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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숲, 제주입니다

푸른 숲, 제주입니다

: 푸른 제주를 여행하는 당신을 위한 초록 안내서

북노마드 편집부 편 | 북노마드 | 2016년 04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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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top10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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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10g | 130*185*11mm
ISBN13 9791186561195
ISBN10 11865611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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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 자 소 개
강병한 / 오렌지 다이어리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잡지 기자, 출판사 편집장을 거쳐 제주에 정착한 시골 생활 초보자.

김민채 / 『더 서울』과 『내일로 비밀코스 여행』 『어느 날 문득, 오키나와』를 지었다. 국어국문학을 공부했고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1989년 봄에 태어났다.

김호도 / 다음커뮤니케이션 서비스 기획자. 제주도에 적응하는 법을 느릿느릿 배우고 있는 평범한 사람.

박연준 / 시인.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산문집 『소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등이 있다.

이수영 /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서울을 떠나, 제주 중산간 마을에서 좌충우돌 고군분투 3년째. 거의 24시간을 아내와 두 마리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예다은 / 카카오 서비스 기획자. 여행 작가. 생활하듯 여행하고, 여행하듯 생활한다. 여행 산문집 『올라! 스페인』, 『첫 휴가, 동남아』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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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해안에서 700번 동일주 노선을 타고 삼성혈을 향해 가는 길. 일단 동문시장에서 내려 시장을 구경하고 삼성혈로 갈 작정이다. 여러 번 와봤던 동쪽 해안이지만, 나는 여행자라는 본분을 잊지 않기 위해 이따금 창밖을 살피고,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정류장 이름을 확인한다. 길을 잃기 쉽고 당황하기도 쉬운 나는, 여행자니까. 그러나 애써 그 긴장감을 들키지 않으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창밖을 내다보는 나는, 여행자다.

겨울에도 잎을 쏟아내지 않는다는 비자나무에게 계절이란 무엇일까. 그들이 견뎌온 시간을 생각한다. 계절의 흐름에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그들도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여름이 가을이 되고 또 봄이 되어 싱그럽게 푸른 날들이 몇 번이고 돌아오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비가 떨어지는 날에도, 햇살이 찌르는 날에도 늘 그 푸름을 지켜내는 비자림에서 나는 신기하게도 계절을 읽는다. 계절의 바람을 느낀다. 나무들은 그런 나를 보며 시간을 엿보리라. 세월을 가늠해보리라. 여름의 나와 겨울의 나를 보며 비자나무는 그렇게 계절을 읽어낼 것이다.

적당한 습기와 나무 사이를 흐르는 차분한 바람. 더운 여름이다. 갑갑한 도시의 여름에 숨이 턱 차오를 때 즈음 훌쩍 도망오기 좋은 곳. 그곳이 제주이고, 제주의 숲이다. 사람의 발걸음을 반기는 푹신한 흙길과 새소리가 숲길을 따라 바람이 되어 흐르는 곳. 빗물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숲은 습기를 충분히 먹고 있다. 그것은 도시의 답답한 습기와는 달랐다. 그 습기는 아주 낯선, 숲만의 것이었지만 결코 살갗을 괴롭히는 그런 종류의 습함이 아니었다. 그렇게 붉은 길을 따라, 습기를 머금은 숲길을 걸었다.

숲은 이 시간을 기억해줄 것인가. 나와 그 사람이 함께 걷는 이 시간을. 내 몸을 감싸던 숲의 편안한 습기를 우리는 온몸으로 기억할 것이다. 나의 숨과 숲의 공기가 어우러지던 그 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 “꿉꿉하게 습한 게 아니라 맑은 공기로 습해서 좋은 거 같아.” 옆에 있던 그 사람이 내게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한다. 열병. 한 사람이 내 몸 안에 들어왔다 나가는 것. 나는 그것을 열병이라 생각해왔다. 손톱, 피부 결, 머리칼. 온통 그 사람이 배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온몸이 타오르는 것이다. 내 몸 안에 살았으니까. 구석구석 스친 자리뿐이니까. 숲을 기억하는 내 몸의 방식도 아마 그럴 것이다. 온몸으로 느낀 숲의 습기가 내 몸에서 배어날 것이며, 그로써 기억될 것이다. 몸으로 기억될 장소를 누군가와 걷는 일. 그것은 아스라한 일이고 아픈 일이다.

바람 소리, 바람 소리에도 물기가 차 있다. 저 새들의 소리에도 물이 배어난다. 신기한 일이다. 더운 여름날 이렇게 눅눅하지 않은 물기를 숲 속에서 만나다니. 안개비가 어슴푸레하게 낀 사려니숲길. 이곳에 오기 전 정방폭포의 물을 흠뻑 묻히고 달려왔거늘, 숲으로까지 그 물빛이 이어진다. 숲길, 아니 물길을 걷는 듯하다. 물기가 드리워진 숲의 그늘이 여름을 달랜다. 내 몸은 그렇게 이곳의 습기를 기억할 것이다. 완만한 흙길을 걷고 또 걸어 온몸으로 기억될 장소, 제주의 사려니숲.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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