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겨우 아홉 살 소년이던 내게 그 사실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셨다. 어버지는 당시 펜실베니아 대학 강의실에서 찰스 쿨리의 이론을 설명하고 계셨다. 그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고 한다. 쿨리는 그 사람들을 '중요한 다른 사람' 이라고 불렀다. 나는 비록 아홉 살에 불과햇지만 그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직장 생활에서 실패했을 때에도 아버지는 나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말씀하시며, 집에 돌아와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였다. 아버지는 나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셨던 사실을 기억하며 나는 내가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어버지는 내가 자신의 친구들이나 직업, 재산, 심지어는 자기 자신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과 행동으로 거듭 확인시켜 주셨다. 작은 일들 속에서 그렇게 하셨다. 그저 무심코 던지신 말과 단순한 결정들 속에서도 나는 내가 어버지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설교를 하러 나와 함께 교회에 가시던 날도 그랬다. 아버지는 운전을 하시며,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기분 좋다고 말씀하셨다.
(중략)
아버지는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가족 휴가나 첫 데이트, 졸업 등의 추억을 떠올리실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일들도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아버지는 내가 출전한 축구 경기를 보시기 위해 시카고에서 먼 길을 찾아오셨다. 그리고는 일을 마저 끝내시려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셨다. 시합을 지켜보는 것이 아들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되는지 아셨기에 하룻밤을 꼬박 새우신 것이다. 나는 그때 일로 내가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 pp.60~61
내가 부모님에게 받은 가장 큰 선물은, 그분들에게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안 것이다. 내 형제들도 아니었다. 두 분마저도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보다 소중할 수 없었다.
네 살짜리 어린아이에게는 17세기 영어만큼이나 낯설고 이상했지만, 나는 자라면서 '모든 사람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가 하나님의 더 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중심이 아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중심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이야기보다 더 큰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다른 모든 이야기를 초월한다.
우리의 이야기가 그 영원한 드라마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 교훈을 나는 아버지에게 배웠다.
--- pp 36
내 사무실에는 아버지의 흑백 사진이 하나 걸려 있다. 큰 키에 군복을 입고 똑바로 서 있는 20대 군인의 모습이다. 테가 큰 안경을 쓰고 미소를 짓고 계신다. 그것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던 미소였을 것이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내면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도, 이가 덜덜 떨리는 강추위 속에서도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이끌던 미소, 집어삼킬 듯한 파도가 몰려올 때도 두 눈을 호수 기슭에 고정할 수 있도록,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 속에서도 나아갈 길을 잃지 않게 했던 그 미소가 모든 병사에게 희망을 돋우어 주었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 미소는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는 내게도 소망을 심어준다. 미소로 화답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게 한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종종 주님의 얼굴빛이 성도들에게 비추어지기를 기원하는 기도록 설교를 마치셨다. 수년 동안 아버지의 미소를 선물로 받아 누려 온 나는, 환하게 빛나는 얼굴이 전해 줄 수 있는 따뜻함과 평화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아들에게 전해지던 그 평온함은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평온함이었다. 때로 인생의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미소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미소, 특별히 그분이 우리 아버지라면….
--- pp.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