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더 특별히 눈을 열어야 했겠는가! 로마의 관리로서 나는 오직 내 임무만을 생각했다. 무슨 이유로 평범하고 습관적이고 일상적인 그 순간에 내가 다른 주의를 기울여야 했겠는가! 예수는 그의 역할을 연기했다. 나 역시도.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들을, 그들을 있는 그대로만큼 보지 않는다. 그들에 대해 우리는 순간의 관심을 통해 부분적이고 편협한 시각들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인간극이라는 연극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행하려고 애쓰고 잇다. 단지 그의 역할 그것만을.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어렵지만.
우리는 자신의 대본에, 상황에 매달려 있다. 우리는 그 날 밤 두 명의 연기자였다. 예수는 사법상의 착오에 의한 희생자를 연기했다. 그리고 나, 빌라도는 정의로복 공정한 로마의 총독을 맡아 연기했다.
"너는 유대인들의 왕인가?"
"나는 한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소."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누가?"
"너를 기소한 사람들, 너를 내게 인도한 사람들, 모든 산헤드린의 구성원들."
"그것은 부당하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그들이지 내가 아니오. 그들은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비난하고 있소."
"그렇지만 네가 바로 왕국을 세운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그렇소."
"그래서?"
"내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오."
마치 실패를 확인함으로써 좌절에 빠져버린 것처럼 그는 슬프고 비통해 보였다. 이윽고 그는 자신을 추슬렀고 내게 열정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세상의 왕이 되려 했다면, 사람들이 나를 체포하는 것을 막으려 했을 것이오. 신도들로 하여금 나를 보호하게 했을 것이요. 나는 여기 당신을 마주하고 서 있지도 않을 것이오. 그렇다오, 내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오."
(...) "진실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피고인에게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향해 말했다. 나는 평온해졌다. 그런데 깜짝 놀랍게도 그 유대인은 내 말을 잘 알아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내게는 뜻밖이었다. 그 사람은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 광신자들은 그들의 신앙을 더욱 주장하면서 그들의 의심들을 짓눌러 버린다. 그런 대신 예수는 정말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믿는다는 것이 안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듯했다. 그는 완전히 잘못된 길을 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를 계시받은 미치광이로 여기는 것을 파악했으며, 아주 솔직하게 내가 옳은 것은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자신의 떨림을 억누르고 그의 힘을 모은 채 내 시선을 마주하며 천천히 이렇게 말하였다.
"과연 진실이란 무엇이오?"
그는 내게 그 질문을 되돌려 보냈다.
그리고 마치 되돌아온 공에 맞은 것처럼 질문의 반향으로 몸을 떨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아니, 나는 진실을 쥐고 있지 않았다. 나는 단지 권력을 가졌을 뿐이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지를 결정하는 당치 않은 권력,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엄청난 권력, 추잡한 권력을 가졌을 뿐이었다. 침묵이 자리잡았다. 공은 우리 두 사람 가운데서 길을 잃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우리 사이에서 분주히 말하고 있었다. 침묵은 그 자리에 급하고, 막연하고, 사연 많고, 모호한 수천 가지 것들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침묵은 이상하게도 내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는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누가 너에게 존재들을 마음대로 처분하라는 권리를 주었는가? 누가 너를 결정들을 내리도록 깨우치는가?"
침묵이 내게 물었다. 모든 것을 소모한 듯한 느낌이, 깊은 피로가 나를 침범해왔다. 그것은 권력에 대한 피곤함이 아니었다. 그런 피곤함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을 사라지게 하는 데는 휴식만을 취하면 되는 것이다.
--- p.320~323
'예수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맡겨두는 것, 그것은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의거 입니다. 그가 부활하는 것, 그것은 그가 사랑하는 것이 옳았음을 보여주기 위함 입니다. 비록 우리가 반박당하더라도 우리는 사랑할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 입니다.'
--- p.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