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을 대신하며 _ 부모도 자식의 한이 되더라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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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말하지만, 가능성이 있는데 손을 놓는 게 아니야. 엄마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으로 포기하는 길을 택한 거야. 이제 우리가 엄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야.”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게 고작 엄마를 포기하는 일뿐이라니…. 연수는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기라도 하는 것처럼 쓰라렸다. 아버지 말대로 집에 와선 손 하나 까딱 않고, 그것도 모자라 늘상 바깥일 힘들다고 짜증이나 내던 딸이, 마지막으로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엄마를 포기하는 일뿐이다. “전요, 아줌마, 전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사람은 다, 한 번은 다 죽는데, 우리 엄마가 죽게 될 줄은 정말 몰랐고, 딸들은 다 도둑년이라는데 제가 이렇게 나쁜 년인지 전 몰랐어요. 지금 이 순간두 난 엄마가 얼마나 아플까보다는 엄마가 안 계시면 난 어쩌나,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엄마가 없는데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까,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나, 어떡해요, 아줌마?” --- p.168 엄마는 이불을 끌어올려 할머니의 목까지 덮어주었다. 그러다, 한순간 흠칫 숨을 멈추었다. 목숨이 무엇이관데, 사는 게 무엇이관데 죽을 날 가까운 노모가 아들한테 방문 못질을 당하고, 손주놈한테 모진 소리를 들어야 하나. 이제 내 한 몸 죽어지면 끈 떨어진 갓처럼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구박이나 당하며 사실 텐데…. 나 간 뒤에도, 이 노인네 투정 부리며 밥 잘 드실까. 기세 좋게 심통 부리며 이년, 저년 욕도 잘하실까. 아니, 아니지…. 갑자기 엄마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한참을 소리 없이 울어대던 엄마의 슬픈 눈에 돌연 비장한 빛이 떠올랐다. 엄마는 이불자락을 잡아채더니 머리끝까지 할머니를 덮어 씌웠다. 잠결에 숨이 막힌 시어머니가 이불 속에서 발버둥을 쳤다. 엄마는 눈을 꾹 감은 채 팔에 힘을 주었다. 온 힘을 다해 이불을 누르고 있는 엄마의 얼굴에 뭔지 모를 비애와 독한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이미 엄마의 이마와 볼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어머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나 살았을 때 어머니가 죽어야 어머니도 편하고, 그래야 나도 편히 눈을 감지. 이제 금방 만날 거야, 어머니. 저승에 가서 내가 백 배, 천 배 더 효도할게….’ --- p.270 “나, 보고 싶을 거는 같애?” 아버지는 엄마를 더 이상 마주보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엄마가 또 묻는다. “언제? 어느 때?” “… 다.” “다 언제?” “아침에 출근하려고 넥타이 맬 때.” “… 또?” “맛없는 된장국 먹을 때.” “또?” “맛있는 된장국 먹을 때.” “또?” 묻는 엄마도, 대답하는 아버지도 점차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보지 않은 채 마음속에 빗장처럼 걸려 있던 말들을 하나씩 하나씩 뱉어냈다. “술 먹을 때, 술 깰 때, 잠자리 볼 때, 잔소리 듣고 싶을 때, 어머니 망령 부릴 때, 연수 시집갈 때, 정수 대학 갈 때, 그놈 졸업할 때, 설날 지짐이 부칠 때, 추석날 송편 빚을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아버지의 고백이 이어지는 동안 엄마는 물기를 가득 머금은 눈으로 괜한 손톱만 물어뜯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엄마도 차마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할 만큼 감정의 진폭이 커지고 있었다. “당신 빨리 와. 나 심심하지 않게.” 기어이 엄마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는 엄마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더 이상 눌러둘 수 없는 슬픔을 꺽꺽 토해냈다. 엄마가 젖은 눈을 들어 수줍게 웃으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여보, 나 이쁘면 뽀뽀나 한번 해주라.” 아버지는 엄마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길고 오랜 영혼의 입맞춤을 했다. “인희야… 정말… 고마웠다….” --- p.302 |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곁에 계실 때 사랑하라!!”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엄마는 맘 놓고 외출 한 번 하기가 어렵다. 그런 엄마가 어렵사리 시어머니를 간병인에게 맡기고 바깥나들이를 간다. 오줌소태가 영 낫지를 않아 약이라도 타 먹기 위해서다. 검사 결과는 자궁암 말기. 이미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되어 수술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엄마는 물론 가족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같은 병원 의사인 아버지만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끌어안고 괴로워한다. 아프다는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은 자신을 자책하며 수술을 고집하지만 온몸에 꽃처럼 퍼진 암세포를 확인하고 울면서 수술실을 나오고 만다. 엄마는 돌아왔지만, 집은 예전의 온기를 잃었다. 텔레비전을 보며 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개던 엄마의 모습, 가족을 위해 아침 식탁을 차리던 엄마의 모습, 소소한 일로도 잔소리를 하던 엄마의 그 모습이 이젠 없다. 엄마가 거기에 그렇게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했던 것인지 가족들은 너무도 늦게 깨닫는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나’의 가족과 너무도 닮아 있다. 아버지는 속마음을 표현할 줄 몰라 늘 무뚝뚝하거나 권위적이고, 자식들은 다 컸다고 밖으로만 나돌고, 평생을 두고 엄마에게 상처가 되는 형제나 자식이 누구에게나 있다.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가족이라 해도 들여다보면 모두들 조금씩 삐거덕거리고 결코 치유되지 않는 상처 또한 한둘 지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집이, 가족이라는 것이 따듯한 위안을 주는 이유는 그 중심에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소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엄마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해준다. 소설 속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실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깨닫게 한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빠른 소설 전개에 흠뻑 빠져 있다가 책장을 덮는 순간, 엄마가 옆에 있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안도하게 한다. 실제 암으로 50대의 젊은 엄마를 잃은 노희경 작가는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곁에 계실 때 효도하라.”는 절대 진리를 한 번이라도 더 깨닫게 해주고 싶어 이 작품을 썼다. 그렇기에 소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세상 모든 엄마에게 바치는 작품이자 동시에 세상 모든 아들과 딸에게 건네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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