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1994년 07월 31일 |
---|---|
쪽수, 무게, 크기 | 160쪽 | 128*188*20mm |
ISBN13 | 9788908060104 |
ISBN10 | 8908060103 |
발행일 | 1994년 07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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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60쪽 | 128*188*20mm |
ISBN13 | 9788908060104 |
ISBN10 | 8908060103 |
1. 알프스 산정의 차집 2. 목마른 계절 3. 먼 곳에서의 그리움 4. 집시처럼 5. 뮌헨의 몽마르트르 6. 엄지손가락 여행 7. 이미륵 씨의 무덤을 찾아서 8. 사랑을 받고 싶은 본능 9. 독일로 가는 길 10. 덫에 걸린 세대 11. 남자 - 그 영원한 보헤미안 12. 봄에 생각한다 13. 가을이면 앓는 병 14. 긴 방황 15. 1964년 여름, 만리포 16. 싹튼 에고이즘의 고독 17. 사랑의 다이얼로그 18. 극기와 시간의 풍화작용 19.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의 의지 20. 유치진 선생님께 21. 헤세로부터의 편지 22. 파스테르나크와 더불어 23. 잊혀지지 않는 영화 장면 24. 헤세의 수채화 25. 출산에서 배운 것 26. 사치의 바벨탑 27. 남자와 남편은 다르다 28. 순간의 지속 29. 죽음에 관하여 30. 행복하게 사는 소망 |
내가 가진 책은 천원짜리다.
어쩌면 모든 사춘기, 이십대 초반의 여자들이 누군지 안다면 다들 한번씩 찾아 읽어볼 거 같은 전혜린의 책이다.
나도 사춘기때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홀딱 반했었다.
전혜린이라는 이름자만 들어가도 다 가지고 읽고 싶을 만큼.
밤잠 안 자고 읽으면서 가슴이 뛰었더랬다.
근데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얼마전에 동생집에서 다시 보곤 홀랑 들고 읽었다.
손에 쏙 들어오는 문고판 작은 글씨들. 요즘의 책에 비하면 초라한 편집(?).
그 때의 설렘을 다시 전해주고 지금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서른한살에 세상을 등졌지만, 나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생각을 이렇듯 눈에 보이게 남겨 놓은 사람.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읽은 전혜린은 새로운 느낌이다.
어렸을 땐 대단해 보이기만 하더니, 지금은 나이가 많다고 한마디씩 덧붙이고 싶은 게 생기더라.
정말 똑똑하지만, 현실을 살지 못한게 아닌가 하는. 아니 너무 똑똑했기에 지리멸렬한 삶을 이겨내지 못한게 아닌가 하는.
그녀가 살던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여자에게 어려운 환경이었겠지. 어쩌면 그래서 우리 나라보다 독일, 유럽의 문명에 그리 심취했겠지.
그녀의 환경. 이 그녀를 그렇게 닫힌 사고로 이끌었겠지. 생각, 사상을 현학적으로 공부할 순 있었겠으나, 유학생활의 경험을 제외하면 생활인으로써 삶의 고난에 직면하긴 힘든 환경을 가지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들.
물론 아직도 그녀의 감수성과 그 감수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그녀의 깊이 있는 생각들. 그 젊은 나이에 그녀가 이룬 성과들 같은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그 짧은 생과 현실 속 인간관계 딸과 남편등 생활인으로써의 인간관계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모습들이 언뜻 언뜻 보이는 것이 안타깝다.
그녀의 생이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그녀는 그녀가 살아왔던 삶보다 더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헛된 생각을 해본다.
아직도 이 책을 비롯한 그녀의 글들을 읽으면 나의 생활이 부끄럽다. 나의 삶에 대한 태도도. 좀 더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들을 한다.
시대차가 분명 있는데도 그녀가 바라본 세상에 대한 생각은 나의 어리석음을 떠올리게 해주고 좀 더 많은 고민을 하면서 생각의 깊이를 키우고 싶다는 바램을 갖게 한다.
이제는 꺼져버린 그녀보다 훨씬 더 살아버렸는데도 아직도 혼란에 겨운 나 자신을 보며 더 제대로 살아야지 더 많이 배워야지 하는 책찍질을 하게 된다.
맨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밤새운 새벽 밝아오는 새벽빛 속에서 유리창에 머리를 대고 열심히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흐뭇함을 표현한 글을 보곤 일없이 잠을 쫓아가며 밤을 새워 무언가를 하곤 나도 뿌듯해하곤 했다.
그런 식으로나마 그 치열함을 체험하고 싶었다. -그게 심해져 만성 불면증이 되었나?
여전히 그 치열함을 본받고 싶다. 나름대로의 치열함. 무위로 세월을 흘려보내는게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
아직도 그녀는 나를 많이 부끄럽게 하고 부럽게 한다.
아마도 종종 다시 읽어봐야지 .
어떤 날은 만리포가 가보고 싶고 여전히 슈바빙이 찾아보고 싶고 앙드레지드, 파스테르나크 등을 찾아 읽고 싶게 하는 그녀가 여전히 좋다.
p130
모든 평범한 것, 사소한 것, 게으른 것, 목적 없는 것, 무기력한 것, 비굴한 것을 나는 증오한다! 자기 성장에 대해 아무 사고(思考)도 지출하지 않는 나무를 나는 증오한다. 경멸한다.
모든 유동하지 않는 것, 정지한 것은 퇴폐다.
저열한 충동으로만 살고, 거기에도 만족하지 않는 여자를 나는 증오한다.
나무는 하늘 높이높이 치솟고자 발돋음하지 않으면 안된다. 별에까지 닿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비록 그것이 허락되지 ㅇ낳더라도......
동경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에로스'- 닿을 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의 추구-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고 그저 좀 교활한 동물일 뿐이다.
; 전혜린의 삶을 정말 잘 이해할 수 있는 글이다.
p132
모든 일에서
극단에까지 가고 싶다.
일에서나, 길에서나,
마음의 혼란에서나,
재빠른 나날의 핵심에까지
그것들의 원인과
근원과 뿌리
본질에까지,
운명과 우연의 끈을 항상 잡고서
살고,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발견하고 싶다.
; 파스테르나크의 시 중 일부분이다.
아마도 그녀가 느낀 것을 나도 느꼈겠지.
작은 크기, 적은 페이지, 싼 책값이지만, 내게 추억을 불러일으켜 준 힘은 컸던 책이다. 내가, 그 어린 시절에, 이 글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던가. 다시 그 시절을 생각하며 이 글을 읽고 있노라니, 어찌 이리도 아늑한가.
작가는 지금 내가 생각해 볼 때, 어린 나이에 요절했다. 어떤 간절함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어갔는지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겠으나,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다. 내가 고등학생 때(혹은 대학생일 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를 읽으면서 넘겨보았던 서른 살은 참으로 아득했는데, 어쩌면 나 또한 야릇한 두려움으로 나이 삼십을 예상해 보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지나와 보고 나니 그래도 살만 했다 싶은데, 더욱이 정화라는 예쁜 딸아이의 엄마로서 아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그녀였는데.
그 때 그 어린 시절에 본 책은 아니지만, 그 책은 그대로 있지만, 이 작고 어여쁜 책을 구한 내 본심은 새로운 추억 하나를 더 만들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십 넘어서 읽는 삼십대 여자의 치열했던 삶.
돌아보면 나는 그녀의 어떤 부분은 본받고 싶어했고 어떤 부분은 도저히 따를 수 없을 것 같아 동경으로만 남겨 두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내 어린 날을 기억한다. 밤을 새고 본 새벽빛이 황홀했다는 그녀의 말이 궁금하여 나도 밤 꼴딱 새고 지켜보았던 동트는 장면, 오로지 홀로 공부로 밤을 새운 내 자신이 대견하여 더욱 찬란했던 새벽, 그 환희를 잊지 못하고 이후로 한동안 밤을 꼴딱꼴딱 새곤 했던 나의 즐거운 비밀.(밤새 공부하고 학교에 가서는 내내 졸고, 친구들에게는 공부 안 하는 척하곤 했던 나의 내숭 가득했던 날들) 나는 지금도 밤새 일을 하고 난 뒤면 늘 전혜린의 글을 떠올리고 있으니.
절대로 평범하지 않으리라고 했던 그녀의 결심이 그녀의 삶을 더 힘겹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야 지극히 평범한 삶을 이루는 일이 내 삶의 최대 목표인 사람이므로, 그 부분에서는 그녀의 진정한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으리라. 다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쉬워할 뿐이고.
블로그 이웃의 지나가다 해 주신 '알프스 산정의 찻집' 이라는 말 때문에 다시 읽어 본 작은 책. 때때로 다시 보게 될 듯하다. 추억이 그리울 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