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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아이

병든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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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420g | 148*210*30mm
ISBN13 9788973819072
ISBN10 897381907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줄리 그레고리
줄리 그레고리는 남부 오하이오에서 자랐다. 영국 셰필드 대학 정신의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한 뒤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 재단의 대변인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juliegregory.com
역자 : 김희정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일하며 가천의과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어린이에게 돈 다스리는 법 가르치기』『종말의 역사』『왜 일본인들은 스모에 열광하는가』『인생의 맥을 짚어라』『고스트 스토리』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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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겁게 걸려 있는 기억은 언제나 가장 쉽게 떠오르는 법이다. 그런 기억들은 누군가의 삶을 영원히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을 겹겹이 접힌 주름 속에 감추고 있다. 모두 털어버린 후에도, 그런 기억들은 영혼의 옷자락 속에 영원한 주름으로 남는다.

오늘도 어린 소녀는 학교에 가지 못한 채, 병원 검사대의 차가운 금속판 위에 누워있다. 이제 겨우 열두 살인 소녀는 볼품없이 키만 클 뿐, 비쩍 마르고 병약하다. 벌써 오후 4시가 다 되어 가지만, 소녀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런데도, 소녀의 어머니는 이상하리만치 들떠 있다. 소녀의 어머니는 병의 원인을 ‘끝까지 밝혀내기’ 위해, 심장을 열어보자고 요구할 참이다. 그녀는 립스틱 자국이 이에 묻어 있지 않는지 확인하고, 의사가 들어오자 소녀에게 경고의 눈길을 보낸다. 그녀의 계획을 소녀가 망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므로.

내 방 문의 플라스틱 손잡이가 천천히 끼이익 열린다. 엄마가 문간에 유령처럼 서 있다. 복도의 불빛이 엄마 뒤에서 빛나고, 엄마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있다. 엄마는 발꿈치를 들고 내 침대로 오더니 몸을 돌려 앉는다. 그때 나는 엄마의 입 속에서 권총을 발견한다. 엄마의 입술은 냉장고 위에서 내린 45구경 권총의 총구를 물고 있다.
“너희는 내가 죽기를 바라지 않니?”


이제 내 얼굴에도 온전히 내 것인 눈물이 흘러내린다. 엄마 때문에 나 때문에, 엄마에게 일어났던 일 때문에, 나도 남자의 손에 같은 일을 당할 거라는 엄마의 말 때문에 약간 정신 나간 오빠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버지, 아니면 옆집 소년일 수도 있는 그런 남자에게서 말이다. 그리고 나는 말한다. 죽지 마 죽지 마 엄마. 그리고 나 자신에게 침묵의 약속을 한다. 어느 누구도 내 그곳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겠다고. 절대로, 절대로 말이다.

“……머리가 아파요.”
엄마는 이런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저런, 여기 편두통약 하나 줄게.” 엄마는 가방 바닥을 마구 헤집으며 더듬거리더니, 작은 약병 하나를 꺼낸다.
“여기 있다, 얘야. 아무래도 두 알을 먹는 게 좋겠다.”
엄마는 밝게 미소 짓는다. 엄마는 지금 여기서, 내가 아픈 바로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옳은 약으로 나를 치료하고 있는 것에 짜릿한 기쁨을 느낀다.


나는 인생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나는 아빠의 관자놀이에 총을 들이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안다. 다른 사람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예감이 어떤 것인지도 안다. 내 몸이 묶이고 잘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알고, 탈출이 어떤 것인지도 안다. 사람들이 씌워놓은 덫에 갖히는 것과 그곳을 빠져나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안다.
나는 드넓은 대양의 한편에 서서, 인생이 주는 모든 진실과 아름다움과 사랑을 넓게 뻗은 두 팔로 받고 있다. 마침내 나는 순수하고 하얀 평화를 되찾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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