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로봇'이라는 표현은 게임 『슈퍼 로봇 대전』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일반화되었다. 1991년 4월 20일 일본의 완구회사 반다이의 자회사인 반프레스토가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 용으로『슈퍼 로봇 대전』을 발매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그후 패밀리 게임기용으로 발매된 『제2차 슈퍼 로봇 대전』, 슈퍼 패미컴 게임기용으로 발매된 『제3차 슈퍼 로봇 대전』등으로 발전을 거듭해오면서 이 게임 시리즈는 로봇 애니메이션의 인기와 게임 자체의 뛰어난 완성도에 힘입어 히트작으로 자리잡았다. 나아가서 '슈퍼 로봇', '리얼 로봇' 등의 용어 정착과 다시 보기 힘든 명작 로봇물의 재평가에 지대한 공현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국내에서 보기 힘든 옛날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의 인지도를 넓히는 데에는 실로 엄청난 역할을 했다. 사실 국내에서 TV로 방영도 되지 않은 수많은 로봇 애니메이션의 팬들이 많은 이유, 심지어 그 주제가까지 일본어로 따라 부를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슈퍼 로봇 대전』을 빼놓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과연 '슈퍼 로봇'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슈퍼 로봇물이라고 하면 소위 '리얼 로봇물'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즉 열혈과 근성을 키워드로, 파일럿이 주역 로봇과 일체화되어 표현되거나 로봇이 인간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듯 묘사되는 것이 슈퍼 로봇물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봇이 공격당하면 파일럿까지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아무런 특별한 의미가 없는 '얼굴'이 존재하는 로봇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반대로 리얼 로봇물은 로봇의 전투에 전쟁이란 개념을 도입하고 로봇 그 자체도 리얼하게 묘사하며 더 이상 로봇이 주역이 아닌 도구로서 취급된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때문에 광자력과 같은 황당한 동원력이 아닌 가솔린을 쓴다거나, 우주 공간에서의 전투에 굳이 인형 병기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특수 입자 탓에 레이더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등 설정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 pp. 11~12
사실 마징가 Z는 로봇으로서는 지나치게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디자인되었다. 몸체는 검은 색이 주조를 이루는 디자인, 핏빛처럼 붉은 가슴의 고열판. 그 당시에 만들어진 로봇들은 전부 눈동자가 있었는데, 눈동자 없이 치켜 뜬 마징가 Z의 눈은 무시무시한 느낌마저 주고 있지 않은가. 이빨을 드러낸 입 주변의 바이저도 인상적이다. 이것은 모두 원작자 나가이 고의 악마 취향에서 따온 모습인데, 사실 마징가 Z는 악마가 만들었다는 초기 설정도 있었을 정도로 선악이 뒤바뀐 설정을 즐기는 전형적인 나가이고 스타일의 로봇이었던 것이다.
그런 마징가 Z가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마징가 Z는 혼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대한 고철 덩어리일 뿐이다. 카부토 코지가 '파일더 온!'으로 탑승해야만 65만 마력의 파괴력을 지닌 병기로 변하는 것이다. 이것은 철인 28호나 자이언트 로보처럼 명령하거나 부탁하면 대신 싸워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파일럿 자신이 수족처럼 로봇을 부릴 수 있다면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은 마치 『가면 라이더』나 다른 히어로물에서 보여주는 변신과도 비슷한 부분이다. 하지만 변신은 자신의 모습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둔갑시키는 기술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느낌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로봇에 탑승한다는 것은 타고난 능력이나 인체의 개조와는 달리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단순하게 파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 때문에 소년들은 이런 로봇물에 열광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도 카부토 코지가, 아무로 레이가, 이카리 신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대 로봇물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pp. 27~28
결국 『겟타 로보』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합체와 변형이다. 합체와 변형 속에 필살기를 통해 거대한 로봇의 히어로성을 느끼게 해주는 카타르시스. 그것이 감동적인 '드라마'를 낳을 때야말로 슈퍼 로봇물의 진면모를 알 수 있다. '리얼'이라는 이름 하에 잃어버린 뜨거운 생명의 드라마가 불굴의 의지가, 로봇 애니메이션이 그 옛날 갖고 있었던 파괴적인 악의 힘, 끈질긴 생명력, 무시무시한 감동이 그 안에 있다. 그것이야말로 로봇 애니메이션이 가장 번성하던 19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었던 힘이요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상대하는 적의 매력 또한 상당한 것이었다. 악마적인 힘, 개성적인 캐릭터, 매력적인 사악함, 거기에 더불어 잘생긴 미형이기까지 하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이 1970년대 로봇 애니메이션의 적 캐릭터들이었다.
--- p.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