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말하는 이런 현대적 삶은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먼 지역으로 휴가를 떠나고, 자가용을 굴리고, TV와 컴퓨터와 냉장고를 보유하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두세 세대 이전만 해도 그런 것들은 부자들의 전유물로 간주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광고 때문에 누구나 그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고, 이전보다 얼마나 더 많이 소유하고 있는가, 그리고 멀리까지 얼마나 빠르게 갈 수 있는가가 진보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를 해석하는 이런 류의 이야기는 우리가 엄청난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경제적·기술적 발전으로 우리 삶의 많은 측면이 더욱 편리해졌습니다.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이 이야기가 제시하는 길은 ‘이제까지 한 것을 더 많이 하자.’는 것입니다. 저희는 이것을 ‘통상적 삶’이라고 부릅니다.
---「Part1_대전환」중에서
수년간 지속 불가능한 성장을 한 후 미국의 주택시장에서 드디어 거품이 폭발했고, 2006년과 2007년에 부동산 가격은 폭락했습니다. 많은 금융기관이 주택담보부 증권에 투자했기 때문에 그 위기는 모든 경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도미노 현상처럼 대형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쓰러졌습니다. 정부는 과열과 붕괴를 겪으며 망해가는 금융기관을 살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경제 체제 전체가 과열 상태에서 현재 거품이 빠지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한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라는 거품은 자원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합니다. 이로써 더 많은 양의 유독성 쓰레기가 만들어집니다. 자원과 쓰레기, 이 두 가지는 지속 가능한 한계를 넘어가면 갈수록 더 큰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Part1_대전환」중에서
만델라와 드 클레르크의 대화가 인종차별 정권을 종식시키는 데 중심 역할을 했지만, 훨씬 더 큰 지지 세력이 없었다면 이러한 역사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남아공 내부에서는 매일같이 변화를 위한 투쟁에 나서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불매운동과 시위에 합세해 지지자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별개의 활동 하나하나에만 초점을 맞추면, “그게 무슨 대수야”라고 묵살하기 쉽습니다. 어떤 움직임이 갖는 힘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것이 모이면 뭐가 되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자체로는 하찮게 보이는 행동이라도 다른 행동과 합쳐지고 상호작용을 하면 훨씬 큰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신문 사진을 예로 들어볼까요? 확대경으로 사진을 들여다보면 작은 점들이 모인 것처럼 보이지만, 약간 떨어져서 전체로서 보면 더 큰 모양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큰 변화도 개별적 행동과 선택이라는 무수히 작은 점들로부터 가시화됩니다. 작은 움직임들과 큰 변화 사이의 이러한 연관성 때문에 우리는 권력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개별적인 움직임은 그 자체만으로는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행위가 이루어지는 수준에서는 그 행위로 인한 이점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Part2_새로운 눈으로 보기」중에서
안전과 만족스런 삶이라는 우리의 욕구를 충족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통상적 삶이라는 이야기에서 중심 줄거리는 경제적 성공을 통한 개인의 출세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고, 더 좋은 물질을 얻어야 우리의 욕구를 채울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이 이야기를 좇아가면, 사람들은 관계나 공동체가 아니라 각자 개인적 밀실에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고 주의를 기울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사람의 비율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거의 3배가량 늘었습니다.2 평균적으로 과거 30년 전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더 부유해졌지만, 현대의 미국인들에게는 친구를 방문하는 것도 친구들이 찾아오는 것도 더 뜸해지고 있습니다. 산업화된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는 외로움이라는 전염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Part2_새로운 눈으로 보기」중에서
인류라는 종의 진화는 인간의 능력을 키우는 발견, 즉 언어, 문자, 도구, 농경, 탈것 등으로 특징지어지고 촉진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수천 리 밖에 사는 생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통신 기술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태적 시대를 가져온 발견 또는 재발견은 시간을 초월해 사는 능력이 될 수 있을까요?
생태지능이란 지질학적 시간, 즉 인류의 전 역사를 포함하는 시간적 여건이라는 측면에서 사고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기술 여건에서 우리의 행위가 수백 년, 아니 수십억 년까지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그런 사고를 해야 합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된 수천 톤의 열화 우라늄 핵무기를 생각해 봅시다. 그로 인해 암을 유발하는 에어로졸은 반감기가 45억 년이나 됩니다. 이는 현재 지구의 나이만큼이나 오랜 시간입니다.
더 긴 시간의 지평에서 사는 법을 배우면 우리는 새로운 조력자와 힘의 원천에 다다르게 됩니다. 우리 조상이 한편이 되기도 하고, 우리 자신도 후손의 조상으로서 그들의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Part2_새로운 눈으로 보기」중에서
사치를 통해 우리는 만족에 이르도록 확장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활동을 통해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가능합니다. 첫째,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합당하게 행동할 때, 우리는 하는 일의 배후에 있는 정당함이라는 내적 의식을 경험하게 됩니다. 둘째, 우리가 집중해서 어려운 문제를 대할 때, 칙센트미하이 같은 심리학자들이 삶의 만족과 그렇게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몰입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이런 몰입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집중을 해야 할 정도로 어렵지만, 좌절할 정도로는 어렵지 않은 문제와 부딪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힘과 열정을 모두 쏟아부으면, 우리는 시간 가는 걸 잊어버리는 몰입 상태에 빠집니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를 강화하는 나선형 운동이 생겨납니다. 즉, 우리의 힘을 쓰면 쓸수록 몰입 상태에 빠지고, 우리는 활동에 집중하게 되는 만큼, 일을 더 잘하게 됩니다. 이런 ‘선순환’이 이 세상에 도움을 줄 때, 우리는 훨씬 더 큰 만족을 얻습니다.
---「Part3_실천하기」중에서
우리가 합리적으로 성공을 확신할 때에만 행동을 취한다면 불확실성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가령, 기후변화를 다룰 때 우리는 지구 최후의 날로 치닫게 되는 정점을 이미 지났는지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거나 냉소적이 되거나 인생의 목적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가 결국 파국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믿는다면, 어느
지점이 과연 사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일까요? 우리 중 일부가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고 우리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이 시대의 도전적인 불확실성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리스가 중독자 치료를 할 때의 일입니다. 매년 그가 잘 아는 환자들 몇몇은 술과 마약으로 죽어간 반면, 다른 사람들은 회복 과정에서 더욱 강해졌습니다. 새 환자를 만났을 때, 그는 그들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환자들도 이런 불확실성을 느꼈을 때 좋은 조짐을 보였습니다. 만약 병이 나을 것이라고 확신하면, 그들은 그 상태에 안주할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 스스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병이 더 악화되는 하방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에 일찌감치 마약이 나 술을 포기하고 자기충족적인 예언을 만들어냅니다. 불확실성 때문이라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이처럼 미래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뭔가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할 여지
를 가지게 됩니다.
---「Part3_실천하기」중에서
우리가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 일련의 가능한 행동 경로와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많은 방안 중에서 우리의 정력을 어디에 쏟아야 할 것인지를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문제는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비전을 우리가 귀담아들으려 노력하고, 그 비전을 잘 따르기 위해 정력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으며, 우리의 초점을 정밀하게 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모종을 솎아 줘야 하듯이, 비전도 우리가 지지하는 것을 골라 주위 공간을 비워 두어야, 그 비전이 성장하고 번창해질 여지가 생깁니다.
우리는 이런 노력을 할 때 집단지능 방식을 활용하면 전혀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 커다란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선택하거나 선택받으면 됩니다. 이 커다란 집단지능을 신뢰하면,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해줄 많은 조력자와 지원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조지프 캠벨의 말처럼, “자신의 희열을 좇으라. 그러면 없던 문도 열릴” 것입니다.
---「Part3_실천하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