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독특한 안동 지방의 방언을 이해하느라 전라도 출신의 제 아내도 적잖게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했습니다.
하루는 부엌에서 국을 푸고 있던 며느리에게 어머니가 "야야, 가지껏 퍼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까짓것 국물이나 푸라는 것인지, 아니면 난데없이 국에다가 가지를 넣으라는 뜻인지 아내는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며느리가 답답해 보였던지 어머니가 손수 국자를 들고 '가지껏' 국을 푸는 시범을 보이셨답니다.
가지껏 - 최대한 많이 많이, 국그릇이 넘칠 정도로 가득히......
--- p. 181
아들아,대부분 사람들은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하지.하지만 그 말을 전폭적으로 믿지는 마라. 세상에는 승리한 사람보다는 실패한 사람이 많고, 실패한 사람 때문에 승리한 사람이 두드러져 보이는 법이란다. 지는 꽃이 있어야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말이다.그렇다고 너한테 늘 실패하는 인간이 되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실패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 앞에서 기죽지않을 용기도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 p.146
아들아, 너는 만년필을 아느냐. 만년필 잉크 냄새를 맡으며 코를 벌름거려 보았느냐.
내가 지금의 너만한 아이였을 적에, 나에게는 만년필이 없었다. 돈이 없어 그걸 사지 못한 게 아니다. 나는 너무 어려서 만년필을 사용할 자격이 없었던 거다. 어린것들은 연필로 글씨를 써야 한다는 게 어른들의 생각이었다. 연필은 글씨를 썼다가도 마음대로 지울 수가 있는 필기 도구다. 하지만 만년필 글씨는 한 번 쓰면 더이상 고칠 수 없다. 다시 고쳐 쓸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소리다. 글씨도 삶도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책임을 지지 못하면 만년필을 쓰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만년필이 무척이나 갖고 싶었다. 그 무렵 나의 꿈은 양복 윗주머니에 턱 하니 금빛 만년필을 꽂고 다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 pp. 33~34
만년필 글씨는 한 번 쓰면 더이상 고칠 수가 없다. 다시 고쳐 쓸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소리다. 글씨도 삶도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책임을 지지 못하면 만년필을 쓰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 p.33
따라서 우리는 그의 시를 '중용의 시'로 불러도 좋지 않을까? 그는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과 자아 사이에 빈틈없는 긴장을 유지하려고 애썼던 드문 시인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백석의 시가 우리 문학의 주류로 올바른 평가를 받아왔다면, 우리는 순수문학이니 참여문학이니, 리얼리즘이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이분법으로 바보같이 한국문학을 두 조각내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 81
그렇게 수없이 매를 맞아서 껍질이 부스러진 나무들이 안쓰럽지 않은가. 나뭇가지들이 새순을 밀어 올리기 위해 지금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봄날, 나무 앞에서 부디 좀더 겸손해질 일이다.
산을 좀 쉬게 하자. 산을 성가시게 해서 내 체중을 줄여볼 계획도 포기해야겠다. 사슴 같은 목을 길게 내 빼고 퀭한 눈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저 1950년대의 김수영 사진이 나를 심히 부끄럽게 하더라도.
--- p.140
"코끼리 한나절만 부르면 끝나버린당게!"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집을 고치는 데 코끼리를 부르라니요! 그것도 아프리카도 동물원도 아니고 조선의 산골에 말이지요. 나는 이 화두를 붙잡고 잠시 상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연상에 의한 탁월한 언어 창조 앞에 저는 무한히 경건해지고 충만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마을에 오기 훨씬 전부터 할머니는 '포클레인'이라는 발음도 힘든 서양말을 '코낄'라는 우리말로 쉽게 번역해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황제와 같은 그 몸집과 코의 생김새, 그리고 역할의 유사성, 기막힌 어감의 조화, 어쩌고저쩌고 긴 설명 필요 없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포클레인은 코끼리입니다.
--- p. 160
"코끼리 한나절만 부르면 끝나버린당게!"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집을 고치는 데 코끼리를 부르라니요! 그것도 아프리카도 동물원도 아니고 조선의 산골에 말이지요. 나는 이 화두를 붙잡고 잠시 상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연상에 의한 탁월한 언어 창조 앞에 저는 무한히 경건해지고 충만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마을에 오기 훨씬 전부터 할머니는 '포클레인'이라는 발음도 힘든 서양말을 '코낄'라는 우리말로 쉽게 번역해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황제와 같은 그 몸집과 코의 생김새, 그리고 역할의 유사성, 기막힌 어감의 조화, 어쩌고저쩌고 긴 설명 필요 없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포클레인은 코끼리입니다.
--- p. 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