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유년기는 결핍의 시절이었다. 물질적인 결핍이 아니라―우리도 그럭저럭 지낼 만큼은 넉넉했다―정체성 결핍. 우리는 아무도 아니었다. 우리 부모는 아무도 아니었다. 우리 선조들은 스웨덴 역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 우리 고향 마을은 지도에 나오기엔 너무 작았다. 우리는 간신히 먹고살 수는 있었지만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야 했다. 우리는 가족농장이 죽어가고 목초지가 잡초로 뒤덮이는 것을 지켜봤다. 우리는 통나무 뗏목이 금지되기 전, 얼음이 녹았을 때 마지막으로 토네엘브 강을 떠내려가는 통나무들을 보았다. 우리는 건장한 벌목꾼 마흔 명이 디젤 연기를 뿜어대는 설상차 한 대로 대체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 튼튼한 장갑을 벗어놓고서 멀리 떨어진 키루나 광산으로 주당 노동시간을 채우기 위해 떠나는 것을 보았다. 우리의 학업 성적은 전국을 통틀어 가장 나빴다. 우리에게는 식사 예절도 없었다. 우리는 실내에서도 양털 모자를 썼다. 우리는 절대로 버섯을 따지 않았고, 야채를 기피했으며, 가재 파티를 열지도 않았다. 우리는 사교적인 대화를 나눌 줄도, 시를 낭송할 줄도, 선물을 포장할 줄도, 또는 연설을 할 줄도 몰랐다. 우리는 팔자걸음으로 걸었다. 우리는 핀란드 사람도 아니면서 핀란드어로 말했고, 스웨덴 사람도 아니면서 스웨덴어로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pp.71~72
파얄라는 나머지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스웨덴 방송국이 평소에는 잘 보여주지 않던 팝 콘서트를 마침내 방송했을 때, 우리는 몇 년이나 지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녹화 공연을 봐야 했다. 그래도 볼 수 있는 건 다 봐야 했다. 우리는 기대에 부풀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누나가 브라운관을 가리고 있는 베니어판 문을 열고서 텔레비전이 예열될 시간을 주기 위해 재빨리 스위치를 켰다. 브라운관이 오븐 속의 빵 덩어리처럼 천천히 익더니 마침내 밝아지기 시작했다. … 그리고 거기에 그가 있었다. 엘비스. 그 시절은 삐딱한 미소와 반들반들한 머리, 담배 파이프 청소용구처럼 유연한 다리를 가진 이 호리호리하고 박력 넘치는 젊은이가 미군 병사로 독일에서 군복무를 하기 전이자 절정기에 있던 때였다. 아빠가 쯧쯧 혀를 차며 보란 듯이 차고로 나갔다. 엄마는 뜨개질을 하는 척했지만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이 땀투성이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누나는 손톱을 속살까지 깨물었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밤새도록 울었다. 그리고 나는 기타를 갖고 싶어졌다.
--- pp.116~117
뜨거운 열기 한가운데에서 병 하나가 한 모금의 위로로 할아버지에게 건네졌고, 할아버지는 돌 위에도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퓨젤유 냄새가 우리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할아버지는 병을 옆으로 건네고서 팔뚝으로 코를 닦은 뒤, 어쨌든 삶은 한 무더기 똥일 뿐이며 이제 죽음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공산주의자였고, 그 사실을 명확히 하길 단호히 원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죽을 때가 되어 죄 사함을 구하고 예수를 찾겠다며 지껄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다만 정신착란과 노망일 뿐이니 자기 입에 반창고를 붙여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지금 당장, 자신의 가족과 다른 증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모두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주길 바랐다.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노망이 든 채 파얄라 마을 병원에서 아무한테나 쓸데없는 소리를 떠들어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pp.180~181
하지만 가장 위험한 것, 아버지가 다른 무엇보다 앞서 경고해주고 싶은 것, 불쌍한 젊은이들 한 부대를 광기라는 안개 속에 통째로 밀어 넣는 그것은 바로 독서였다. 이 못마땅한 습관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날로 번져 갔는데, 아버지는 내가 아직까지 그런 경향을 전혀 보이지 않아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했다. 정신병원은 책을 너무 많이 읽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한때는 그들도 우리처럼 육체적으로 강인하고, 근심 없고, 쾌활하고, 균형 잡혀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독감으로 침대에서 며칠을 쉴 때처럼 계기는 대개 우연한 것이었다. 매력적인 책 표지도 호기심을 일으키는 데 한몫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나쁜 습관이 뿌리를 내렸다. 첫 번째 책이 다음 책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다른 책, 그리고 또 다른 책으로, 정신병의 영원한 밤 속으로 곧장 이끄는 사슬의 연결 고리들. 멈추는 건 불가능했다. 마약보다 더 심했다.
매우 조심한다면, 백과사전이나 제품 설명서처럼 우리에게 뭔가 가르쳐줄 수 있는 책을 어쩌다가 들여다보는 것은 괜찮을 수도 있었다. 가장 위험한 책은 소설이었다. 그 안에서 모든 사색들이 유발되고 고무되었다. 빌어먹을! 그처럼 중독성 강하고 위험한 제품은 국가가 관리하는 전매상점에서만 취급해야 하고, 허가증이 있거나 성년이 된 자들에게만 지급하고 팔아야 했다.
--- pp.258~259
마지막 곡이 끝난 뒤 홀게리의 친구가 박수를 치며 앙코르를 외치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도 동참했다. 우리는 여전히 무대 위에 있었다. 나는 초조하게 에르키와 니일라를 흘끗 바라봤다. 레퍼토리를 다 소진한 우리는 더 이상 아는 곡이 없었다.
그때 하울링 소리가 들렸다. 홀게리! 홀게리가 재빨리 스피커 소리를 확 낮추고서 그 옆에 서 있었다. 윙 하는 전자음이 홀을 퍼져 나가자 창유리가 덜거덕거렸다. 그때 홀게리가 연주를 시작했다. 혼자서, 디스토션을 최대로 걸고서. 청중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털썩 무릎을 꿇고 기타를 바닥에 쾅 내려놓은 뒤 깔때기 모양의 확성기 주둥이 앞에서 방금 살해된 시체를 흔들듯 기타를 흔들어댔다.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는 기타 줄을 할퀴었다. 귀에 익은 곡조였다. 산산이 부서진 소리가 먼 라디오 방송처럼 오락가락하면서도 동시에 힘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그저 홀게리를 빤히 바라봤다. 홀게리가 드러누웠다. 기타를 하늘로 찔렀다. 찌르고 또 찔렀다. 눈은 반쯤 감겨 있고, 이마는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러더니 홀게리가 고개를 뒤로 젖혀 이빨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낯설면서도 친숙한 그 곡조를.
“헨드릭스!” 니일라가 내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더 나아!” 내가 소리쳤다.
그제야 나는 홀게리가 연주하는 곡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가 민중회관의 낡은 나무 벽을 온통 진동시키고 있었다.
--- pp.3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