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정토법문은 부처님의 과지果地에서 행하는 경계로 여래법신의 지혜ㆍ대비원력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다. 그래서 오직 큰 지혜가 있는 자만이 진실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재촉하여 들어갈 수 있다. 이 때문에 문수보살을 상수로 삼았다. 그리고 정토법문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불법 중에서 중생을 인도하여 진실한 이익을 얻게 하는 대법大法이다. 그래서 보처보살인 미륵보살에게 부촉하여 미래세계 용화삼회龍華三會의 중생들을 제도ㆍ해탈(度脫)하는 기간에도 아미타불의 정토법문을 힘껏 널리 전할 것이다. 또한 이 법문은 항상 정진하여 쉬지 않아야 장엄정토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정진보살과 불휴식보살을 언급한 것이다.
이렇게 이 법회에 참가한 성문ㆍ아라한 및 모든 대보살들은 모두 다 각자 수승한 공덕을 갖추고 있다. 이미 그들이 모두 본법의 수지자가 된 이상 구법계九法界의 어떤 부류에 속한 유정이든지 최종적으로 모두 정토를 귀의처로 삼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일체 수행의 최종결과는 바로 일진법계一眞法界로 돌아가서 상적광정토常寂光淨土를 증득해 들어가는 것이다.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은 법성法性을 철저히 증득하는 구경방편이자 모든 선善이 일진법계로 돌아가는 법문이다. --- p.35
한번 극락세계에 태어나서 아미타 부처님 대원의 위신력이 직접 당신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당신이 상속하고 있던 번뇌의 종자ㆍ 괴로움의 종자가 더 이상 현행하지 않도록 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마음이 아미타 부처님 본원바다의 가지加持를 누린 후 전화轉化가 일어날 것이다. 그로부터 더 이상 ‘나’와 ‘나의 것’을 집착하고 고집하는 생각이 한 순간도 일어나지 않고, 더 이상 어떠한 번뇌도 현행하지 않을 것이며, 유루업을 짓지도 않을 것이다. 비록 마음속에 여전히 번뇌와 업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았을지라도 다만 근본적으로 ‘나’와 ‘나의 것’을 집착하여 고집하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그것들은 나중에 현행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종자가 있더라도 단지 물, 흙, 햇빛 등의 조연이 없으면 종자가 싹을 틔우지 않는 것과 같다. 이렇게 번뇌ㆍ업 등의 조연을 이끌어내지 않고서 어떻게 번뇌가 나타나고, 근심과 고통이 생기겠는가? 어떤 이는 극락세계에서는 일체 색을 보고, 소리를 듣는 등등이 모두 당신의 번뇌가 적멸되었기 때문에 당신의 몸과 마음을 안온하게 하여서 어떠한 윤회를 일으키는 잡염법雜染法도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 p.48
극락세계에 태어난 후에는 항상 순전히 청정한 법의 기쁨과 즐거움만을 누린다. 『왕생론往生論』에서도 “불법의 맛을 좋아하고 즐기며, 선정 삼매에 드는 것을 식사로 삼는다(愛樂佛法味,禪三昧爲食).”라고 하였다. 이것은 극락세계의 성중이 끊임없이 법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음식으로 몸을 주지住持하고 장양(長養; 성장)시키듯이 성중은 광대한 불법의 기쁘고 즐거운 맛과 선정의 묘락妙樂으로 몸과 마음을 주지하고 선법을 장양시킨다는 말이다. 예컨대 정토의 부드러운 보배와 접촉할 때 오직 무루의 즐거움만이 생기고, 염애染愛의 쾌락은 멀리 여읜다. 아미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말미암아 가피를 받아 왕생한 자의 마음은 그래서 정토에 있는 만물과 접촉할 때 수승한 안락이 생기고 즐거움이 생기지만, 마음에는 염착染着이 없다.
법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상황은 어떠한가? 『법화경法華經』에서는, 일월등명日月燈明佛께서 묘법을 널리 설법하실 때 법회 대중과 계속해서 편안히 앉아 법문을 들으면서 64겁이 지났지만, 마치 밥 한 끼를 먹는 짧은 시간처럼 느껴지고 몸과 마음에 피곤 등의 느낌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그것들 모두 매우 깊은 법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 p.49
이 경전을 학습할 때 자신의 생명을 몰입하여 정토의 법의가 자신의 마음과 완전히 하나로 융합되어야 비로소 정토의 법미를 제대로 맛 볼 수 있고, 진실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극락세계가 아무리 수승해도 당신과 털끝만큼도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토의 정감을 배양해야 한다. 정토에 대한 열정이 불붙기만 하면, 마음속 밑바닥 깊은 곳으로부터 정업淨業의 만행이 솟아날 수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정업수행은 저절로 당신의 생활ㆍ언어ㆍ사상 전체 속으로 스며든다. 그런 다음 그것은 당신의 생명을 통섭統攝할 수 있고, 당신으로 하여금 한 마음으로 정토에 돌아가 의탁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 정말 살아있는 정토수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도리는 매우 간단하고 매우 소박하므로 신비하고 현묘하게 말하는 부분은 조금도 없다. 관건은 각자 진실로 행하는 것에 있다. 오르지 당신이 실제로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설하신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전부 자신의 가슴속에 새겨서 진심으로 공부해야만 매우 큰 효과가 생길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오직 이것을 지식삼아 이해한다면 법의는 당신의 마음과 융합될 수 없다. 이러면 큰 효과가 일어날 수 없고, 진실한 이익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 p.54
극락세계의 물은 색신의 모든 근과 사대를 장양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미묘한 것은 마음속에 갖가지 수승한 선근을 증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바세계의 물은 마신 후 단지 갈증만 해소시키고, 기껏해야 몸의 사대를 증익할 수 있지만, 마음속의 선근을 장양시킬 수 없다. 그렇지만 아미타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서원으로부터 화현한 팔공덕수가 당신의 몸속으로 한번 융입融入되면 즉시 마음을 가지加持하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곧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온갖 선법공덕, 예컨대 신심ㆍ정진ㆍ정념ㆍ선정ㆍ지혜 등의 선근을 모두다 지극히 크게 증장시킬 것이다. 한번 마시기만 하면 수행의 경계는 상당히 크게 제고될 것이다. 『왕생론주往生論注』에서도 “심신을 개오케 하고 몸을 즐겁게 하나니, 하나라도 불가함이 없다(開神悅體,無一不可)”고 하였다. 이 말은 극락국토에서의 물은 심신心神을 개오開悟시킬 수 있고, 몸을 즐겁고 기쁘게 할 수 있으며, 또한 여의보如意寶처럼 일체의 소원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 p.64
이들 수승한 공능ㆍ묘용은 모두 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다생 누겁 동안 성취한 무량겁 수행의 가피로 만들어진 결과이다. 당신이 일생에 극락세계에 들어가면 아미타 부처님의 자식으로 자애로운 아버지이신 아미타 부처님의 일체 복덕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일생에 극락세계에 들어가기만 하면 아미타 부처님의 가업을 계승하여 문득 더없이 부유하고, 더없이 귀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어느 곳에서든 마음대로 이들 위없는 미묘한 보배를 누리고, 사바세계에 있는 사람의 왕, 천상의 왕 등등 그 누구와 비교해도 모두 헤아릴 수 없이 부귀하다. 비교해 보면 사바세계의 모든 보배는 전부 다 그것에 미련을 가질 가치조차 없다. 극락세계에서만 아미타 부처님의 미묘한 마음으로부터 가장 좋은 보물이 변하여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들은 극락세계의 미묘한 보배를 사바세계의 모든 귀중한 보배보다 좋아할 것이다. 마음속으로 오직 더없이 미묘하고 뛰어난 보엄국토에 가능한 한 빨리 태어나길 바랄 뿐이다. --- p.69
성도문은 탁한 세상인 지금 현증現證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첫째 부처님 시대와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고, 둘째 실상實相의 묘리妙理는 매우 깊지만 중생의 지혜는 아주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집경大集經』에 이르길, 말법시대에는 수억 명의 중생들이 수행한다 해도 도를 얻는 사람은 한 사람도 드물다. 지금 마침 말법시대 오탁악세를 만나 오직 정토일문만이 쉽게 생사를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정토 경전에는 중생이 일생에 죄를 지었지만, 임종시에 나의 명호를 십념 상속하여 불러도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상 경전에 따르면 중생이 자력으로 해탈하기가 어렵고 정토에 왕생하여 생사를 횡으로 벗어나야(橫超) 쉽게 성취(成辦)할 수 있다. 이어서 일생에 악을 지은 자가 임종시에 지극한 마음으로 십념하여도 모두 왕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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