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점은 대멸종에서 생존을 판가름하는 한 요인이 행운일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특수하게 적응한 동물들에 비해 생존동물들에게 더 운이 따른다는 것이다. 가장 고등하고 지능적이고 빠르게 번식하는 동물종들은, 입때껏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도전들로 내몰릴 멸종의 재앙이 닥치면 절멸해버릴 수 있다. 보통 진화는 가뭄, 홍수, 포식자, 질병과 같은 평범한 문제들과 마주치면서 유기체들이 세세하게 적응력을 다듬어가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수백만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들은 그냥은 감당해낼 수 없다. 고생물학자 데이비드 라우프David Raup는 이 현상을 기막힌 말로 묘사했다. “나쁜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나쁜 운 때문이다”라고.
--- p. 34
머치슨은 1830년대 동안, 암석층서와 지구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연대를 연구하는 층서학에 전념했다. 이때는 지질학자라는 것이 행복한 시절이었다. 머치슨과 동료들은 말 그대로 지질시대를 하나하나 분류해 새겨 넣었다. 그러던 중 이 일이 단순히 국지적으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서 어느 한 곳의 암석을 면밀히 연구하면, 범세계적인 지질시대 표준을 마련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표준적인 지질연대표가 지질학의 당연한 기초이기 때문에, 1830년대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깜빡하기 쉽다. 1839년, 머치슨은 실루리아계를 명명했다.
--- p. 57
프랑스의 관료였던 자크 부셰 드 페르트Jacques Boucher de Perthes(1788~1868)가 초기 인류와 유럽의 플라이스토세 포유류가 함께 살았다는 증거를 내놓았다. 그는 라이엘 같은 의심가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아주 면밀하게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당시 대홍수가 전 세계를 휩쓸어, 유럽의 이색적인 매머드와 코뿔소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을 사냥했던 선사시대 인간들까지도 파멸시켰으며, 대홍수가 지난 뒤에는 새롭고 현대적인 동물들이 유럽 지역을 채웠다는 것이다. 격변적인 홍수라는 생각은 바로 1820년대 조르주 퀴비에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여전히 격변론의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라이엘이 모든 이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 p. 115
진지한 대멸종탐구는 매우 새로운 과학이다. 사실, 새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벌써 150년도 더 전에 존 필립스가 몇 가지 핵심적인 측면들을 짚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격변론자로 몰릴까 두려운 마음 때문에 1970년이나 1980년까지도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멸종이니 대멸종이니 하는 문제를 도외시했으므로, 충분히 새롭다고 말할 만하다. 이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사실을 정리해보자.
· 과거에 최소한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있었다.
· 대멸종의 특징은 보통 20~65퍼센트의 과의 손실, 50~95퍼센트의 종의 손실이다,
· 정상적인 멸종에 비해 대멸종이 별개의 현상으로 두드러진다는 증거가 일부 있지만, 그 증거는 제한 적이다.
· 대멸종 때 몸집의 크기나 식성, 또는 습성을 기준으로 한 선택이 있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그러 나 지리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동물군들이 지리적으로 고립된 종들에 비해 대멸종의 영향을 덜 받은 것처럼 보인다.
· 대멸종은 사실상 한순간에 일어난 경우부터 1,000만 년 동안 몇 가지 복합적인 사건들이 함께 있었 던 경우까지 다양하다.
· 대멸종 이후에 생명은 언제나 다시 회복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전체적인 수준의 생물다양성 이 멸종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는 약 1,000만 년 정도 걸렸으며, 페름기 말의 멸종 이후에는 약 1억 년이나 걸렸다.
--- p. 216~217
낮은 수준의 멸종이라도 얼마든지 높은 수준의 멸종으로 바뀔 수 있다. 종과 서식지를 하나씩 파괴하면 결국 과거에 일어났던 것 같은 폭주하는 위기를 부를 수 있다. 일단 세계가 하향 쇠퇴기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되면, 아무리 인간이 개입한다 해도 원래 상태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생태계에서 한두 종을 제거한다고 해도 별 영향이 없을 것이다. 나머지 종들이 금방 적응해서 그 공백을 메울 테니까. 그러나 계속해서 한두 종씩 제거된다면, 생태계가 붕괴되는 상황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런 참담한 사건들의 연쇄에 휘말리기 전에 환경을 파괴하는 짓을 멈추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
--- p.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