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과학자들은 독단적으로 설계를 과학에서 배제시킴으로써, 스스로 과학적 연구를 질식시키고 있다. 설계를 과학 안으로 회복시키는 일은 자연주의라는 젖을 먹고 자란 세대에게는 의심할 여지 없이 직관에 반하는 행동으로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적절한 사실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설계를 과학 안으로 다시 도입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 곧 분명해진다.
우선 설계를 반대하는 과학자들의 발언을 보면, 설계를 의도적으로 제외시키는 것이 과학을 제한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할수 있다. 다윈주의자들의 수뇌인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책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을 이렇게 시작한다. "생물학은 목적을 가지고 설계된 듯이 보이는 복잡한 것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런 문장은 생물학 문헌의 여러 곳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이며 DNA 구조의 공동 발견자인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k)은 <열정적인 연구>(What Wad Pursuit)에서 "생물학자들은 자신들이 보는 것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진화된 것이라는 점을 계속 마음에 되새겨야 한다"고 기록하였다.
생물학계는 실제의 설계와는 거리가 먼, 자연에서의 겉보기 설계를(전형적으로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이라는 다윈주의적 메커니즘을 통하여)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생물학자들은 자연에서의 겉보기 설계를 설명하면서 실제 설계에 대한 과학적 반박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반박은 양날을 가진 칼이다. 과학적으로 반박된 주장들은 틀린 것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다. 어떤 주장이 과학적으로 반증 가능하다는 것은, 그것이 사실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살펴보기 위해서, 만약 현미경 관찰을 통하여 모든 세포 안에 '여호와께서 만드셨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될지 고려해 보자. 물론 세포 안에는 '여호와께서 만드셨다'고 쓰여 있지 않지만, 요즘은 그것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실제로 현미경을 통하여 세포를 관찰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모를 것이라는 점이다. 설계는 생물학에서 언제나 유효한 선택으로 남아 있다. 설계를 미리부터 금지하는 태도는 쉽게 반대에 부딪히게 되며, 특히 누가 과학의 규칙을 정하였는가라고 쉽게 질문할 수 있는 다양성과 다문화주의의 세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우리가 설계가 과학에서 배제될 수 없다는 것을 우선적 원칙으로 인정하면, 다음과 같은 더욱 중요한 질문이 남게 된다. 왜 우리는 설계를 과학 안으로 회복시키려 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문제를 뒤집어서 왜 우리는 설계를 과학 안으로 회복시키려 해서는 안되는가라고 질문해 보자. 어떤 것이 지적인 행위자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분명히 우리가 이상 생활에서 설계에 호소하여 설명하는 사건들이 매우 많다. 더욱이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설계와 우연을 구분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여자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누가 그녀를 민 것인지에 대한 답이 필요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이 우연한 사고로 죽은 것인가, 아니면 자살한 것인가? 이 노래가 독립적으로 작곡된 것인가, 아니면 표절한 것인가? 어떤 사람이 우연히 주식 시장에서 행운을 잡은 것인가, 아니면 내부 거래가 있었던 것인가?
우리도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요구하지만, 모든 산업이 우연과 설게를 구분하는 데 열정적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든다면 여기에는 법 과학, 지적 재산권, 보험 청구 조사, 암호 작성 및 해독법 그리고 난수 발생 등이 포함될 것이다. 과학도 스스로 정직하려면 이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설계가 과학 외의 분야에서 이렇게 쉽게 발견된다면, 그리고그것의 탐지 가능성이 과학자들을 정직학 만드는 주된 이유 중 하나라면, 왜 설계가 과학에서 다룰 내용에 포함되어서는 안되는 것인가? 생물학을 예로 들면, 왜 우리는 생물학은 설계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설계되지 않은 사물을 연구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마음 속에 상기시켜야 하는가? 생물 시스템이 사실은 설계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훌륭한 긍정적인 이유들이 있을 수 있음을 최소한 상상할 수는 있지 않은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생물학계의 반응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설계를 반대하는 것이었다. 자연적인 물체의 경우에는 (인간이 만든 것과는 달리) 설계와 비설계와 구분이 신뢰할 수 있게 정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종의 기원>의 마지막 장에서 다윈이 한 말을 생각해 보자.
- 최근 몇몇 유명한 자연 과학자들은 현재 각각의 속(genus)에 속하는 종으로 여겨지는 것의 다수가 진정한 종이 아니며, 나머지 종들이 진정한 종이라는 즉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는 자신들의 믿음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떤 것이 창조된 생물인지, 어떤 것이 부수적인 법칙들에 의해 생성되었는지를 명백히 정의할 수 있다거나 심지어 추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둘 사이를 분명하게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어떤 경우에는 이미 알려진 다른 원인들과 조화를 이루는 원인(vera causa)으로서 변이를 인정하고, 다른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이것은 바로 어떤 것이 설계(여기서는 창조라고 되어 있다)되었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에 대한 염려이며, 후에는 이것이 반대로 설계가 과학 안으로 적합하게 들어오는 것을 방해했다.
이 우려는 과거에는 정당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더이상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사실 이제는 지적인 원인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물체와 그렇지 않은 물체를 구분할 수 있는 엄격한 기준이 존재한다. 많은 특수 과학 분야에서는 이론적으로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이 기준들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밥 과학, 인공지능, 암호 작성 및 해독법, 고고학 그리고 외계 지성 탐사). 지적설계 운동의 획기적인 발전은 이 기준을 구별해서 명확히 한 것이다. 마이클 베히가 생화학 시스템에서 설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기준은, 설계를 탐지하는 일반적인 기준의 특별한 경우이다.
이 기주을 살펴보기 전에 나는 설계라는 용어를 명확하게하기를 원한다. 나는 설계를세 가지 구분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첫째로 나는 이것을 자연적인 원인들로부터 지적인 행위자를 구분하는 과학적 이론, 즉 설계 이론 또는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 : ID)라고 불리는 이론을 나타내는 데 사용한다. 둘째로 나는 설계를, 단순히 자연적 원인들의 결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지적인 원인에 의해 생긴 것임을 알게 해주는 지적으로 생성된 물체를 나타낼 대 사용한다. 지적인 행위자가 활동하면, 그것은 특정한 특징이나 표시를 남긴다. 학자들은 이것을 종종 '창조의 흔적(vestiges in creation)이라 부르곤 했다. 라틴어로 '베스티기움(vestigium)이란 발자국을 의미한다. 우리의 오감으로 직접 그분을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창조 과정에서 그분의 발자국을 남겨 놓으셨다고 여겨진다. 휴 로스는 이것을 '하나님의 지문'이라고 불렀다. 지성적인 원인에 의한 물체와 비지성적인 원인에 의한 물체를 구분하는 이 기준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의 설계-특징, 표시, 흔적, 지문으로서의-이다. 마지막으로 나는설계를 지적 행위자 자체를 의미하는 데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설계되었다는 것은 지적 행위자가 그것을 있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적 행위자가 어떤 것을 있게 했다고 말하는 것은, 지적 행위자가 어떻게 그것을 있게 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아님을 주의하라. 특별히 설계는 이 마지막 의미에서
---pp 162~167
“지난 40년 동안 얻은 물리학적, 화학적 지식으로 보면 생명이 비지성적인 원인에 의해 생성되었다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게다가 내가 「다윈의 블랙박스」에서 논했듯이 과학의 진보는, 기절할 정도로 복잡한 분자 기계들이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세포 안에도 설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이 모든 경우에서 설계라는 엄밀한 결론을 내리려면 자연의 복잡성을 탐구하고 확률 추정을 개선하기 위한 많은 연구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종종 비선형적인) 과학의 진보를 예측하기란 어렵지만, 진보의 화살표는 우리가 더 많이 알수록 설계가 더 심층적으로 확장될 것임을 가리킨다. 나는 수십 년 후에 자연의 우연적인 측면에 대한 관점이 차차 사라지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설계인지 우연인지 판단하는 이 모든 작업은 뎀스키의 작업을 이론적 토대로 해서 수행될 것이다.”
- 마이클 베히(「다윈의 블랙박스」 저자 )의 ‘서언’ 중에서
“지난 40년 동안 얻은 물리학적, 화학적 지식으로 보면 생명이 비지성적인 원인에 의해 생성되었다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게다가 내가 「다윈의 블랙박스」에서 논했듯이 과학의 진보는, 기절할 정도로 복잡한 분자 기계들이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세포 안에도 설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이 모든 경우에서 설계라는 엄밀한 결론을 내리려면 자연의 복잡성을 탐구하고 확률 추정을 개선하기 위한 많은 연구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종종 비선형적인) 과학의 진보를 예측하기란 어렵지만, 진보의 화살표는 우리가 더 많이 알수록 설계가 더 심층적으로 확장될 것임을 가리킨다. 나는 수십 년 후에 자연의 우연적인 측면에 대한 관점이 차차 사라지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설계인지 우연인지 판단하는 이 모든 작업은 뎀스키의 작업을 이론적 토대로 해서 수행될 것이다.”
- 마이클 베히(「다윈의 블랙박스」 저자 )의 ‘서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