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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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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세상에서 한번쯤은 겁나 큰 존재이고 싶은
조그만 아이들에게 전하는 유쾌한 그림책 세상이 거칠다느니 험하다느니 말도 많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보자면 어른들의 불평불만이란 그래도 속편한 소리에 해당된다. 아이들이 대면하는 세상이란 얼마나 크고 무섭고 위험한 것일까.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게는 방바닥에 살짝 흘린 음료수 자국이나 탁자의 모서리, 문턱 등이 예사롭지 않으며, 좀 걷기에 자신이 붙었다는 아이들에게도 계단이나 깨진 보도블록, 헐거운 맨홀 뚜껑 등은 도처에 입을 벌리고 있는 함정과 다름없다. 그러니 사방에서 달려드는 오토바이나 자동차 같은 것들은 말하나마나. 단순히 걷기라는 모험 하나에도 이토록 많은 위험을 극복해야 하다니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넘고 건너고 돌아가야 할 장애물이란 얼마나 많은 것일까. 아무려나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이란 우리 어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는 그 규모와 안전성에 있어서 훨씬 더 무시무시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아이들보다도 훨씬 더 작은 존재라면 어떨까? 간혹 파리 같은 조그만 곤충이라면? 장수하늘소나 왕자팔랑나비, 넓적사슴벌레 같은 곤충이야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청정한 자연 속에서 저희들끼리 복닥복닥 살아가면 그만일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파리는 그렇지 못하다. 멧돼지나 오소리의 배설물 대신 인간 세상을 기웃거리는 파리라면 더더욱. 『파리의 휴가』에서 우리의 주인공 파리는 꽤 문명화된 곤충이다. 휴가와 물놀이란 어지간히 문명화·선진화되지 않고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터, 아직도 지구 곳곳의 수많은 사람들이 휴가는커녕 제대로 입에 풀칠도 못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이 파리의 여유와 한가로움이란 참으로 부럽기 짝이 없다. 게다가 파리가 수영을 하기 위해 동원하는 온갖 도구들을 보라. “가방이랑 썬크림에다가 커다란 수건 그리고 물놀이 공까지” 이건 모두 수영하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다. 다시 말하면 그저 옷을 훌훌 벗고(파리가 옷을? 패스!) 개울물에 첨벙 뛰어드는 원시적 태도와는 격이 다른 것이다. 과연 인간 세상에 몸담고 살아온 저력이 보인달까. 이처럼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수영을 하러 간 파리. 파리는 행복하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행복한 것 같다고 자부할 만큼 무척이나 행복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으쌰으쌰 어깨춤도 춘다. 그러니 처음 기분 그대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수영을 하고 나와서 맛난 식사라도 하러 간다면 그 얼마나 완벽한 휴가가 되었을까. 그러나 우리의 파리에게 커다란 불행이 닥치고 마는데, 처음에 그건 어두운 그림자로 다가온다.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자 어리둥절한 파리. 게다가 천둥소리가 시작된다. 폭풍이 올 것을 예상한 파리는 “아이 참, 왜 우산을 안 가져왔지?” 하고 자신의 준비성 부족을 탓하며 속상해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저기 높은 데서 뭔가 무서운 게”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엄청나게 커다란 게, 축구장만큼이나 커다란 게” 파리를 향해서 내려오고 있다. 도대체 그게 뭐란 말인가? 별똥돌? 아니면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결국 커다란 별똥돌 같은 게 첨! 벙! 하고 떨어지자 어마어마한 파도가 일어난다. 우리의 파리에게 ‘행글라이더처럼’ 날아오르는 재주가 없었더라면 파도에 휩쓸려 끝장이 났을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파리, 이 날벼락 맞은 애처로운 중생에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엄마, 엄마! 나, 다 했어!” 어? ……아! 지금껏 파리가 몸담고 있던 수영장을 쭈욱 줌아웃 하고 보니 알겠다. 그곳은 바로 변기였던 것! 그렇다면 그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똥돌의 실체도 알 만하다. 그래, 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