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켈트 문화는 장엄한 유물이 다량 발굴된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시의 이름을 딴 할슈타트 문화로서 기원전 800년경 중부 유럽에서 탄생했다. 당시 켈트 지역은 발칸 반도와 보헤미아 지방에서부터 오늘날의 독일 남부에까지 걸쳐 있었다. 기원전 800년에서 300년 사이에는 터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그리고 마침내 영국과 아일랜드에까지 넓혀졌다. 따라서 선사시대 유럽에서 켈트인의 비중은 매우 컸다. 그러나 그 누구도 '켈트 문명'을 대표한는 문화적 특질이 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각각의 켈트 사회는 다양한 역사적ㆍ지리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발전했다. 어떤 사회는 교역을 중시했고, 어떤 사회는 농업과 목축에 주력했다. 사회구조의 차이도 커서 어떤 사회는 전사나 부유한 귀족이 지배층이었고 어떤 사회는 그 지역의 타종족과 혼합된 사회구조를 빚어내기도 했다.
19세기 중엽 고고학의 선구자 테오도르 엥겔스가 발굴한 할슈타트의 켈트인 무덤에서는 토산품과 외래품의 많이 출토됐다. 엥겔스가 작업으로 모습을 드러낸 정교한 철기사회는 인근의 소금 광산을 권력의 기반으로 삼은 지배집단이 군림하던 사회였다. 지배집단은 멋진 성을 짓고 봉분封墳 속에 매장됐는데, 그 시신을 수많은 부장품에 둘러싸인 장례용 작은 마차속에 눕히곤 했다. 후기 할슈타트 시대의 켈트인은 소금 무역으로 번성했으며 론 강을 따라 내려가는 무역로를 통해 마르세유의 그리스 식민도시, 더 나아가 지중해 연안의 고전문명권까지 진출했다.
기원전 5세기경 켈트의 중심은 알프스 산악 무역로를 이용해 세력을 키워가던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를 통화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 이 시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장식된 유물들이 처음으로 발굴된 곳의 지명을 따서 라텐 시대라 부른다. 라텐 시대에 켈트 문명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고, 아름다운 예술작품은 영국과 이베리아 반도부터 소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이 미쳤던 모든 곳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머지않아 켈트인은 세력을 확장 중이던 고대 그리스ㆍ로마 문명권과 충돌하게 된다. 기원전 390년경에 로마인들이 갈리Galli 또는 골Gaul이라 부르던 켈트인 집단이 로마를 약탈했다. 다른 켈트인 집단들은 발칸 반도를 거쳐 그리스까지 진출했으며 기원전 279년경에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인들은 이 침입자들을 켈토이 혹은 갈라타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유래된 지명이 터키 북부의 갈라티아Galatia(11쪽 참조)다. 그리스인들이 켈트인의 호전성에 얼마나 진저리를 쳤는지, 한 시인은 켈트인을 올림피아의 신들에 대항한 사나운 거신족 티탄에 비유했다. 그러나 켈트와 그리스ㆍ로마 문명권과의 만남은 충돌로만 그치지 않고 문화 교류를 가져왔으며, 서로 싸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배우기도 했다.
--- pp.10~11
설화가들은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저 세상'이 아일래드어로 '요정의 무덥'을 의미하는 고대 매장지 시드헤sidhe에 있다고 묘사했지만 때로는 바다 저 너머의 목가적인 섬나라를 그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엠하인 아블라크('사과의 지역')나 마그 메알('즐거운 평원')이 있다. 또한 임람으로 알려진 아일랜드 설화들은 '저 세상'으로의 바다 여행을 묘사하기도 한다. 이 설화들에서 영웅과 성인들은 몇몇 섬을 찾아다니는 신비롭고 상징적인 모험을 통해 지력과 용맹을 시험한다.
--- p.67
11세기 아일랜드 문헌에는 성聖 콜룸 실(성 콜룸바)의 복음서로 알려진「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요한복음」의 귀중한 원본을 도난당한 사건이 기록돼 있다. 이 성서들을 넣어두었던 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성물함도 함께 없어졌다. 성물함은 끝내 사라졌지만 도난 당시 3백 살이 넘었던 필사본은 나중에 발견됐다. 오늘날 이 책은 켈스서로 알려져 있어며 현존하는 인슐라 문화의 필사본 중에서 가장 화려하다.
켈스서의 장식은 인슐라 문화 필사본의 예술적 특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의 제작 경위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구상은 스코들랜드 아이오나 섬의 수도원 필사실에서 이루어지고, 제작은 795년 바이킹이 아이오나 섬을 습격하는 바람에 807년 수도사들이 켈스로 피신해서 정착했을 무렵에 끝난 것으로 짐작된다.
최소한 세 명의 필경사와 다섯 명의 삽화가가 켈스서 필사본 제작에 참여했다. 책의 맨 앞에는 사도들의 초상화가 있고 그 다음에 정교한 요약이 나온다. 그리고 많은 초상화 페이지에서 그리스도 생애의 여러 장면들을 볼 수 있다.(89쪽 참조).
--- 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