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는 하나님의 때에 관하여 묵상하다가, 신약성경에서 시간을 뜻하는 또 다른 단어들인,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를 생각하게 되었다. (크로노스란 단어는 일반적인 시간의 과정이나 연대기적인 시간을 나타낸다. 카이로스란 단어는 적절한 시간, 시의에 알맞거나 전략적인 시간을 나타낸다). 이 단어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진리를 내게 드러내기 시작하셨다.
나는 언제나 이 두 개념들 - 연대기적인 시간과 적절한 시간 - 을 완전히 분리하여 생각해왔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생각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내게 보여주셨다. 이 단어들은 종종 같은 과정의 다른 면일 뿐이다. 많은 경우에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의 연장이거나 연속이다. 하나님의 게획의 과정이 들어날 때, 크로노스는 카이로스가 된다. 새로운 것은 옛 것과 연관되어 있으며, 사실상 과거에서 행하여졌던 일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또한 적절한 시간인 카이로스는 문자적으로 일반적 시간인 크로노스에서 파생되었다.
우리가 크로노스 시간 속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여전히 똑같은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카이로스 시간을 시작하실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 분의 전체적인 계획표에는 변함이 없다. 그분은 단지 우리를 그분이 계획한 과정의 한 단계로 이끄실 뿐이다. 우리가 그 속에서 인내하고 성실할 때 그 분은 우리를 다음 단계인 전략적인 시기로 변화시킨다. 그분은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변경시키면서 때와 시기를 변화시키신다.
(중략)
유명한 기독교 회관의 한 요리사가 해리 아이언 사이드 박사로부터 그녀가 만든 과자에 대해 칭찬을 듣자 박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자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들을 한번 생각해보면, 밀가루 자체가 훌륭한 맛을 내는 것이 아니고, 베이킹 파우더나 쇼트닝, 다른 재료들도 그 자체로는 별 맛이 없죠. 그러나 이 재료들을 모두 한 데 섞어서 오븐에 넣으면, 이렇게 멋진 과자가 되어 나온답니다.”
크로노스 시간 속에서 대부분의 삶은 무미건조하거나, 심지어 무의미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변화시켜서 결과적으로 기쁨의 잔치가 이루어지도록 우리 삶의 요소들을 연합시키시는 능력이 있다. 삶은 변화 - 옛 것으로부터 새 것으로 나아가는 과정,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로의 변화 - 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 pp.31~33
우리가 크로노스에서 벗어나 카이로스로 접어들었다는 것, 완성에 더 가까이 왔다는 것 - 마치 해산을 하는 어머니같이 - 은 그 싸움이 끝났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쟁이 가장 격렬할 때에 승리가 눈 앞에 있기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수1:3). “밟는”이란 단어는 히브리 단어 '다락'(darak)에서 유래되었다. 이 단어는 걷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 좀 더 의미가 강한 전사의 걸음이나 행진을 주로 뜻한다. 이것은 전쟁용어이고, 활쏘기 직전에 활을 당기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 히브리 단어는 현재까지도 이스라엘에서 “장전하라”는 뜻으로 쓰인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그들이 발을 딛는 모든 곳이 그들의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그분은 이미 그들이 물려받을 땅의 경계를 다 정해 놓으셨다. 그분은 상징적으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무기를 들고 싸워나갈 곳들을 전부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전쟁이 있을 것임을 말씀해주신 것이다.
우리는 사탄이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온갖 술수를 부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탄은 교회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시는 결실들을 빼았으려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족관계, 건강, 그리고 교회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는 것들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해결책들을 빼앗으려 한다. 원수는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선하게 싸운다면 승리를 보장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싸워야 한다.
--- pp.103~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