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할 때, 사람들은 가끔 비현실적인 감정에 젖어, 평소라면 절대로 사지 않았을 물건을 덥석 사버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나처럼 유혹에 약한 타입은 가는 곳마다 상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집에 돌아올 때에는 내 머리를 의심할 정도로 이상한 물건을 산더미처럼 짊어지고 오기 일쑤이다.
터키에 가면 융단 장사에게, 이탈리아에 가면 베니스의 상인에게…… 여태까지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속아온 나였지만, 가장 가슴 졸였던 것은 영국의 모피 상점에서였다. 나는 그 상점에서 엔화로 약 90만 엔 정도 되는 펜디 코트를 샀다.
"무슨 영국에서 펜디야? 펜디는 이탈리아제 브랜드 아닌가?"
하고 말하겠지만, 쇼핑이란 '만남'이다.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멕시코인과 태국인이 북극에서 만나 결혼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있나?). 따라서, 이상하게도 영국에서 펜디 코트를 만난 나는 즉시 구입하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내 사이즈가 없었다. 안타까워하는 내게 점원이 이렇게 말했다.
"손님 사이즈는 6개월 후에 들어옵니다. 지금 가격의 절반을 지불하시면 입하되는 즉시 일본으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 시점에서 나머지 반을 지불하시면 배편으로 코트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떠세요, 괜찮은 방법이죠? 고민할 필요 있나요?"
고민할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까. 지금 여기에서 반값인 50만 엔 정도를 지불한다 해도, 6개월 후에 그가 정말로 코트를 보내줄 것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사기를 친다고 해도 멀리 일본에 살고 있고, 영어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내게 별 뾰족한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 코트를 갖고 싶었다. 더구나, 점원을 향해 '당신을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No라고 말할 줄 모르는 일본인…… 그것은 바로 나다.
결국, 속을지도 모른다고 망설이면서도 50만 엔을 지불하고, 만일의 경우 법적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영수증 한 장을 손에 들고 부랴부랴 상점을 나왔다. 귀국하고 나서도 50만 엔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매일 후회의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6개월 후, 그 모피 상점에서 팩스가 도착했다.
'코트가 들어왔으니, 잔금 40만 엔을 지불해주십시오.'
라는 내용이다. 나는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나머지 돈을 지불해도 코트를 보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손해 금액은 50만 엔에서 무려 90만 엔으로 껑충 뛸 텐데. 아, 어떻게 한다, 나카무라 우사기? 에이, 모르겠다. 독을 마시려면 접시까지! 우리는 사무라이다. 바보! 이렇게 해서 나는 런던 모피 상점에 잔금을 지불하고, 전전긍긍하며 배편을 기다렸다. 그야말로 스릴 넘치는 하루하루였다. 대학 합격 발표보다 더 가슴 졸였다.
과연 결과는 어떠했을까…… 도착했다, 무사히. 모피 깃이 달린 아름다운 펜디 코트가! 세상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류 모두가 형제이다. 잠시 동안, 나는 마더 테레사도 놀랄 만한 인류애를 느꼈지만…… 사실, 딱 한 가지 불안감을 남기고 있었다. 과연, 이 코트는 오리지널 펜디인가? 직영점에서 사지 않는 한, 이런 불안은 늘 달고 살아야 한다. 90만 엔(세금과 송금 수수료를 포함하면 100만 엔)이나 지불하고 가짜를 샀다면, 나 제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
이 '과연 진품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 코트를 입고 펜디 직영점에 가서 태연하게 점원의 반응을 살펴보았지만, 점원은 완전히 무반응 그 자체였다. 아아, 그렇다면, 역시 가짜……? 이렇게 끙끙 앓을 것 같았으면, 사지 않았을 텐데. 쇼핑광도 재미없다.
--- 본문 중에서
아니, 나는 나쁘지 않다. 여왕님의 환상을 지지하지 않는 바로 이녀석(디오르의 구두)이 나쁘다. 세상을 잘못 만났다면, 너 같은 것은 당장 참수형이다. 동화애는 나오지 않지만,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외친 그 빌어먹을 녀석도 분명 처형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다, 나는. 벌거벗은 여왕님을 바라보는 세상의 눈초리는 냉정하다. 하지만 그게 대수인가. 세상의 비웃음 따위, '이 디오르 구두로 뭉개버릴테다!'
---p.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