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작
“그렇습니다” 하고 상인은 말했다. “우리들이 얻는 뜻밖의 횡재는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어떤 고객은 무식합니다. 그럴 때는 저희가 높은 지식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합니다. 어떤 고객은 정직하지 못하지요.” 이렇게 말한후 그는 촛불을 들어올려, 방문객을 밝게 비추었다. 그리고는 말을 게속하였다. “그럴 경우에는 저의 미덕으로 이익을 거두지요.” 마크하임은 이제 막 밝은 거리에서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그의 눈은 아직 가게 안의 뒤섞인 명암에 익숙하지 못했다. 이런 가시 돋친 말을 듣고 촛불을 가까이 대하게 되니 그는 아픈 듯이 눈을 깜빡거리며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상인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당신은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날에 찾아왔습니다 그려” 하고 말을 계속했다. “가게에는 저 혼자뿐이고, 문을 닫고 장사를 쉬려고 하는 날 말입니다. 그러니 손님께선 이에 대한 보상을 해 주셔야 합니다. 제가 장부 정리를 해야 하는 시간의 손실을 보상을 해 주셔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은 제가 당신한테서 매우 강하게 눈치 챈 일종의 특별한 태도 때문에도 보상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분별력의 정수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무례한 질문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손님이 제 눈을 바로 보실 수 없을 때는 이에 대한 보상을 하셔야 합니다.” 상인은 또 한 번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평상시의 장사꾼의 목소리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러니컬한 어조를 띠면서, “당신은 어떻게 하여 그 물건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보통 때처럼 분명한 설명을 해 주실수 있겠지요?” 그는 말을 계속했다. “역시 정말 놀라운 수집가이신 당신 아저씨의 진열장에서 가져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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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가 소개
소설가, 수필가, 시인이었던 스티븐슨은 에딘버러에서, 북방 등대청 소속 기사였던 토머스 스티븐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공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1867년에 에딘버러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아버지의 직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법률 공부로 방향을 바꾸었고, 1875년에 변호사가 되었다. 1871년에는 The Edinburgh University Magazine에, 1873년에는 The Portfolio 지에 각각 학생 기고를 함으로써, 문학적 직업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어릴 적에도 건강이 매우 허약하였으나, 성인이 되어서도 폐 출혈을 두려워하여 상의 입는 것조차 회피할 때가 가끔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 동안 여행을 즐겼다. 그 결과 생긴 책이 1878년에 출판된 An Inland Voyage와, 1879년에 간행된 Travels With a Donkey in the Cevenn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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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품의 줄거리
이 작품은 등장 인물들의 행동이나 사건의 진전을 추적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살인죄를 범한 한 인간의 죄의식의 전개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급변하는 사건들의 줄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 마크하임은 크리스마스 날, 그가 전에도 출입한 적이 잇었던 런던의 어떤 골동품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의 주인은 마크하임이 지난번처럼 자기 아저씨의 진열장에서 가져온 골동품을 팔러 온 것으로 짐작하고, 오늘은 또 무엇을 가져 왔는가 물었다. 마크하임은 오늘은 골동품을 팔러 온것이 아니라, 어떤 부인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하러 왔다고 했다.
가게 주인은 15세기에 제작한 손거울 하나를 고객에게 보여 주었다. 왜 하필이면 거울을 보여 주느냐고 묻는 마크하임에게 가게 주인은, “당신 자신을 보란 뜻이지요!” 라고 은근히 꼬집는 듯한 대답을 했다. 그러자 마크하임은 가게 주인은 너무나 돈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응수를 했다. 얼마 후 가게 주인은 몸을 구부려 손거울을 선반위에 도로 올려놓고, 다른 물건을 들고 몸을 다시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마크하임은 꼬챙이 모양의 단검으로 상인을 내리찔렀다. 상인은 선반에 관자놀이를 부딪치고 암탉처럼 몸부림을 치면서, 마룻바닥에 고꾸라졌다. 그가 시체로 변한 것은 오후 3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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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작품에 대한 논평
이 작품은 한 남자의 살인 행위 직후의 심리 상태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그 표현 방법은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허구적인 존재를 방문객이란 이름으로 등장시켜, 주인공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게 하는 특이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독자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느 부득이 각자의 자유로운 해석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는 난점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 이해의 주된 난점은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그 정체불명의 방문객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어떤 논자는 그를 천사로 보기도 하고, 다른 논자는 그를 악마로 보기도 한다. 또 어떤 해설자는 이 작품을 범죄심리의 진행을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다른 비평가는 여기에 나오는 애매한 요소들로 인하여 이 작품을 구체적인 덕목의 제시가 없는 도덕적 우화로 간주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이 단편소설의 단점 같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예술 작품이 지닌 하나의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술 작품은 독자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 다양한 함축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필자는 여기서 하나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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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p.27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