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입은 어린 아이가 살고 있다. 그 아이는 과거 어느 순간 깊은 상처를 입고 마음 안으로 들어가 성장을 멈추어 버렸다. 우리는 가끔 한밤중에 흐느끼는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진정 그 아이의 고통을 어루만져 달래고, 멈추어 버린 성장을 계속하게 하려면 그 아이가 마음껏 울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어디가 아팠는지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게 과거의 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제2의 성장통을 겪어내야 한다. ---「서문」중에서
세상에는 무수한 종류의 어른이 있다. 그들은 각자 자기 방식을 유지하며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 어른은 별다른 게 아니다. 어른이란 제 인생의 짐을 제가 들고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 짐은 무겁지만 좋은 점도 참 많다. 그 짐을 내가 드는 순간, 나는 나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듣기 싫지만 많이 하는 말 나잇값에 대하여」중에서
권태는 우리의 이상이 너무 높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이상에 비해 너무 초라할 때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한 채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경시하고 차단해 버린다. 따라서 아무것에도 흥미와 호기심을 느끼지 못하고, 세상일에 심드렁해진다. 그러니 크게 기쁠 일도, 크게 슬플 일도 없는 것이다. ---「크게 기뻐할 일도, 크게 슬퍼할 일도 없다?」중에서
이 피터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들의 가벼움과 쾌활함 뒤에 숨죽이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된다. 사랑을 절실히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동정과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의 얼굴,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에게도 감동받고 싶어 하지 않는 화가 난 아이의 얼굴. 그리고 항상 호언장담하는 얼굴 뒤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다. ---「몸은 어른 마음은 아이인 사람들」중에서
지나친 이상화에서 벗어나야 나와 타인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으며, 그래야 서로 감싸 주며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어쩌면 그 너그러움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어른이 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혹은 그 어떤 과거를 떠나보내지 못한 사람들이여!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제 그만 떠나보내라. 물론 떠나보내는 작업은 쉽지 않다. 하지만 과거를 떠나보내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러니 그게 무엇이든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떠나보내라.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제 그만 떠나보내라」중에서
모든 상처에는 흉터가 남는다. 그 흉터는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훈장이 될 수도 있고, 숨기고 싶은 창피한 흔적이 될 수도 있다. 내 딸아이는 어릴 때 심장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아이의 가슴에는 그때의 수술자국이 길게 나 있다. 딸아이는 그 흉터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어느 날 나는 우울해하는 아이를 품에 꼭 안으며 말해 주었다. “그 흉터는 바로 네가 큰 병을 이겨냈다는 징표란다. 어린 나이에 그 큰 수술을 견뎌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어. 그래서 난 네 흉터가 오히려 자랑스럽단다.”---「상처는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다」중에서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하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당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 중 30%가 당신을 좋아하고, 50%가 당신을 보통으로 생각하고, 20%가 당신을 싫어한다면 대성공이다.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당신에게」중에서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한다. 사랑받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똑똑한 것도,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솔직해지는 것이다. 나도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진지한 관계를 싫어하는 당신에게」중에서
우리는 부모가 우리에게 준 상처 때문에 분노한다. 부모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을 주지 않은 것 때문에 분노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아직 분노하는 이유는 사랑을 받고 싶어서다.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다. ---「권위를 극도로 싫어하는 당신에게」중에서
평범한 것은 시시한 것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세상에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단지 조금 더 머리 좋은 사람, 조금 더 성공한 사람, 조금 더 착한 사람 등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 또한 모두 평범한 인간이며, 인생의 행복은 그 평범함 속에 있다. ---「모든 게 시시하다는 당신에게」중에서
흔히 사람들은 우울의 반대말을 유쾌함이나, 즐거움, 고통 없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울의 반대말은 바로 ‘생동감(vitality)’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우울하지 않은 상태’는 생동감이 넘치면서 즐거운 감정뿐만 아니라 그것이 질투나 시기, 혐오, 절망 등과 같이 피하고 싶은 감정이라도 자발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느낀다는 걸 의미한다. ---「우울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보다 우울한 사람이 나은 이유」중에서
슬픔을 이기는 방법은 슬픔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슬픔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그러므로 슬픔이 찾아왔을 때는 충분히 슬퍼하라. 그리곤 그 슬픔을 놓아 주라. 그러면 당신은 슬픔이 남기고 간 선물들을 받게 될 것이다. ---「슬픔은 강물처럼, 바람처럼 흘려보내라」중에서
만일 누군가가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 주길 바라고, 불평불만을 늘어놓기에 바쁘며, 이기적이고, 쉽게 포기해 버리고, 주변 사람들과 자주 다투고, 신체의 작은 아픔에도 지나치게 집착하며 염려하는 노인이 있다면 우리는 때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우리에게 어떻게 당신의 사소한 모든 일에, 또 작은 불평들에 대해서 일일이 신경 써달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중에서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중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순간순간의 삶 속에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감사하면서 살 수 있다면,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내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우는 나를 다독여 주며 나의 공포를 나눠 가질 사람을 만들 수 있다면, 그의 손에 내가 이제껏 들고 있던 삶의 배턴을 넘겨 줄 수만 있다면 죽음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죽어가는 나에게 ‘사랑한다’라고 속삭여 줄 사람과 내가 ‘사랑한다’고 작별의 인사를 나눌 사람이 있다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내 인생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과정이 될 것이다.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법」중에서
용서를 했다고 싫어하던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용서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처럼, 용서는 그 사람의 잘못을 다 이해하고 인정하며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용서는 신만이 하는 용서다. 때로는 용서에 대한 이런 오해가 스스로를 괴롭히고 오히려 용서하는 것을 막는다.
---「용서하라는 것이 그를 사랑하라는 뜻은 아니다」중에서
4. 본문 중에서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올 때가 있다.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똑같은 12년이라도 그 결과가 확실히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내가 2001년 2월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깨달은 삶의 진실이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중에서
사람들이 나의 병에 대해 알고 나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어떻게 위로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먼저 웃으며 그런다. “제가요. 옛날에는 가진 거라곤 돈하고 미모밖에 없었거든요. 근데 나이가 드니까 병하고 빚밖에 안 남았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을 풀고 나를 대하는 걸 불편해하지 않는다. 내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나는 병자다’라며 늘 우울하게 살기는 싫다. 나는 여전히 농담을 즐기고, 사람들과 웃으며 살고 싶다.
---「파킨슨병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중에서
이 길이 맞을까 저 길이 맞을까,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길로 가는 게 맞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걸어간 길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이다. 물론 선택한 길이 틀릴 수도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낭떠러지에 도착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두려워 한 발짝도 떼지 않으면 영영 아무데도 못 가게 된다.
---「딱 한 발짝만 내디뎌 보라」중에서
나는 최선이 아닌 차선의 길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발견했고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는데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했다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문이 닫힌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중에서
버티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 일의 의미와 절박성을 깨닫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필요한 것들을 재정비하며 결국은 살아남는 법을 익히게 된다. 그러므로 버티어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이다.
---「때론 버티는 것이 답이다」중에서
더 이상 아는 척 혼자 끙끙대지 말고 초보 티를 내자. 실수 하나 했다고 금방 좌절하고 주눅 들어 있지 말고 딱 한마디만 하라. “모릅니다.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지나 보니 알겠다. 실수가 맘껏 허용되는 것도 초보 때뿐이다. 그때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한 사람일수록 아주 크게 발전한다. 그것이 초보 딱지의 매력이다.
---「처음은 누구나 서툴다」중에서
아무리 준비해도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다. 회사가 원하는 스펙을 다 채우려다 보면 최소한 30대 중반이 넘어야 취업할 수 있을 테고, 아파트를 산 뒤에 결혼하려면 마흔 살이 되기 전에 결혼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완벽한 때를 기다리지 말고, 60퍼센트만 채워졌다고 생각되면 길을 나서 보라.
---「완벽한 때는 결코 오지 않는 법이다」중에서
나는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인생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통제 소재를 내 안으로 가져올 것.’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내가 맞춰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내가 저 일을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기 싫은 일을 할 때조차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거다’, ‘내가 빨리 해 주고 넘어가 버리는 거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내가 그 일의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되는 것이다.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중에서
저녁 무렵 석양을 보고 있을 때였다. 아름답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 “아 참 좋다! 그치?” 했는데 그에 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맞다, 내가 혼자 온 거지.’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그 순간 너무나 외롭고 쓸쓸했다. “아 참 좋다! 그치?”라고 말하면 “그러게 진짜 좋다!”라고 말해 줄 사람, “이거 너무 맛있지 않니?”라고 물으면 “응, 너무 맛있다”라고 답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치이다 어쩔 수 없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면, 그래서 애써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고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보라.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정말 좋은지 말이다.
---「늘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중에서
지금까지 살아 보니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열 명 중 두 명 정도였다. 그리고 나와 맞지 않는 두 명은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결코 가까워지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껄끄러운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에 너무 에너지를 쏟아붓지 마라. 차라리 그 에너지를 여덟 명과의 즐거운 시간에 투자해라. 결국 인생은 즐거운 시간의 합만큼만 의미 있는 것이니까.
---「직장 선후배를 굳이 좋아하려 들지 마라」중에서
나는 당신이 어느 순간부터 세상에 대해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며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면, 당신에게 삶과의 연애를 권한다. 삶과 연애해 보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모두 뻔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을 멈추고 그냥 삶을 살아 보면, 연애하는 마음으로 기대와 설렘을 가진다면, 세상은 당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또한 당신이 그 세상을 보고 감탄한다면 무의미한 오늘이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삶과 연애하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