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다니며 집중 참선 수련회에서 불교 수행을 가르치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가장 어려운 장애는 나태와 무기력감이라고 말한다. 전화가 와 상대방이 “파리의(아니면 다른 이국적인 곳의) 참선 수련회에 와서 강좌 하나를 좀 맡아 주세요” 하면, 마음속에서는 “아니, 너무 멀잖아!” 오가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릴 거구!”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데, 입으로는 대개 “알겠습니다!” 하는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마음속에 어떤 필터가 있어서 그 때문에 마음속의 맨 첫 반응이 귀찮다는 느낌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아무리 환상적인 일이라도, 그녀 마음속의 필터를 통하면 왠지 하기 싫은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르치기를 좋아하며 재능 또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게다가 훈련을 통해 좀더 신중하게 그런 반응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나태와 무기력감'이라는 말에서는 좋지 않은 느낌이 배어 나온다. 부도덕한 인상을 풍기는 말이다. 서구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이들 두 가지는 낱말의 느낌상 우리의 선택권 안에 있다는 기분이 든다. 예를 들면 우리는 참말이나 거짓말을 선택하여 할 수 있는데 이는 마음속에 내재된 특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으르거나 부지런한 것은 마음속에 내재된 특성이라기 보다는 선택 사항이다. 다섯 가지 번뇌 에너지에서 말하는 나태와 무기력감이란 마음의 에너지가 낮은 상태를 가리킨다. 마음 에너지는 언제나 오르내리며 바뀌기 때문에, 에너지가 낮은 상태는 누구나 겪게 되는 현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에너지가 낮은 마음 상태를 자주 경험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게으른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내 친구처럼 마음 상태를 일시적인 필터로 의식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중에 자신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마음 상태가 자신이나 자신의 성격 때문인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이 아니라 마음의 에너지가 낮은 상태를 자주 겪는 사람들이다.
마음을 일종의 방향유지장치로 생각하면 된다. 주의 상태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흔들리지만, 근본적으로는 안정과 평형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마음에 에너지가 더 높은 시기와 낮은 시기가 있음은 당연하다. 마음이 점차 더 평정한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생겨나는 에너지의 자연스런 변화이다.
--- pp.111~113
불제자들이 공空에 대해 하는 말이나 마음을 광대한 공간으로 표현하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간혹 어지럽혀지지 않은 고요한 마음을 마치 우주의 블랙홀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두려운 느낌이 들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좌선중에 점점 더 마음이 편안해지다가 갑자기 제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릴까봐 겁이 났습니다. 또 어디선가 길을 잃고, 돌아오는 방법도 모르게 될 것 같아 겁이 납니다.”
하지만 대체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또 참선수행의 결과로 우리는 예전이 아닌 바로 지금 현재에 있는 것이다. 결코 낯설게 바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광대하고 고요한 마음이란 생각이나 지각이나 감각이 없는 마음이아니다. 그냥 어맂럽혀지지 않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내가 어렸을 때, 작은 도시들은 “평화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금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나는 어지럽힌다는 게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공공장소에서 고함지르기? 길거리에서 노래하기? 오늘날처럼 도시 생활이 복잡할 때 본질적으로 혹은 마땅히 평화로운 곳이 있다는 생각은 색다른 멋이 있다.
마음은 본질적으로 평화롭다. 그 사실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마치 요즘 유행하는 유머처럼 좋은 소식인 동시에 나쁜 소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소식이란 편안한 마음, 어지럽혀지지 않은 마음이 반드시 황홀경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황홀경이기를 바랐다. 좋은 소식이란 결국 만족감은 가장 색다른 마음 상태이며 절대로 지루하거나 싫증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영원히 그곳에 머물 수 있다. 우리가 그곳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것은 그게 자연 그대로의 마음 상태이기 때문이다.
--- pp.138~139
금강경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설법을 듣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아주 드문 사람이다." 불경을 읽다 보면 우리가 지금껏 진리라 믿고 있던 것, 최고의 가치를 두고 추구하던 것 등이 뿌리부터 잘못되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런 것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이 자신이 살던 세계가 가상현실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이 책의 저자는 불경을 접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처음 받는 이러한 충격을 최소화시키는 데에 힘을 많이 쏟았다. 일상생활 속의 에피소드로 주의를 환기시킨 후 부드럽게 깨달음으로 안내해 가는 식이다. 게다가 거창하게만 들리던 "참선"도 저자의 안내에 따르면 현실에 등을 돌리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옮긴이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