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유지의 부모님과 마주 앉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동안 상담했던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다.
“유지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나타난 여러 증상은 따돌림이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에이, 선생님 설마요……. 유지는 매일 학교에 가고 싶어 했어요. 몸이 아프면 결석해도 좋다고 말했는데도, 꼭 학교에 간다면서 제 말을 듣지도 않았다고요. 설마 그런 상황이라고는…….”
“여보, 당신은 그동안 전혀 눈치도 못 챘단 말이오?”
나는 어머니를 탓하려는 아버지를 말렸다.
“요즘 학교에서 일어나는 따돌림은 다 그렇답니다. 피해 학생은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걸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합니다. 혹시 들키는 날에는 지금보다 더 심하게 아이들이 자신을 괴롭힐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어머님께서 눈치를 못 채신 것도 당연한 겁니다. 속마음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지만, 만약에 결석이 잦아지면 그것 때문에 아이들이 더 많이 괴롭힐지도 몰라요. 아마도 그런 생각에 학교를 계속 나갔던 것 같습니다.”
아들을 많이 사랑하기에 되도록 같이 지내려고 노력해 온 이 부모님에게, 그동안 부모로서 사랑하는 자식이 그런 일을 당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을 때, 그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가.
--- p.53~54
여러 유형의 따돌림을 보면, 피해 학생이 ‘따돌림을 당해도 되는 존재’라고 여길 수 있는 이유를, 가해 학생은 일부러 만들어 내려고 한다.
‘저 집은 이렇게 형편없으니까 우리랑은 달라. 더러운 아이랑은 어울리고 싶지 않아.’
따돌리는 행동도 여러 유형이 있지만, 그런 행위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따돌림이 진행되면서 그 이유도 같이 만들어져 간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이다. 즉, 인과관계가 완전히 역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해 학생들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따돌림의 행동들이 정당화된다. ‘따돌림을 당하는 애한테도 원인이 있어.’라고 믿는 어른들의 부주의한 인식은, 이러한 경향을 시인하는 데 한몫 거들고 있다는 사실을 당장 깨달아야 한다.
--- p.101~102
K군을 괴롭히는 행동은 주로 수업 시간에 일어난다. 체육 수업 때는 반 아이들이 모두 우연을 가장해서 일부러 부딪혀 온다.
“아, 부딪혀 버렸네. 미안해.”라고 웃으면서 말은 하지만, 잠시 뒤 또 다른 아이가 부딪혀 옴과 동시에 주먹으로 때린다. 이번에도 역시 “아, 미안해.”라고 말한다. 농구를 할 때는 세게 밀치면서 일부러 넘어뜨린다. 패스하는 척하면서 공을 K군의 얼굴에 던질 때도 있었다.
수학 시간에 컴퍼스를 사용할 때면 뒤에 앉은 아이가 K군의 등을 컴퍼스로 자꾸 찌른다. 처음 찔렸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서, 선생님이 “왜 그러니?”라고 물어보는 바람에 당황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뒤에 앉은 J군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미안해. 손이 미끄러져서.”라고 말하면서 수업 시간에 몇 번 찔렀지만, 최근에는 쉬지도 않고 계속 찌른다. 교묘하게 선생님의 눈을 속이면서, 선생님이 보지 않는 순간을 노려서 괴롭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절대로 눈치를 채지 못한다.
--- p.133~134
따돌림 피해를 당한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부모가 자기 몰래 마음대로 학교에 가서 상담을 하는 경우다. 그러면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 자신이 고자질했다고 생각할까 봐 매우 두려워한다. 그래서 부모가 학교를 찾아가면 틀림없이 가해 학생의 귀에도 들어가서, 결국에는 지금보다 더 심한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른은 아이들을 휘두를 수 있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지도 모른다. 교사가 따돌림 문제를 지적하고 아이들에게 그만 하라고 지시하면, 금방이라도 문제가 다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피해 학생의 부모가 나서면 따돌림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학교에 상담하러 갈 때는 반드시 아이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 관계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 p.172~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