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에 차라 달려가보니, 움직이는 보물상자 쓰레기 트럭은 점점 더 다가와 판자촌 높이 정도 되어 보였다. 트럭은 곧 론 강으로 이어지는 자갈길로 접어들었다. 동네 아이들은 보물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쓰레기 트럭을 따라 달리고 또 달렸다. 이미 보물탐험에 익숙해진 아이들과 배짱 좋은 아이들은 트럭 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 p.47
그리고 드디어 보물찾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팔을 어깨까지 걷어붙이고, 바지는 배꼽까지 추켜올렸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가며 발굴에 나선 것이었다. 낡은 옷과 신발, 장난감, 빈 병이며 헌책들, 그림책, 반밖에 쓰지 않은 공책, 줄, 접시, 포크와 나이프 등등……. --- p.48
나도 다른 프랑스 애들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 프랑스 아이들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비록 내가 사는 곳이 가난한 판자촌 샤바일지라도 말이다. --- p.77
오늘 아침 수업 이후로 내 결심은 더욱 확고했다. 나는 더이상 반에서 겉도는 아랍 아이로 지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프랑스 아이들과 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그런 아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 p.78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선생님의 교탁 바로 아래였다. 오전 수업 내내 그 자리에 앉았던 아이도 별말이 없었다. 그 아이는 교실 뒤로 가더니 비어 있는 원래의 내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놀랐다는 듯 나를 흘끔 내려다보셨다. 이러는 선생님을 나는 백번 이해했다. 나는 선생님에게 달라진 내 모습을 꼭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이제 반에서 제일 말 잘 듣는 아이 중 하나라는 것을, 알림장을 가장 깨끗이 쓰는 아이 중 하나라는 것을, 손도 깨끗하고 손톱 사이에 때도 끼지 않은 깨끗한 아이 중 하나라는 것을, 그리고 수업에 참여 잘하는 아이 중 하나라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 p. 79
샤바의 남자들이 마당에 둥글게 원을 그리고 앉아 있었다. 부인들이 집 밖으로 날라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태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남자들의 둥글게 앉아 만든 원 안에는 안테나를 쭉 뺀 라디오가 아랍 음악을 흘려보내고 있었고, 음악에 맞춰 천천히 몸을 흔드는 아빠는 오늘따라 평온해 보였다.(중략) 저 멀리 루이즈 아줌마를 감싸고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 틈에서 아쎈느를 찾아냈다. 아줌마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샤바의 아이들은 학교 숙제를 하는 것보다 루이즈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훨씬 더 좋아했다. 두 손에 빵조각과 각설탕 두 개를 쥐고, 나도 루이즈 아줌마의 동화나라로 빠져들었다. --- p.81
밤이 되었다. 샤바가 깊은 침묵에 잠기는 시간이었다. 시끌벅적했던 낮과는 사뭇 다른 밤의 정적에 귀까지 얼얼했다. 옅은 불빛이 판잣집 문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라디오에서는 아랍 음악이 들려왔고, 밤이 늦도록 잠들지 않은 우수어린 자들의 귓가를 맴돌았다. (중략) 여자들은 자유를 꿈꾸고, 남자들은 고향을 꿈꾸는 시간. 나? 나는 방학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내일이 시험 보는 날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 p.83
“꽃 두 다발 주세요.”
“옙, 근데 무슨 꽃으로 드릴까요?”
아직 할머니의 칭찬에 어리둥절했던 나는 되는대로 아무 꽃이나 집어올렸다. 그리고 손님을 향해 꽃을 건네려는 순간! 꽃다발을 들고 쭉 뻗었던 내 팔이 툭 떨어졌다. 그랑 선생님! 우리 담임선생님이 바로 내 눈앞에 서계신 것이 아닌가. 선생님은 웃으면서 꽃다발을 가져갔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나는 안 그래도 너무 헐렁한 골덴바지 안으로 쑥 들어가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 p.93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이 사실을 알고 나를 자랑스러워하며 기뻐할 아빠를 생각하니, 지금이라도 당장 환호의 함성을 지르고 선생님을 꼬옥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성적표에는 27명 중 2등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의견을 쓰는 칸에는 ‘열심히 공부를 잘했음, 똑똑하고 노력하는 학생’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구를 봐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장-마크 라빌르도 신이 나 있었다. 그리고 1이라는 숫자를 보며 행복의 최면에 빠진 듯했다.
--- 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