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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 캄보디아에서 박정희를 보다

유재현의 온더로드-03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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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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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400g | 153*224*20mm
ISBN13 9788976821003
ISBN10 89768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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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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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이 스러져가는 목숨과 비판의 한숨들, 어쩌면 죽음보다 끔찍한 고통과 공포가 만개하고 있는 프놈펜에서 나는 박정희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인간들의 오직 절망으로 가득했을 비참한 삶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p. 12

논 가운데에서 피를 뽑던 아이는 뜻밖의 불청객이 나타나자 한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아이의 시선을 피했다.
잔인하군. 잔인하군.
나는 중얼거렸다.
그 아이가 서 있는 논에서 두 시간 떨어진 프놈펜에는 거실의 금고에 백만 달러를 현금으로 가진 인간들이 있었다. 그런 인간들의 금고를 모두 털고 외국에 숨겨둔 돈을 모두 찾아 원래의 주인에게로 되돌린다면, 아니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이라도 그들의 손에서 되찾아온다면, 아이는 깨끗한 옷을 입고 학교에서 크메르 문자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이 아이의 세상은,
아이를 논바닥에 붙박아두고, 코를 박게 하고, 흙투성이 문맹으로 만들고 있다.
이보다 더 잔인한 일이 있는지 나는 알고 싶다.
나는 기억한다.
선글라스를 낀 군인이 지배하던 어느 혹한의 겨울날,
70년대 초 서울 동변두리의 한 골목에서 김이 피어오르던 수챗구멍을 뒤져 멸치대가리를 찾아 입에 넣고 있었던 내 또래 아이의 시선을.
나는 정말 무능하지만.
나는 정말 비겁하지만.
그 시선을 내 기억에서 지워버릴 만큼 용감하지는 못하다.
인간으로서,
나는 증오해야 할 것을 증오한다.

내 기억 속의 그 시선이 사라지기 전까지는---p. 57‘시선’ 전문

이명박의 공식 프로필을 보면 2000년부터 현재까지 ‘캄보디아 훈센 총리 경제고문’이라는 직함이 눈에 띤다. 훈센에게서 박정희를 보는 내 눈에 이명박이 밟히는 이유이다. …… 훈센의 경제고문. 타이틀로는 그보다 역겹고 수치스러운 일이 없을 텐데, 어떤 인간은 버젓이 몇 줄 되지도 않는 프로필에서 한 줄을 떳떳하게 그것으로 장식하고 있다.---p. 58‘훈센과 이명박’ 중에서

시엠립이 그런 개발의 불빛으로 휘황한 가운데 앙코르는 빠르게 죽어가고 있다. …… 밀림 속에서 살아남아 인간의 손으로 레고처럼 맞추어진 앙코르 유적은 다시금 탐욕의 재물이 되었고 이제 백 년이나 버틸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 앙코르의 유적 앞에 서서 나는 결국 무화과나무 뿌리 아래 휘감길 자본과 개발의 탐욕을 본다. 어떤 탐욕이 밀림의 나무와 풀들, 사막의 모래바람을 이겨낼 수 있었던가. 당대가 아니면 후대에라도 우린 알게 될 것이다.
---p. 200~201‘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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