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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 이야기

유목민 이야기

: 바람에 새겨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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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49쪽 | 58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7155500
ISBN10 898715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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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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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유목민의 고대 정착민에 대한 침략의 화신으로, 인류의 재앙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 온 인간 칭기스칸. 그에 의한 동부 이란의 파괴는 아틸라에 의한 유럽의 파괴보다 더 끔찍한 것이었다고 이야기된다. 특히 그가 행한 집단 처형은 인류가 겪은 전쟁범죄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것이 당시 전쟁 체계의 일부였고, 빨리 항복하지 않는 정착민들에게, 그리고 항복한 뒤에 다시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가해진 유목민의 무기였다는 것은 재고의 여지없이 묵살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 뛰어난 유목민이 농경정착 경제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받게 되는 불명예이다. 칭기스칸은 도시와 전답을 파괴하여 초원으로 바꾸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약탈이라는 유목 전통도 그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질주'라는 단어가 지구촌의 피를 끓게 하던 시대가 있었다. 유라시아의 12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중반까지 2백여 년에 걸쳤던 칭기스칸의 시대가 바로 그 때였다. 그 시기의 유목민들은 칸을 따라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의 대지를 내달리고는 했다. 비록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들이었지만 그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세계의 질서가 그들의 질주로 인해 바뀌는 것을 보았고, 또 그들 앞에 무릎 꿇는 정착민들을 보면서 머물러 사는 자의 안락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목격했다. 안락은 스스로를 안락사 시킨다. 그래서 그들은 당장에는 가난하고 괴로워도 내일에의 꿈을 향해 말 위에서 자고 샜다.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까지 칸께서 우리의 땅이라고 명하셨다.

그들이 이렇게 외칠 때 그들은 행복했다. 칸의 역사를 함께 사는 일, 칭기스칸이 만들어 가는 세상의 질서에 동참하는 일, 거기서 맛보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그들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일깨워주고 그들 스스로의 삶을 값지게 해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후회 없이 말을 달렸다. 그리고 그들의 질주가 가로막힐 때마다 격렬한 전투를 피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것을 소유하려는 자들과, 그들의 욕망을 잠재우려는 자들간의 싸움에서 승패는 언제나 불을 보듯 뻔했다. 유목민들의 승리였다.
아,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피눈물과 신바람이 교차되며 격정의 한 시대가 만들어졌던가? 때로는 몇 십만의 부족이 순식간에 도륙 당하기도 했지만, 유목민이 승리한 대륙을 따라 역참제가 신설되었으며, 물샐 틈 없이 칸막이되어 있던 문명과 문명간의 경계들이 허물어졌다.

동양과 서양이 통일되고, 지상의 먼 나라들간에 소통이 시작되던 그 대변혁의 시대. 유목민들이 칭기스칸의 깃발 아래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지고 제국 건설의 열기 속에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던 결과에 대하여 인류는 오랫동안 침묵해 왔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이 가고자 한 길을 뒤따라갔으며 역사는 그들의 에너지에 증폭되어 전혀 다른 차원의 방향성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 대목이 우리가 칭기스칸의 역사를 문제삼는 지점일 것이다. 정착문명이 만들어낸 숱한 국경과 성벽들을 생애의 마지막까지 돌파하다가 죽어간, 야심에 찬 황색의 한 질주자 칭기스칸에 대해 인류가 품어온 편견과 오해는 지독했지만 그가 꿈꾸었던 역사의 윤곽이 다시 그려지지 않는다면 이후 놀라운 진전을 이뤄온 지구촌 시대의 개막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랬다. 그들은 지구촌 시대를 꿈꾸었다!
그랬다. 그들은 지구의 이쪽과 저쪽이 잉여 물품을 서로 나누어 쓰는 물류 유통사회를 희망했다!

그래서 칭기스칸과 그 후예들은 한편으로는 무력과 파괴,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에 대한 열린 태도와 타 민족의 종교에 대해 관용을 베풀 것을 강조하며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잔혹한 전쟁을 이끌어갔다. 그럼으로써 여러 다양한 민족들의 물질적·문화적 교류에 장애가 되었던 장벽들을 허물었다. 그리하여 '몽골족의 세기'에 대륙 간 교역은 번성했고, 대상(隊商)들의 통로는 이전보다 더욱 안전했으며, 더욱 빈번하게 이용되었다. 이는 동서간의 개인적인 접촉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접촉은 결코 마르코 폴로 한 사람에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인 접촉은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영원한 타자로서만 존재하던 동과 서가 서로를 정신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중략…)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지구촌의 서막을 열었던 몽골제국의 영광도 사라졌고 황혼도 잊혀졌다. 그러는 동안 지구촌에는 또 다른 가치들이 출현하고 젊은 피들을 들끓게 했지만, 인류사가 진행되면서 간절히 추구되었던 거의 모든 가치들은 실패하거나 곡해되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숭상하고 평화를 갈망하며 평등을 도모하던 인류의 꿈을 지난날의 역사가 어떻게 짓밟아 왔는가를 다시 거론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 모든 가치는 심한 경우에는 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까지 파괴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오직 하나, 지속적인 신장을 보여 온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유목민들이 일관되게 추구해오던 가치, 즉 '자유'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20세기에도 자유는 신장했다. 우리가 유목민의 삶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진짜 이유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우리 모두는 혈통적으로뿐 아니라 문명사적으로도 그들의 후예이다. 디지털 감염자가 시시각각으로 늘어나는 21세기의 거리에서 저 어두운 13세기 유라시아 대륙의 유목민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열망, 그들의 속성, 그들의 영혼, 그것이 그 후 오랫동안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돌고 돌아 또다시 거대한 이동을 하는 것을 보라. 그 이동의 힘은 지금의 지구촌 시민들, 곧 벤처 사업가들, 네티즌들, 디지털 시민들의 피 속을 관통하면서 오늘의 한국도 휩쓸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저 거리의 퀵 서비스 사내에게도 흐르고 있고, 골목골목을 누비는 중국집 배달부의 오토바이 위에도 살아 있으며, 밤새 사이버 대지 위를 질주하느라 잠을 놓쳐버린 청소년들의 가슴속에도 요동치고 있다.

이제 머지 않아 모든 거리는 디지털 문명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인간의 육신은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공간의 숙명 앞에서 막막한 거리감과 싸우지 않는다. 대지 위의 길은 그렇게 해서 소멸되지만 이동은 그러나 끝나지 않는다. 먼 옛날 칭기스칸이 밤하늘의 별과 함께 초원 위를 갔듯이 앞으로의 인류는 문명 속에서 문명 속으로 어두운 모니터 안에서 깜박이는 커서와 함께 한없는 질주를 지속하리라.
이 책, 『유목민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삶에 동참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오랜 정착문명시대에서 벗어나 기존의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고 기존의 생존방식으로는 살아가기 곤란한 매우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불행한 자들과 행복한 자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정착문명의 성곽들이 다시 무너지고, 또 한 번 인간의 역사는 폭풍처럼 질주하는 영혼의 시대, 바람 속을 고향으로 삼는 이동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든 칸막이는 무너지고 있으며 경계는 파괴되고 정착의 고정된 근거지들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자신의 칸막이 안에서 안주하며 살고자 하는 욕망은 이제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 p.329-330
인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왔다. 최근에는 특히 그랬다. 과거나 미래가 지금 우리들의 시간에 작용하는 역할을 놓고 숱한 주장들이 쏟아져 나와 역사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끝없이 정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독자는 부담 없이 읽었으면 좋겠다.
나는 역사를 전공하거나 문명을 연구한 적이 없는 저널리스트이다. 학자들이 무엇인가를 주장하기 위해 글을 쓴다면 저널리스트는 무엇을 전달하기 위해 글을 쓴다. 학자들이 분석과 추리에 근거한다면 저널리스트는 취재와 알리바이에 근거한다. 그리고 학자들이 학문적 지평에 기대고 있다면 저널리스트는 동시대인들의 상식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 글이 유목민의 역사를 단지 소개하기 위해서만 쓰여진 것은 아니다. 그것들에게서 드러나고 있는, 그리고 미래의 인류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하나의 관점을 제출하려는 것이었다. 유목 이동적 관점!

유목민이 걸어온 '질주의 문명사'를 내가 머리 속에 그려오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다. 길게는 40년, 짧게는 3년 동안 틈이 날 때마다 그에 관한 사료(史料)를 확보해 왔다.
하지만 역사에서 공식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말기로 하자. 다만 한 가지,꼭 기억해야 할 것은 지배자가 세계를 질주할 때 강자와 약자를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강자는 태풍처럼 막무가내의 힘으로 사방팔방을 흡수해버린다. 무수히 많은 약자들의 상처가 이곳에서 생긴다.
인간이 자꾸만 역사에 매달리는 것은 영혼에 새겨진 상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상처 입은 자의 과거는 철거되지 않는다. 문제는 용서하고 사랑하고 복권시키고 화해하는 것 아닐까?

내가 『밀레니엄맨』을 출간한 것은 3년 전이었다. IMF를 맞아서 세상은 시끄럽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풀이 죽어 있었다. 평소에 술좌석에서만 떠들던 칭기스칸 이야기를 내가 왜 그토록 흥분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여기저기에서 시련을 못 이겨 나자빠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널리스트로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또한 같은 이유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나로서는 가장 편하고 자유로운 형식이 단행본을 내는 것이었다. 책을 서점에 내놓고 여러 자리에서 읽었다는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것이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책임감이 때로는 죄책감을 낳기도 했다. 그래서 유라시아 대륙을 찾아가 칭기스칸의 무대를 답사했고, 혹시 저질렀을지 모르는 '역사에 대한 오독의 부담감'을 덜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묻고 독서도 했다.

그 사이에 한국은 IMF 상황을 벗었고, 내가 칭기스칸을 말하면서 전하고자 했던 21세기에 대한 비전을 세계의 저명한 석학들이 동일한 컨셉으로 내놓는 반가운 일들도 여러 건 있었으며, 또한 우리를 서기 1900년대의 자리에서 2000년대의 자리로 옮겨다 준, 세월의 어김없는 진행이 있었다.
다시 한번 서둘러야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밀레니엄의 밤을 건너온 후 사람들이 마치 거대한 역사의 강을 하나 건너와 버린 것처럼 말하고 사고하며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어디로 건너온 것인가? 이제 우리는 어떤 출구를 향하게 될 것인가?
유목민들이 생명처럼 여겼던 것, 즉 성을 쌓기보다 길을 닦아야 된다는 감격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의 산물이었을까 필연적인 결과였을까?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사실은 그들의 생존방식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연이라고만 설명하는 것은 왜곡에 속한다. 그들은 분명히 그러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울란바토르 근교에 가면 돌궐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이 천년의 세월을 견디고 있다. 이 비문은 당시 유목민이 겪었던 눈물겨운 사연들을 구구절절 기록하면서 다음과 같은 장군의 유훈(遺訓)을 깊이 깊이 새기고 있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닫힌 사회는 망하고 열린 사회만이 영원하리라는 이 말은 성을 쌓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과는 크게 다른 이상(理想)을 가진 자들이 추구한 사회적 이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유럽이 겨우 중세의 아침을 맞고 있던 시기(기원 7,8세기)에 벌써 열린 세상을 꿈꾸라고 외쳤던, 이 전율할 듯이 선구적이고 예언자적인 집단이 일구어 놓은 문명의 능력과 품위를 인류는 오랫동안 신뢰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성을 파괴하고 길을 놓으려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그 칸막이는 자연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 내부에도 있었다. 종족과 종족, 국가와 국가, 종교와 종교, 계급과 계급간에 거의 단절된 형태로 그 칸막이가 엄존해 왔다. 중세에 이르면 그 칸막이 안에서만 자유를 구가한 민족도 있었고, 그 칸막이를 무너뜨리며 넘나드는 자유를 갈구한 민족도 있었다. 일리인이 바로 그런 칸막이를 뛰어넘는 데서 인간의 위대성을 보았다면, 유목민들의 이동마인드 역시 그 같은 위대성을 보여준 예라고 볼 수 있다. 지상에 구축된 상이한 사회와 각종의 문화를 연결하는 역할은 유목민의 역사에서 일관되게 수행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몽골고원이 흉노고원이나 돌궐고원이 아닌 몽골 족의 고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도 제로섬게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몽골족이 유목부족간 전쟁에서 이긴 것이다. 정착문명권인 중국이나 페르시아의 사람들이 북방문화가 잔혹하고 강인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느끼는 원인도 제로섬게임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제로섬게임을 준수하는 북방문화권에서 가장 잘 사용되는 단어가 '신바람(salkin orugulakhu)'과 '피눈물(Chisuntai nilmusun)'이다. 신바람이란 모든 자들이 신의 뜻에 감응되어 일에 몰두한다는 뜻이다. 피눈물이란 일족이 적에게 죽음을 당할 경우 남은 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칼로 그어 피와 눈물을 동시에 흘리면서 복수를 다짐한다는 뜻이다.

이런 극단적인 단어의 존재는 그만큼 몽골고원에서의 생활이 적자생존과 같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초원의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이 유목민은 세 가지밖에 없었다. 하나는, 초원 바깥의 인간들과 공존공생의 관계를 맺어서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서로 남는 물자를 바꾸어 쓰는 교역의 길이며, 마지막 하나는 약탈하는 것이었다. 이 중 앞의 두 가지 방법에 대해 농경 정착 사회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을 것인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 p.165-168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의 정보화를 두고 인류역사를 뒤바꿔놓은 3대 혁명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한다. 농업혁명, 산업혁명에 이어 등장한 정보화혁명은 인류를 전혀 새로운 삶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사이버 영토, 사이버 거래, 사이버 가수, 사이버 머니, 사이버 소설 등 지금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대지를 만나고 있다. 그 새로운 대지를 가능케 한 것, 또 그 때문에 펼쳐지는 문명의 속성과 삶의 성격, 사실은 이 모든 21세기적인 현상들의 모태를 칭기스칸 제국은 가지고 있었다.

하나, 역참제

오늘날 새로운 역사의 대지를 묶고 있는 것은 인터넷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인터넷의 모델이 일찍이 13세기 유라시아 대륙 초원의 유목제국에서 이미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칭기스칸 제국이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의 유목제국을 하나의 네트워크 망으로 연결하면서 설치했던 통신방식이 있었다. 역참제!
새로운 정복지가 생겨날 때마다 칭기스칸은 파발마를 두어 정보를 유통시켰다. 몇 킬로미터에 하나씩 역을 만들고, 그 사이를 말들이 달리면, 달리는 말은 한 구간을 뛰지만 칸의 명령이나 보고사항들은 역에서 역으로 연결되어 광활한 대지를 하나로 묶었다. 이 정보가 이동하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고려에서 헝가리까지의 거리일 지라도 전혀 지체하지 않고 지금의 고속버스의 속도로 연결시켰던 것이다.

이 경이로운 릴레이 전달 방식은 인터넷과 더불어 인류 역사상 단 두 번에 걸쳐서 나타난 반(反)중앙집중적 정보전달체제였다고 말할 수 있다. 대륙의 곳곳에 마치 깨알을 뿌려놓은 것처럼 역들을 깔아놓고, 정보를 말에 싣고 달리는 전달자는 아무 역이든 자기의 입장에서 가장 빨리 닿을 수 있는 곳까지만 가면 된다. 그래서 각 전달자는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다.

전달경로도 직선적으로 고정돼 있지 않다. 이 같은 네트워크의 핵심적인 특성은 유연성이라 할 것이다. 만약 직선으로 전달경로가 고정돼 있다면 중간에 어떤 지역에 강이 범람해 홍수가 난다면 거기서 전달은 중단되고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역참제는 그때그때 닥치는 상황에 따라 전달경로가 바뀐다. 수 천 개의 역이 점점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 전달경로는 가장 빠른 길을 찾아 때에 따라 변경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전화처럼 수신자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최종 수신자가 이동중일 수도 있으므로 역참제는 이동중인 최종수신자의 이동방향과 속도, 경로에 따라 그 전달경로 역시 이동한다는 것이다. 정착문명의 네트워크인 전화가 고정표적을 향해 사격하는 직격포탄이라면, 유목이동문명의 네트워크인 역참제는 이동표적을 향해 사격되는 자동추적 미사일에 비유된다.

역참제와 인터넷, 이 둘의 차이가 있다면, 하나는 말이 달리고 다른 하나는 전자가 달린다는 점뿐이다. 그 둘에 공통되는 것, 그것을 현대과학에서는 프로토콜(protocol) 방식이라고 한다.

둘, 속도 숭배와 물품의 휴대화

유목 문명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남기고 있는 유산 중의 또 하나는 속도를 중시하고 모든 물품을 간소화, 경량화, 휴대화 하는 이동적 마인드이다. 칭기스칸이 대제국을 건설한 배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말이 가져다 주는 속도의 경쟁력이었다.

농지에 정착해서 사는 사람은 식물이 자라는 것, 수확량이 느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다. 그들에게 속도란 아무 의미가 없다. 유목민들은 사냥하고 전쟁하기 위해, 즉 살기 위해 속도가 중요했고, 말이 중요했다. 걸어다니면서 싸우는 사람과 말을 타고 달리면서 싸우는 사람의 전쟁은 승패가 뻔하다.

디지털 문명시대에 국가의 졍쟁력은 그 땅덩어리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다이나믹한 속도에 좌우된다. 칭기스칸은 이것을 8백년이나 앞서서 실현했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인구가 적은 몽골이지만, 사람 수를 늘릴 수 없다면 속도는 늘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군사장비를 경량화 하고, 군대식량의 무게를 줄이는 것은 속도를 빠르게 하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당시 유럽 기사단의 갑옷 및 무기의 무게는 70kg이지만 유목민들의 것은 7kg 밖에 나가지 않았다. 가벼운 갑옷, 가벼운 화살 등 여러 신소재들을 개발하고 무기로서 가치가 없는 것은 없앴다. 또한 육포, 설렁탕, 햄버거 등 요즘 인스턴트 음식의 시초인 식량을 만들어 군량미의 무게를 가볍게 하였다. 소 한 마리를 말려 만든 육포는 양의 방광에 모두 들어가 병사 1인의 1년 식량이 되었다. 대규모 원정전쟁은 동원할 병사의 숫자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군량을 운반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파하였던 것이다.

셋, 레고 문명의 발상지.

칭기스칸의 현재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군대의 호환성을 높인 점인지도 모른다. 칭기스칸의 군대는 그가 손을 한번 들면 10만이 되고 한번 더 들면 20만, 30만, 40만 등으로 얼마든지 변신 가능했다고 한다. 군대의 숫자가 이렇게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했다니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이것은 영웅들에게 따라붙는 설화적 과장이 아닐까?

그러나 사실이었다. 칭기스칸은 자기 조직을 레고(lego) 조직으로 만들었다.
레고는 '21세기를 통털어 가장 보편적인 놀이도구'라고 일컬어진다. 다 알다시피 레고는 조각들을 이리저리 구상하는 데로 맞추면 자동차도 되고 배도 되며 집도 된다.

칭기스칸은 몽골고원에서 출발하여 유럽에까지 이르는 대원정을 장기간에 걸쳐서 벌였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전사자도 늘어나고 부상자도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필요한 임무를 수행할 사람이 없어서 정상적인 전투를 진행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도 생겨났을 것이다. 애초부터 칭기스칸 군대는 다른 정착문명의 대국에 비해 소수였다.

여기서 칭기스칸이 찾은 방법이 현지동원이었다. 새롭게 정복한 곳에서 적의 병력 즉 포로도 칭기스칸 군대로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병력은 항상 충분했고 칭기스칸이 원할 경우 20만이 되기도 하고 30만이 되기도 한 것이었다. 칭기스칸은 레고 게임을 한 것이다.
몽골인들은 양을 잡을 때, 칼로 명치 윗 부분을 조금 자르고는 그 작은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맥만 짚어서 양을 죽인다. 그리고 그것이 양을 가장 편안하고 고통 없이 죽이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도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죽임이었고, 양은 '매에'하는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수천 년의 역사를 동물과 함께 살아온 그들은 지금도 동물을 죽일 때에 자신이 갖출 예를 모두 보여줌으로써 동반자임을 확인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절대로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든가, 날이 어두워지면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양을 잡아주지 않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날씨에 내 양을 먼 길 가게 만들 수 있느냐?고 물어오는 유목민들에게 이방인이 내미는 돈 뭉치는 참으로 부끄러운 문명의 부스러기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 현장에서 전혀 새로운 세계관을 교양받아야 했다. 양을 죽이고 나면 가죽을 벗겨 땅바닥에 펼쳐 놓는다. 그리고는 칼 하나 대지 않고 관절을 분해하고 내장을 뜯어서 옮겨 담는다. 물이 부족한 사람들이 택한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하겠지만, 살과 뼈와 내장과 피를 마술이나 부리듯 칼 한번 대지 않고 처리하는 모습은 그들이 말하는 대로 '도륙할 수 없는 동반자'이기 때문에 다정히 어루만지듯 분해한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동물이 살기 위해 이동을 하면 그들을 쫓아가는 것만으로 목숨이 유지되었던 사람들에게 동물을 대하는 것은 곧 신앙이고 존경이었던 것이다. 이 양을 잡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유목의 삶이 처음 생성되어 13세기 몽골제국을 이루기까지의 장구한 역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참으로 유서 깊고 눈물겨운 생존사(史)였다.
--- p.105-106
그러나 지금 우리는 오랜 정착문명 시대에서 벗어나 기존의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고 기존의 생존방식으로는 살아가기 곤란한 매우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불행한 자들과 행복한 자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정착문명의 성곽들이 다시 무너지고, 또 한번 인간의 역사는 폭풍처럼 질주하는 영혼의 시대, 바람속을 고향으로 삼는 이동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든 칸막이는 무너지고 있으며 경계는 파괴되고 정착의 고정된 근거지들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자신의 칸막이 안에서 안주하며 살고자하는 욕망은 이제 더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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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피해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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