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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생태보고서

남편 생태보고서

: 아내가 꼭 읽어야 할

김상득 | 샘터 | 2007년 11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9 리뷰 5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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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가족 top20 1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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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1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99쪽 | 260g | 128*188*20mm
ISBN13 9788946415980
ISBN10 8946415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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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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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 올리고 오줌 누는 일은 정말 성가시다. 그래도 평소에는 잘 협조하는 편이지만 어제처럼 술 마신 날이면 오줌이 튀거나 말거나 시트도 올리지 않고 일을 저지르고 만다. 아내는 샤워기를 틀어 시트를 씻는다. “이제부터 당신도 앉아서 눠.” “뭐, 그렇게는 못 해. 아니 안 해!” “왜? 앉아서 오줌 누는 게 뭐가 어때서?” “남자 체면에 어떻게 앉아서 눈단 말이야.” “그럼 똥은? 똥은 앉아서 누잖아.” “똥은 똥이고. 남자와 여자는 엄연히 신체구조가 달라. 여자야 앉아서 눌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남자는 다르잖아. 그런데 왜 앉아서 눠? 쪽 팔리게.” “똥 누다 오줌 나오면? 그땐 어떻게 해? 그때도 남자니까 쪽 팔리니까 똥 누다 말고 중간에 일어서서 오줌 눌 거야?” --- 화장실 : 크든 작든 앉아서 (p.14)

사실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신혼 때부터 그랬다. 한동안 어른들과 함께 살았던 우리는 소리가 방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서로의 입을 틀어막고 최대한 몸놀림을 작고 빠르게 해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 섹스가 몸에 배어서인지 지금도 우리는 소리 없이 빠르게 한다. 그것은 마치 볼륨을 최대한 줄이고 속도는 2배속으로 해서 몰래 보는 야한 비디오 속 사랑처럼 우스꽝스럽고 슬프다. --- 침실 : “……” “……” (p.22)

아내에게 명절 시댁에 가는 일은 전근대의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시간여행’ 같은 것이다. 어떤 때는 열 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이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 길이 가부장적 질서 속으로 넘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는 매번 명절 때마다 시차 적응을 못해 멀미와 두통으로 시달린다. … 아내는 쾌변이라 할 정도로 똥을 잘 누는 편인데 시댁에만 가면 변비로 고생한다. … 화장실과 거실이 가까운 시댁의 구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내에게 변비는 현대와 전근대의 시차에서 오는 생리적 현상이다.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겪는 그 모든 스트레스에 대한 아내 몸의 농성이고 시위다. --- 명절 : 그대는 야누스 (p.74)

나는 예의 상 아내를 끌어안는다. 물론 억지로 겨우 하는 것이다. 항상 이런 식이다. 재미는 녀석이 보고 뒤처리는 내가 해야 한다. 나는 아내를 엉거주춤 껴안은 채 있다. 마음은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이기적인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다. 어찌 그 속을 아내가 모르겠는가. 아내가 내게 입맞춤한다. “벌 그만 서고 씻으러 가.” “그래야겠지?” 나는 한 마리 청개구리처럼 욕실로 폴짝 뛰어간다. --- 아침 : 청개구리(p.86)

… 내가 먼저 죽고 아내만 남아 세상을 살아갈 상상을 하면 슬퍼진다.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날마다 현재의 시간을 조금씩 떼어 저축해 두었다가 내가 죽은 후에 그 시간들을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다. 현재의 대화를, 현재의 웃음을, 현재의 다정함을, 현재의 다툼과 화해를, 현재의 입맞춤과 껴안음을 말이다. 아내의 코고는 소리는 점점 커진다. 나는 아내의 코를 잡아 비튼다. --- 밤2 : 먼저 죽지마 (p.95)

“돌아누운 남편은 마치 자신의 별과 종족을 그리워하는 ET 같았어요. 남자가 속은 좁아터져서 잘 삐치고. 밤에도 남편은 잠이 없어요. 자다가 허전해 깨보면 불도 안 켜고 캄캄한 방에서 인터넷으로 외계인들과 교신하고 있지 뭐예요. 그럴 때 남편 몸은 온통 파랗게 변해 있어요. 네? 물론 컴퓨터에서 나온 빛 때문일 수도 있지만요. 아니에요. 그게 다 자신의 본색을 감추기 위한 거죠.” --- 외계인 : 그이는 ET (p.130)

… 나는 슬슬 짜증이 난다. 냉장고 속에는 유효기간이 지난 두부와 썩기 시작한 반찬이 들어 있었다. … 미안한 표정으로 웃으며 들어서는 아내를 나는 썩기 시작한 반찬 같은 얼굴로 맞는다. “저녁을 먹고 자시고 간에 냉장고가 왜 그래?” “냉장고가 왜?” “몰라서 물어? 냉장고가 아니라 완전히 ‘부패고’던데.” “봤어? 미안, 곧 치울게. 아, 배고프다. 뭐 먹었어?” … 오래된 음식을 정리하고 있는 아내를 보니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과 달리 말은 엉뚱하게 나와 버린다. 그것도 버럭. “밥 안 먹을 거야? 안 먹을 거면 이것도 버리고.” 아내는 대답도 없이 쿵쿵 걸어와 식탁 위의 밥을 가져간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입술까지 파르르 떨고 있다. --- 아내의 일기장, 냉장고 : 관성의 법칙(p.161)

사랑이란 언제 어디서든 가려운 등을 내미는 일이다. 그렇게 내민 등을 투덜거리며 긁어 주는 일이다. 그러나 정작 사랑을 나눌 때는 남편 손이 아내의 등에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일 살짝 닿기라도 하면 아내의 가려움은 한강의 괴물처럼 깨어난다. 아내는 사랑을 멈춘다. “등 좀 긁어 줘요.” “지금?” “응. 가렵단 말야.” --- 가려운 아내 : 등 좀 긁어 줘(p.170)

여자는 스무 살이 되자 다른 여자들처럼 연애를 했다. 어느 겨울 여자는 남자와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는다. 남자는 알레르기 때문인지 자꾸 코를 훔친다. 그런 남자를 보며 여자는 살큼 웃는다. 그리고 휴지를 자신의 코에 대고 우청차게 푼다. 남자도 따라서 코를 힘차게 푼다. 둘은 서로를 보며 촌색시처럼 웃는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도 씩씩하게 코를 푸는 사람.
어느 날 여자는 남자와 함께 밤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 남자에게 말한다.
"너 나랑 결혼해." "왜?"
"나랑 잤잖아." "잠만 잤는데?"
"암튼 잤잖아."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남자에게 먼저 프러포즈하는 사람.
여자는 남자와 결혼한다. 그때 여자와 남자의 나이는 스물여섯 동갑. 세상이 어떤 곳인지, 결혼이 어떤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들이었다. 남자는 착하고 무능해 남편으로는 최악이다. 사람과 술을 좋아하고 바람이 잔뜩 들어 집 밖으로 돌기만 했다. 여자는 죽도록 고생한다. 그러나 고생이 여자를 죽이지는 못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한 니체의 말은 여자에게 바쳐져야 한다. 여자는 남자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한다. 억척같이 일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남자를 남편으로 만든다. 사람으로 만든다.
여자가 겨우 사람 만들어 놓은 남자는 이제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신문에 글을 쓴다. 글 속에서 여자는 온갖 악역을 도맡는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는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남편을 위해 악역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 대신 출연료가 비싸서 남편의 원고료를 몽땅 가져가는 사람.
--- 그런 사람 : 내 여자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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