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은 의사의 정신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이는 왜 의사들이 자신들의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는지, 때때로 폐쇄적이고 왜곡된 사고를 하는지, 지식의 틈을 보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드러낸다. 오진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최근 대부분의 의료 과실이 기술적 실수가 아니라 의사의 사고의 결함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환자에게 심각한 해를 끼친 오진 사례들을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무려 80퍼센트 정도의 오진 사례가 앤의 경우처럼 환자를 좁은 틀 안에 가두고, 자신의 고정관념에 벗어나는 정보들을 무시한, 일련의 인지적 오류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부정확한 진단 사례 100건을 분석한 또다른 연구는, 의학 지식의 부족이 과실의 원인으로 작용한 사례가 이들 중 오직 네 건에 불과했음을 보여주었다. 즉, 의사들이 임상 정보에 대한 무지 때문에 휘청거렸다기보다는 인지적 함정에 빠져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인지적 오류는 높은 오진율을 낳는다. 의사들이 환자들의 증상에 대한 소견서를 평가하고 다양한 질환을 연기한 배우들로 구성된 모의 환자들을 진찰한 1995년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오진율은 최고 15퍼센트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이 같은 결과는 부검을 바탕으로 한 고전적인 연구 결과와도 일치하는데, 부검 분석을 통해 밝혀진 오진율도 10~15퍼센트에 달한다.
---"프롤로그 : 의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중에서
의사들의 내면 상태와 긴장도는 의사결정 과정과 행동에 개입할 뿐만 아니라 강한 영향을 미친다. 크로스케리 박사는 정신운동 기술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이 개발한, 과제 수행의 효율성에 관한 ‘여키스 도슨의 법칙(Yerkes-`Dodson law)’에 대해 언급했다. 이 법칙은 종 모양의 곡선으로 표시된다. 세로축은 ‘수행’을 상징하며, 가로축은 ‘각성’ 정도, 즉 아드레날린 및 기타 스트레스 관련 화학 물질에 의한 긴장도를 나타낸다. 상승 이전의 곡선 기저부에서는 긴장도가 아주 낮다.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주로 기술적인 오류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부정확한 진단과 치료에서 이러한 기술적 실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오류는 생각의 실수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의 오류를 일으키는 일부 요인은 우리의 내면 감정, 선뜻 인정하기 힘들뿐더러 제대로 인식조차 하기 힘든 우리의 감정이다. ---"1장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판단" 중에서
실제로 최근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을 고려해 지난 10년을 조사해 보았을 때 소아과 전문의와 같은 의사들의 소득은 줄었다고 한다. 이러한 소득 감소에 대해 많은 의사들은 진료 시간을 10분이나 15분으로 줄이고 1일 진료 환자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대응은 진료의 속도를 높이고, 팻 크로스케리와 해리슨 알터 박사가 ‘접시돌리기 곡예를 펼치는’ 응급실 의사들이 범하기 쉽다고 우려한 오류들을 양산한다. 시간에 쫓기면 인지적 오류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치료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909명의 환자를 진료한 45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의사들 가운데 3분의 2가 신약을 처방할 때 복용 기간과 발생 가능한 부작용을 환자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또 정확한 복용량과 복용 횟수를 설명하지 않은 의사는 절반에 가까웠다. ---"4장 시간의 지배자" 중에서
록 선생의 말에 따르면, 좌우 심방의 압력 비율이 2 대 1, 즉 우심방의 혈류량이 좌심방의 혈류량보다 두 배 더 많은 소아의 경우 그 구멍을 폐쇄하기 위해 수술실로 보낸다고 한다. “그 2 대 1이란 비율이 어떻게 나왔는지 아십니까?” 록 선생이 물었다. 나는 그러한 결손을 보이는 아이들에 대한 면밀한 임상 관찰을 통해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1960년대에 열린 어느 학회에서 한 소아과 전문의가 물었죠. ‘언제 폐쇄술을 시행해야 합니까?’ 그러자 심장전문의들 사이에 수술적 봉합이 요구되는 비율을 찾기 위한 열띤 논쟁이 벌어졌죠. 이에 학회 주최 측에서는 어쩔 수 없이 투표를 실시했어요. 더 낮은 비율을 제시한 이들도 있고 더 높은 비율을 제시한 이들도 있었어요. 결국 그 중간인 2 대 1이 선택됐죠. 《미국심장학저널(American Journal of Cardiology)》에 결과가 발표되었고, 그래서 지금 교과서마다 전부 2 대 1 비율을 보일 때 폐쇄술을 시행하는 것을 진리처럼 말하고 있죠. 그런데 2 대 1 단락을 보이면서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시술의 필요성을 못 느낄 가능성도 꽤 높아요. 2 대 1 단락을 보이면 많은 아이들이 시술을 받지만, 어쩌면 필요 없는 시술일 수도 있죠. 그런데도 왜 계속하느냐? 임상 연구를 할 수 없으니까요. 500명의 어린아이를 무작위로 추출해서 폐쇄 대 비폐쇄 비교 연구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40년은 걸리겠죠.” ---"6장 불확실성과의 싸움" 중에서
“완벽은 최선의 적입니다. 수술에선 그 무엇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게 타협이죠. 수술 후 80퍼센트 정상 회복이라면, 상당히 흡족하다고 봐야죠.”
솔직히 말해 나는 100퍼센트를 바랐고, 모든 환자들이 그렇듯 완벽한 원상복귀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는
많은 경우 비현실적인 바람이다. 어떤 환자에게 어떠한 경과가 나오리라고 구체적으로 예견하는 일은 불가능하므로, 우리는 좀더 솔직해져야 하며 지나친 장밋빛 시나리오를 그려서는 안 된다고 라이트 박사는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남다른 용기가 필요하다. 의사로서의 자존심을 어느 정도 접어야 하므로 남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자존심을 만난다. 바로 셀저 박사가 말한 다른 인간의 몸에 칼을 대기 위한 건강한 자존심(수술실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신속히 처치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메스가 병든 육체를 완벽하게 회복시켜 주는 요술지팡이라고 생각하는 자존심이다.
---"7장 하나의 질명, 다섯 명의 의사, 다섯 개의 진단" 중에서
내가 만나 대화를 나누어본 척추외과의들은 솔직한 대답을 하게 되면 의료계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악화되고 환자 수가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이름 밝히기를 꺼렸다. 그래서 나는 그들 외과의들 가운데 한 명을 그냥 휠러 선생이라고 부르겠다. 휠러 선생은 일주일 두세 차례 척추융합술을 시술한다. 그는 수년 동안 자신의 환자들에게 만일 절대적인 필요가 없다면(척추가 탈구되었거나 혹은 척수나 신경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질환으로 손상된 경우가 아니라면) 융합술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해 왔다. 그러나 그런 절대적인 경우는 만성 요통 환자의 2퍼센트에도 미치지 않을 만큼 극히 드물다. 휠러 선생은 이렇게 설명한다.
“만성 요통에 시달리는 환자들한테는 흔히 ‘척추 불안정성’이라는 진단이 내려집니다. 수술을 정당화하기 위한 용어지요. 게다가 이런 용어라면 직접적으로 반박할 수도 없으니 얼마나 훌륭한 진단입니까."
---"9장 개인의 욕망을 넘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