책을 내려놓고 성경의 본문 말씀과 씨름하라. 당신이 하는 대부분의 일이 설교의 지배를 받게 하라.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말이다(실제로 당신은 그 일에 목숨을 건 사람이니까). 당신 교회의 교인들에게 새로운 권위를 알게 하라. 당신 자신과 교인들의 위에는 하나님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가 있음을 알게 하라. 그리스도를 전하는 신중한 전도자가 되겠다고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자신을 헌신하라.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해 설교하지 말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증언하기 위해 설교하고, 교회 성장은 주님의 손에 맡겨 드리라.” --- p.56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히 전달하는 설교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만드시는 기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님을 떠나 설교를 논할 수 없고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할 말을 선택하신다. 매주 목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오로지 그 기적이다. 이 사실을 교인들에게 알리고 구원의 기적을 깨달아 계속 자라나게 하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 p.121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모방 함’(이미타티오 크리스티)이 아닌, 그리스도에게 ‘참여 함’(파티시파티오 크리스티)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유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고 능력을 받게 된다. 장 칼뱅은 그것을 성령과의 결속이라고 불렀다. 그러한 결속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되고 그로 인해 성도와 그리스도 간의 ‘신비로운 연합’이 이루어진다고 칼뱅은 말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신약에서는 복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계속 달려가라고 권했던 것이다. 결코 법에 복종하는 의무감에서 달려가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 p.142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부터 나는 목회 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목회 상담 이론이나 실천 과정에서 정체성을 찾을 정도로 심각하게 길을 잃은 상태임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목회에 도움이 될 만한 많은 이론들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실제적인 목회와 사역적인 면에 있어서는 내가 ‘비신학적 혼동’이라고 부르는 수박 겉핥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일찍부터 이 분야를 총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목양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목회 사역도 심각하게 뒤죽박죽이 된 상태였다. 그 후 수년이 지나서 나는 한 가지 의문에 맞닥뜨렸다. 목회 사역을 기독교 사역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은혜(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임하고, 주님이 현재 하시는 사역을 우리가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바라 볼 때 목회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 p.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