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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재조명

한국사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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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67쪽 | 573g | 153*224*30mm
ISBN13 9788976414496
ISBN10 8976414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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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김정배 외
김정배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민현구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박용운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조 광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최덕수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최광식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정운용 :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박현숙 :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정태헌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이진한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고려의 조정이 강도에서 개경으로 돌아온 후 몇 년이 지나 원종의 사망으로 즉위한(1274) 충렬왕은 국가의 안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원관계의 전개 속에서 비정규적인 길을 통해 급작스럽게 권문화한 축들을 필두로한 세력의 작폐가 벌써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가고 있었다. 몽고와의 긴 전쟁에 따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여원연합군의 일본 정벌 등으로 무거운 부담을 져야 했던 당시의 백성들은 이제 저들의 불법과 수탈까지 겹쳤으므로 그 고통은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충렬왕 24년(1298)에 부왕(父王)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오른 충선왕은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각 방면의 숙폐를 제거하기 위한 일대 개혁정치를 단행하였다. 한데 이때 왕을 도와 그것을 추진한 중심 인물들이 신진사류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번의 개혁은 기존의 권문ㆍ세족중심 체제를 부인하고 새로이 신진사류에 의한 정치를 지향했던 운동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써 주목되는 바 있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기네의 지배적 위치에 커다란 위협을 느끼게 된 부원적 권문ㆍ세족의 책동과 원의 개입으로 인해 충선왕이 재위 8개월만에 왕위에서 물러남으로써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이로부터 50년 가까이 지난 충목왕 3년(1347)에 개혁운동은 다시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그 추진기구로 정치도감(整治都監)이 설치되지만, 여기에서 실무를 담당한 다수의 정치관(整治官)이 신진사류였다는데서 우리들은 역시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징계의 대상이 주로 천원파이었던 관계로 원이 개입하여 정치사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이때까지만 하여도 신진사류세력은 아직 미미한 단계에 머물러 있었으며, 따라서 개혁을 주도해 나갈 만한 위치에도 있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혼란을 거듭하던 고려의 조정은 공민왕이 즉위하여(1351) 두 차례의 혁신정치를 단행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거니와, 그 속에서 신진사류세력도 큰 성장을 이루게 된다. 즉, 왕위에 오른 초기부터 나라의 일신에 뜻을 두고 있던 공민왕은 왕 5년(1356)에 이르러 원이 쇠약해지고 한인 반란군이 사방에서 봉기하여 대륙의 정세가 크게 흔들리는 시기에 즈음해 기철 등의 부원세력을 전격적으로 주살하고, 양계 지역에 군대를 파견하여 실지(失地)의 회복에 힘쓰는 한편 원의 압력으로 변경했던 관제의 복구와 함께 사회경제적 혁신을 꾀하는 등 일대 반원개혁정치를 전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추진세력이 지닌는 제약성에다가 홍건적의 내침 등으로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왕 14년부터 다시 제 2차의 개혁사업이 추진되지마는, 이번에 책임을 맡은 사람은 승려인 신돈이었다. 그리하여 신돈은 과연 공민왕의 기대대로 관기(官紀)의 숙정과 더불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재차 사회경제적 개혁을 강력하게 밀고 나갔던 것이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이러한 개혁의 과정에서 신진사류세력은 크게 신장 될 수 있었다. 이들은 공민왕의 초ㆍ중기에 과거를 거쳐 출사(出仕)한 이색 및 정몽주ㆍ이존오ㆍ임박ㆍ이숭인ㆍ정도전ㆍ권근 등으로서 학문적인 경향은 말할 것 없고 정치적ㆍ사회적 입장도 같이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중 몇몇 사람은 직접 개혁정치에도 참여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로 부상하여 한 세력을 형성했던 것이다.
--- pp.119~120
1898년은 조선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이 제국주의 열강의 의한 이권침탈과 영토분할이 극점에 달한 시기였다. 19세기 말 자본주의 국가들은 계속되는 기술혁신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힘입어 전 지구를 상대로 자본수출과 원료확보를 위한 세력권 확장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가 끝나기 전에 아프리카는 완전히 유럽열강의 식민지로 변모하였으며, 1890년대에는 남아시아 동아시아 중앙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 의해 분할되어 90년대 후반에는 동아시아가 유럽 강국에 의한 분할과 점령의 최후 각축장이 되었던 것이다. 1898년 3월 러시아가 요동반도의 전략적 근거지 여순ㆍ대련을 조차하였고, 7월 영국은 홍콩의 규룡반도를 100년간 조차 점령하였고, 7월에는 여순ㆍ대련을 마주보고 있는 산동반도의 위해위를 다시 조차지로 획득하였다. 한편 미국은 태평양을 횡단하여 섬나라 하와이를 합병하고 이어 필리핀을 식민지로 편입시켰다.

이와같이 1890년대는 동아시아에 있어서 제국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시기였고, 동아시아 민중의 저항이 본격화되는 시대이기도 하였다. 조선에서의 동학농민전쟁과 독립협회운동이 그것이었으며, 중국에서는 의화단의 봉기가 1898년 산동지역에서 일어난 뒤 점차 지역을 확산하며 북경을 향하여 열기를 더해갔다. 의화단운동은 1900년 여름 북경의 열국 공사관지역을 봉쇄하였고, 청조의 지지를 받음으로써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열강 연합군의 무력공세로 의화단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은 의화단 진압에 나섰던 열강 연합군 가운데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함으로써 동아시아지역에서 종전과 다른 위치에 서게 되었다. 비서구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아시아 침략국으로, 제국주의 국가의 일원으로서 일본은 동아시아에 출현하였던 것이다. 1898년을 전후하여 동아시아지역에서 일본을 제외한 제민족이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 종속에 대한 저항운동을 전개하였고, 이 지역의 반제국주의 저항운동은 곧 세계사의 전개과정에 중요한 규정력으로 작용하였다.

1898년 8월 조선에서는 독립협회가 종로의 백목전 거리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다. 만민공동회에는 학생ㆍ지식인ㆍ부인ㆍ상인ㆍ승려ㆍ백정 등 1만 여명이 운집하였고, 정부의 대신들도 자리를 함께 하였다. 만민공동회는 이 자리에서 '외국에 의존하지 말고 관민이 협력하여 전제황권을 공고히 할 것, 광산 철도 석탄 산림의 개발 및 차관 차병과 외국과의 조약은 각부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으로 서명하지 않으면 시행하지 못하게 할 것' 등 '헌의6조' 를 의결하여 정부 대신의 동의를 받아내는 극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한편 만민공동회에서 의결되었던 '헌의6조'는 전제왕권국가 조선의 왕조권력의 실상을 반영하는 것이었고, 국부의 원천인 자원과 국가의 재정과 군대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만민공동회가 개최되었던 1898년 여름 조선 민중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 앞에 종속과 자주의 길목에서 농민전쟁을 겪으면서 고양되었던 그들의 저항의식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의화단이 진압된 이후 러시아는 만주점령을 계속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함으로써 한반도 둘러싸고 일본과의 대치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1902년 1월의 영일동맹은 한반도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균형을 깨뜨렸고, 나아가 이 지역에서 일시 안정을 유지하였던 제국주의 열강간의 현상을 파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 pp.284~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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