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그리스도인이 성령을 신조와 기독교 신앙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은 누구인가』(The Living God, 성서유니온)에서 보았듯, 하나님을 풍성하게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면 하나님이 이 세상과 우리의 삶에서 살아 계심을 인지해야 한다. 세계 여러 교회에서 일어나는 은사주의 운동은 하나님의 이러한 측면을 그리스도인들이 재발견했다는 표시다. 믿음은 단지 관념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자라 가는 하나님과의 관계다.
---「서문」중에서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이 주는 성령에 대한 증언에 이어서, 하나님이 창조세계와 인간 존재 안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신약성경은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성령의 존재와 활동의 새로운 국면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구약성경은 성령을 수면 위로 부는 강력한 바람, 인류에 생명을 주고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에너지라고 말했다. 신약성경은 이 에너지가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본다.
---「1. 성령: 생명을 주시는 분」중에서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져야 할 책임을 이해하게 도와주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 지성의 능력을 이해하게 도와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우리가 친구든 가족이든 가까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듯, 하나님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2. 인류: 창조의 절정」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시도한 접근법의 진짜 문제는 하나님께 종처럼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니체도 신앙에 대해 이러한 비판을 했는데, “기독교는 모든 약하고 천한 것의 편을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기독교는 강한 삶의 본능에 반대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8) 그리스도인은 스스로를 지키고 힘과 능력을 가치 있게 여기는 대신, 연약함과 의존성을 축하한다고 비판했다.
니체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실제로 도움이 안 되는 의존성의 패턴에 갇히는 그리스도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기독교의 은혜 사상이 천명하는 것은, 하나님은 인생의 도전들을 혼자 직면하게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인의 생애 내내 죄와 죄책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3. 은혜: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선물」중에서
교회는 신앙 안에서 자라 가는 우리를 감싸고, 보호하고, 격려하는 공동체다. 우리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게 도와주는 유아원 같은 곳이다. 언젠가는 우리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탐험하고 그 한계를 실험해 보고, 실수를 하고, 그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어머니’로 이해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교회가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안다. 교회가 폭력과 남용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슬픔 중 하나다. 그러나 교회가 원래 그런 것은 아니며,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교회는 안전과 환대와 돌봄의 장소가 될 수 있다.
---「4. 교회: 성도들의 교제」중에서
교회의 수와 영향력이 커지자, 교회는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회는 무엇을 믿는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유대교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혹은 이교와는? 이러한 많은 논의가 신약성경에 반영되어 있다. 그 외에도 또 생각해야 하는 질문이 있었다. 교회는 무엇인가? 이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는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해야 하는가?
신조는 네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러한 정체성을 이해하는 틀을 제시해 준다. 니케아 신조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를 믿는다고 선언한다. 이번 장에서는 이 네 가지 ‘표지’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것이 교회의 본질과 사명과 목적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
---「5.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