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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역사 2

미국인의 역사 2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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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4월 3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812쪽 | 1241g | 157*233*45mm
ISBN13 9788952273611
ISBN10 895227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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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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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명병훈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중앙일보] [경향신문] 등에서 일했다. 현재 인문학을 기반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지식과 열정을 불어넣는 출판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폴 존슨의 『근대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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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이미 미국이라는 나라와 그 국민은 20세기 말에 흔히 나타나는 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함과 풍요, 끝없는 변화, 다색 다민족, 물질주의와 이상주의의 심화, 혁신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 자부심, 독점욕, 장광설, 요란스러움, 탐구심, 넘치는 정의감, 선행, 부의 추구 등을 꿈꾸며 동시에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성숙한 공화국의 온갖 장점과 단점 또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나 미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근대 세계에서나 보일 법한 선망과 감탄, 충격이 교차하는 반응을 보였다. 금과 은이 풍부하게 매장된 새로운 광맥을 캐내려고 농민과 기계공, 사무원과 교사까지 일확천금의 부푼 꿈을 안고 서부로 몰려가는 모습을 헨리 소로는 “크리슈나 신상을 실은 수레 아래에 무릎 꿇은 힌두교도들의 황홀 상태를 방불케 한다”라고 못마땅하게 묘사했다.
영국과 인도 두 나라 문화의 새로운 천재로서 이 세상에 혜성처럼 나타난 러디어드 키플링에게 뉴욕은 “비참한 미개 상태와 무모한 방종이 낳은 무기력한 산물”이었으며, 그 거리는 “잔지바르 해변과 같거나 줄루 족 마을 진입로와 비슷”했다. 하지만 위대한 시인 월터 휘트먼은 뉴욕을 한없이 사랑하여 “돛대로 둘러싸인 맨해튼만큼 멋지고 당당한 곳이 있을까?”라면서, “우뚝 솟아라, 맨해튼의 드높은 돛대여! 우뚝 솟아라, 브루클린의 아름다운 언덕이여!”라고 소리 높여 읊었다. 괴팍스러운 보스턴의 교양인 헨리 제임스 역시 이 거대한 도시에 압도되어 “열정의 선율 …… 불굴의 힘-매우 사치스러운 도시가 내뿜는 힘의 매력”에 갈채를 보냈다. 또한 “그 산만하고 쓸모없고 시끄럽기만 한 폭발음, 그 거대하고 용감하고 오만한” 것을 거의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사랑했다. 새로운 고층 건물들이 “레이스 뜨개질용 베개에 꽂힌 바늘처럼” 빽빽하게 들어섰다고 말했다. --- pp.14-15

이처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정치가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숭배하고 귀 기울이며 추종할 지도자를 다른 분야에서 찾고자 했는데, 그런 인물을 경제계에서 발견한 것은 당연했다. 미국은 모험가들과 설교가들에 의해 세워졌고, 젠틀맨 출신 정치가들에 의해 공화제 국가로 변모했지만, 국가를 만들고 국민을 살찌운 것은 사업가들이었다. 국민이 사업가를 존경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1870년대, 1880년대, 그리고 1890년대 미국인들은 스스로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느꼈고 인류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한 부가 창출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과 사회 기반 시설이 발전해가는 모습을 그들은 어디에서든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이 활기차고 약동하고 풍요로운 체계를 지휘하는 주인공들이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경쟁심을 북돋아주어야 했던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 시대의 전형적인 영웅은 앤드루 카네기(1835~1919)였다. 카네기는 나름대로 유능한 경제정치 사상가로서 훌륭한 자서전을 썼으며 아울러 1889년 6월 ?노스 아메리칸 리뷰?지에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이라는 중요한 글을 기고했다. 카네기가 태어난 곳은 미국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였다. 칼뱅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마찬가지로 세가 컸던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불가지론을 신봉했다. 어느 정도 스코틀랜드인 기질이 남아 있어서 실내를 스코틀랜드의 타탄 격자무늬 벽지로 바르고 만년에는 하일랜드에 있는 스키보 성을 구입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그것은 부자가 될 자유, 그리고 그 부를 나눠줄 의무였다. 카네기의 삶은 이 두 가지 목적을 완벽하게 수행해냈다. --- pp.75-76

대부분 돈 한 푼 없이 두려움에 떨며 건너온 몇 백만 명에 달하는 이주민들을 자신감 넘치는 시민, 부의 창출자, 사회문화 자산으로 탈바꿈시킨 뉴욕을 비롯한 미국의 능력은, 공화국이 확대해나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힘이었다. 이 나라는 거의 3세기에 걸쳐 국민을 향해 바로 그와 동일한 것을 줄곧 요구해왔다. 신세계 문화가 더 복잡해질수록, 재능-진정한 천재-의 흥미진진한 조합이 더욱더 실현 가능해졌다. 유럽에서는 거의 생각할 수조차 없는 특징적인 사례는, 토머스 앨바 에디슨(1847~1931)과 루이스 컴퍼트 티퍼니(1848~1933)가 협력하여 1885년 뉴욕에 최첨단 기술과 예술적 혁신이 훌륭하게 결합된 라이시엄 극장을 창조한 일이었다. 에디슨은 여러 가지 점에서 미국인의 전형이라고 할 인물이었다. 아마 당시 미국이 재능 있는 사람에게 부여했던 모든 자유를 누구보다 다양하게 활용했을 것이다. 긴 생애 동안 발명을 하면서 숱한 결실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규제나 제한, 금지로 좌절을 맛본 적이 전혀 없었다. --- pp.121-122

급진 민주주의 세력이 정부 역할을 제한하는 데 치중했다(이 같은 현상은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국도 같았다). 제퍼
슨 시절, 나아가 잭슨 시절에도 크고 고압적인 정부는 반동 세력, 왕들과 황제들과 연방주의자, 그리고 훗날에는 월 가와 연대를 맺었다. 또한 무거운 세금, 특히 개인 소득세 같은 것은 힘겹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서 국가를 장악한 엘리트들에게 넘기는 음모였으며, 중앙은행은 금융 재벌들에게 특권을 부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정부가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그것을 민중의 손에서 빼앗아 탐욕에 가득 찬 반 민주적인 엘리트 계층에게 넘겨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견해는 남북전쟁 뒤에도 잠시 남아 있었는데, 공화당의 연방정부가 거대한 권력을 장악하고 각 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다음 몇 십 년 동안 대기업과 법인이 급격하게 성장한 까닭에 그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점차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대부분의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강력한 연방정부는 광범위한 중재 능력을 발판으로 지나치게 비대해진 법인들로부터 일반 서민들을 지키는 수호자라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민간 부문(잠재적인 악으로 감시와 통제가 필요)과 대립하는 존재로서 공공 부문(선으로 확장이 필요)의 존재가 공상적 사회개혁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 세입을 늘릴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므로 개인 소득세는 특히 그것이 세입 증대와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가진 누진과세라면 매우 바람직스러운 제도였다. 20세기 말 현재 국가라는 존재는, 좋게 말하면 필요악으로서 필요한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한 유일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대적할 존재가 없는 압제자로 간주되고 있다. 여기서 사회에 지적인 분위기가 감돌던 1913년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당시 국가라는 존재는 미국은 물론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빛나는 갑옷을 몸에 걸친 기사라고 여겨졌다. 가난한 사람이나 약한 사람, 괴롭힘을 받는 사람을 구해주러 왔으며, 탐욕스러운 부유층이 개인 이익을 챙기기 위해 저지르는 행위를 객관적으로, 자비롭게 처리하는 존재가 국가였다. --- pp.211-212

미합중국은 하나의 가혹한 기계로서 민족, 종교, 정치, 사회, 문화에서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수많은 인간들이 그 안에서 한데 뒤섞였으며, 그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탈바꿈하여 마침내는 미국인이라는-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존재가 출현한다는 생각은 공화국 탄생 때부터 생겨났다.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로드아일랜드는 로저 윌리엄이 그곳에 식민지를 세울 때부터 이미 인종의 도가니를 실제로 가동시킨 좋은 예였다.
멜팅 포트(melting pot), 즉 도가니라는 말은 미국에 귀화해 뉴욕에 정착한 프랑스 태생의 수필가 M. G. 장 드 크레브쾨르가 1782년에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할아버지가 영국인, 할머니가 네덜란드인이고, 아버지는 프랑스 여성과 결혼했고, 그 사이에서 난 4명의 자식들이 각각 다른 나라 여성과 결혼한 그런 일가도 드물지 않다. 미국인이라는 것은 그때까지 가졌던 편견이나 습관을 모두 털어버리고 현재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생활양식에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이다. …… 여기서 여러 나라 출신의 개개인이 녹아서 하나의 새로운 인종이 태어난다.” 미국을 방문한 사람들 가운데는 “미국의 경험”이라는 인종의 야금학이 얼마나 잘 작동할지 의문을 품는 경우도 있었다. 찰스 디킨스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미국 중서부의 열차 안에서 무언가를 오해한 그가 “보시다시피, 저는 외지에서 온 이방인입니다”라고 차장에게 사과하자, 차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 우리 미국에서는 모두 이방인이랍니다.” --- pp.258-259

경기 침체는 유용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매서워야 하지만 경제가 자동으로 조절해가므로 기간이 길 필요는 없다. 정부, 경제계, 그리고 일반 대중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내심이 전부이다. 1920년의 경기 침체는 하딩의 정부 부문 축소에 힘입어 1년도 안 되어 자동 조절을 끝마쳤다. 1929년의 불황이 그것보다 더 길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쿨리지가 말했듯이 미국 경제는 기본적으로 건전했기 때문이었다. 4주 동안이나 계속되던 주가 폭락이 멈춘 11월 13일, 최고치 451을 기록하던 주가지수는 224로 떨어졌다. 여기에는 잘못된 점이 없었다. 1년 동안 급등하던 1928년 12월에도 주가지수는 겨우 245에 불과했으므로, 이 폭락은 단지 투기 요소를 제거하고 배당금 대비 적정 가치에서 건전한 주식만 남겨놓았을 뿐이었다. 이 경기 후퇴 역시 스스로 조절되는 기능에 맡겨놓았더라면 과거의 사례와 비교해볼 때 1930년 말에는 조절을 끝냈을 것이며, 그 결과 신뢰가 회복되어 세계적인 불경기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천천히 그리고 가차 없이 하강을 계속했고 경제적 현실을 더 이상 반영하지 않았다-시장은 진정한 기능을 상실했다. 대신에 파멸로 가는 원동력이 되어 모든 미국 국민, 나아가 세계 사람들을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 1932년 7월 8일자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주식시장의 혼란이 끝날 무렵 산업주의 주가는 224달러에서 58달러로 폭락했다. 유에스스틸의 주가는 1929년 시장이 붕괴되기 전 262달러에 매매되었으나 이제는 겨우 22달러에 불과했다. 세계에서 경영 상태가 가장 좋다던 제너럴모터스의 주가도 73달러에서 8달러로 급락했다. 이쯤 되자 미국의 앞날을 바라보는 눈이 크게 바뀌고 한없이 악화되리라는 전망만 난무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정상적으로 경기가 회복되지 않았을까? --- pp.369-370

또다시 스탈린이 머뭇거리는 미국 전략가들에게 구원의 손을 뻗었다. 봉쇄 경계선이 어디를 통과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으나 1950년 1월 12일 국무장관이 된 딘 애치슨은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대단히 어리석은 연설을 했다. 애치슨은 중국은 지금은 공산주의국가이지만, 독립 노선을 걷는 유고슬라비아의 공산당 지도자 티토 원수처럼 이 나라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반드시 스탈린과 곧 갈등을 일으킬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 점을 명확하게 밝혀두지만-이 점은 그 뒤 역사에 의해 정당성을 얻었다-그는 타이완과 인도차이나뿐 아니라 한국이 미군의 방위선에서 제외된다고 말했다. 이 연설을 스탈린이 읽고 그의 주의를 끌었음이 틀림없었다.
스탈린은 티토를 처리할 때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애치슨은 몰랐지만 그 당시 마오쩌둥에게 화해의 움직임을 보냈다. 애치슨이 중국과 소련이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언급한 것은 스탈린으로 하여금 그 위험성을 상기시켰고, 한국이 미국의 국가 이익에서 제외된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은 그 해결책을 암시했다. 한반도에서 제한적인 대리전쟁이 일어난다면, 중국은 진정한 이익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을 것이라고 스탈린은 판단했다. 만약 이것이 실제 스탈린이 생각했던 것이라면 그의 생각은 옳았다. 한국전쟁은 중국과 소련이 관계를 끊는 것을 10년이나 연기시켰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는 전쟁을 가져다줬다. 스탈린은 1950년 봄 북한의 공산주의 지도자 김일성이 11월에 38선을 넘어 제한된 남침을 감행하도록 허락했던 것 같다. 38선을 경계선으로 한반도는 북쪽의 공산 진영과 남쪽의 민주 진영으로 분단되었고 남쪽에는 500명의 미군이 고문으로 배치되었다. 하지만 김일성은 신중했을 뿐 아니라 남이 시키는 일이나 하고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스탈린의 귀띔을 전면 침략을 허가한 것으로 받아들여 6월 25일 남침을 개시했다. --- pp.509-510

여기서 이야기는 미국의 중대한 구조 변화로 옮겨간다. 미국은 초창기부터 줄곧 평등한 사회를 유지해왔는데, 남자들은(그리고 실제로 여자들도) 신분의 차이에는, 예를 들어 그것이 존재하더라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누구나 어떤 상대방이든, 심지어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악수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워싱턴은 그 권리를 거부하고 머리 숙여 인사로 대신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 평등 정신은 어떤 몇 가지 이유-경험, 학식, 지위, 부, 관직, 인품 등-에 의해 “보스”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나타냄으로써 균형을 이뤘다. 평등주의와 경의의 조화는 미국이 가진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였으며, 또한 가장 큰 장점이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변화가 생겼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보스”라는 말은 과거 속으로 사라졌으며 더 이상 통용되는 일반적인 용어가 아니었다. 경의 그 자체가 권위를 적대시하는 새로운 풍조에 굴복했다. 오랫동안 확립된 계층제도에 도전하고, 반항 또는 무시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이런 풍조가 어디서나 번져나가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곳은 언론(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한마디로 말해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을 가리킨다)의 세계였다. 텔레비전은 여론 형성뿐이 아니라 방송국 자체 내의 의사결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텔레비전으로 유명해진 스타가 늘어남에 따라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원래 직무상의 지위는 낮지만 대중의 인기를 얻어 유명세를 타면서 귀중한 상품이 되었고, 곧 직급이 높은 상사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고 결국에는 (사람에 따라서) 방송국 소유주와 어깨를 견줄 만큼의 높은 수입을 올리게 되었다. 마침내 경영진도, 더군다나 주주도 아닌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가 해설의 논조나 견해의 요지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조짐은 일찍이 CBS TV 방송국의 사회 문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시 잇 나우(See It Now)”의 사회자 에드워드 R. 머로가 미국 여론 형성의 선구자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1954년 3월 9일에 방송된 매카시의 인터뷰는 이 상원의원의 파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프로그램에 관한 모든 것은 머로 자신과 프로듀서가 직접 기획했으며 CBS TV 방송국의 경영진이나 임원, 소유주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텔레비전 방송국의 의견 형성 권한은 소유주나 경영진에서 프로그램 제작자와 사회자로 서서히 하지만 점차적으로 거의 완전하게 넘어갔다. 1950년대에 들어서기까지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이 현실은 1960년대 말에는 명백한 사실이 되었다.
또한 텔레비전의 뒤를 따라 신문 매체의 세계, 특히 동부 지역의 주요 일간지나 잡지에 똑같은 변화가 일어났으며, 약간의 예외는 있었으나 정치에 대한 발언권이 소유주나 대주주에게서 편집자와 기자에게로 옮겨갔다. 허스트나 매코믹(「시카고 트리뷴」지), 퓰리처, 헨리 루스(타임라이프 사) 등 예전에는 간행물의 정치적 방향성을 매우 상세한 부분까지 결정했던 소유주들이 퇴장했고 대신에 실제로 실무를 담당하는 언론인들이 그 권한을 넘겨받았다. 이 언론인들은 매우 진보적인 견해를 보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정치뿐 아니라 문화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실제로 미국을 전통적인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데 이보다 더 큰 역할을 한 것은 없을 것이다.
--- pp.54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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