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에 도전하는 직업이든 아니든 모든 직업은 돈 버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내가 금전적인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일 년에 두세 번의 탐사를 시도할 수 있겠는가? 한계에 도전함으로써 한계를 도전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나는 내가 행한 도전의 부산물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탐험을 하면서 동시에 돈을 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단지 그 두 요소만이 전부는 아니다.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돈의 흐름이 보이는 때란 바로 진정한 한계에 도전할 때이다. 만일 내가 이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성공한 부산물ㅡ이야기, 강연, 경험, 지식ㅡ을 잘 팔았기 때문일 것이다. 강연가로서, 저자로서, 탐험가로서 나는 몇 개월동안 일해서 그 이후 일 년을 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벌 능력이 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돈은 결코 나의 동기가 되지 못한다. 오직 돈만을 목적으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사람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했을 경우 나의 가치를 보장받기 위해 나는 어딘가에 매이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일어설 수도, 계속되는 탐험에서 돌아올 수도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미래의 성공을 담보로 미리 돈을 받아놓았기에 마치 빚을 갚아나가듯 정신없이 등반을 해야만 했다. 나는 자유 경쟁 시장에서 결과에 의해 평가되는 데 점차 익숙해졌다. 첫번째 시스템에서 두 번째 시스템으로 이동하게된 중요한 걸음은 한 작은 탐험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적은 돈을 가지고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떤 탐험이든 비용과 이익의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탐험은 분명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따라서 각각의 탐험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한계에 도전하는 일을 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하며, 꾸준히 메모하고 탐험을 평가한다.
--- pp.208~209
스무 살이나 스물다섯 살 때는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적오도 한 번쯤은 극도로 위험한 순간을 맞이할 것이라고 가정해 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은 나약하고 신중해진다는 뜻이다. 큰일을 하려면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경험, 본능, 지식을 확인해야 한다.
마치 조각 그림처럼 에베레스트는 모든 것이 모여 있다. 산은 암벽과 빙하와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내가 그곳에 살았던 것처럼 산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사을 올려다볼수록 더 크고 위엄 있게 우뚝 서 있는 듯하다. 정상 너머 먼 곳은 깜깜해 보인다. 산의 발치에서는 언덕 위에 숨어 있는 빙하가 보이지 않는다.
산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때조차 나는 온몸으로 전율을 느낀다. 마치 아직도 매력적이어서 당황하게 만드는 첫사랑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거대한 산에 처음 다가가는 순간은 항상 흥분된다. 날씨도 알 수 없으며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에베레스트 산이 살며시 윤곽을 드러낼 때마다 나는 절망적인 감정, 거의 성적 불능에 가까운 무력감이라는 새로운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 pp.81~82
산을 오르는 쓸모 없는 활동은 상당히 의미를 지닌다. 길을 걷다 보면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게 된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 동이 트는 이른 아침,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폭포와 꽃들이 만발한 곳으로 돌아오는 순간 나는 그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나 자신이 해답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 있고 움직이고 도아다닌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의문은 사라진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쓸모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내가 행함으로써 나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중략)
모험이란 '쓸모 없는 것에 대한 정복' 이라고 확인할수록 나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얼마나 쓸모 있는 것인지 생각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결국 사회와 우주에 어떤 이익과 손실을 가져다주는가? 중요한 것은 이익보다 의미다.
소설『느림의 발견』에서 작가 스탠 나돌리는 비이성적이며 불합리해 보이는 행동 속에서 의미를 발견했다. 소설에서는 주요 인물들이 살아남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삶의 의미는 단순히 생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영혼은 생존이라는 아주 실질적인 문제를 뛰어넘어서 인생의 초월적인 의미를 추구한다. 거의 살기 힘든 상황에서 환각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비록 터무니없는 희망을 가지고 행동했지만 내가 바보 같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 pp.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