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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사진의 작은 역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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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선집

책소개

목차

해제: 현대 매체미학의 선구자, 발터 벤야민
옮긴이의 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제2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제3판)
사진은 작은 역사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관련 노트들
러시아 영화예술의 상황에 대하여
오스카 슈미츠에 대한 반박
채플린
채플린을 회고하며
미키마우스에 대해
연극과 방송
[서평] 지젤 프로인트의 『19세기 프랑스에서의 사진 - 사회학적.미학적 에세이』
파리 편지 2

저자 소개1

발터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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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 출신의 유대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고 번역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 출신의 유대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고 번역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집필하지만 아카데미 세계로 진출하려던 계획은 결국 좌절하고 만다. 같은 해에 알게 된 연인 아샤 라치스 이외에 나중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서 유물론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평, 번역, 방송활동을 펼쳐나간다. 파시즘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유럽에서 스스로를 ‘좌파 아웃사이더’로 이해한 그가 택한 길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에 거리를 두고, 유대 신학적 사유와 유물론적 사유, 신비주의와 계몽적 사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에 바탕을 둔 글쓰기를 통해 현대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었다.

1940년 벤야민은 당시 뉴욕에서 사회연구소(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지원을 받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자결한다. 그로써 그가 13년간 매달렸던 프로젝트, 즉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의 구상을 상부구조(문화) 전체에 적용하여 19세기 자본주의와 모더니티의 근원을 고고학적으로 탐구하려던 필생의 저작 『파사젠베르크』(Das Passagen-Werk)는 미완으로 남는다. 스탈린-히틀러의 밀약을 접한 충격에서 쓴 유물론적 역사철학의 결정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일명 ‘역사철학테제’)는 그가 남긴 최후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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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408g | 145*215*20mm
ISBN13
9788987671826

출판사 리뷰

'현대 매체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게 한 유명한 에세이
이미 벤야민은 『일방통행로』에서 지식 전달과 글쓰기 수단으로서 인쇄된 책이 낡은 형식이 되고 구텐베르크 시대가 종말을 고해가고 있음을 직시하였다. 즉 그는 매체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읽기 행위가 이미지적·단속적·충격적·촉각적 성격을 띠게 되면서 비평적 글쓰기 방식 또한 변화할 수밖에 없음을 통찰하였다. 현대가 매체의 시대라면 그것은 사람들이 현실을 지각할 때 기계장치의 매개에 의존하는 정도가 비상하게 커졌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미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제시한 아우라의 붕괴는 이 에세이에서 다시 한 번 중요한 용어로 등장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여기서 아우라는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존재, 그 진품성과 연관되면서 그러한 일회성과 진품성에 상응하는 전승의 형식과 결부된다. 벤야민은 이 아우라의 마법적 요인을 예술의 원초적 기능인 제의적 기능으로 소급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현대의 대량복제기술 시대에 들어서는 더 이상 그 기능을 할 수 없음에 주목한다. 그가 이제『오늘날의 예술작품이 지닌 새로운 기능들 중에서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드러진 기능은 예술적 기능이지만, 이 예술적 기능 역시 사람들이 나중에 부차적 기능으로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 이유이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의 예술이 '의식'에 바탕을 두었는데, 이제 예술은 다른 실천, 즉 '정치'에 바탕을 두게 된다고 역설한다. 그런 대표적 예술매체로서 벤야민은 사진과 영화에 주목을 한 것이며, 이 책에 실린 대표적 두 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사진의 작은 역사」는 새로운 현대의 '기술'이 어떻게 전통적인 예술개념을 전복시키며, 기술에 의해 지배되는 자연에 대한 충실한 모사로서의 영화에 더욱 주목하는 바를 말해준다.

예술의 복제가능성, 그리고 '아우라의 붕괴' ― 지금 21세기에도 유효한 인식틀로 재주목
또한 그의 정치철학이 기술을 염두에 두면서 집단을 정치적 행동의 중심에 두는 데 핵심이 있는 점을 인식한다면, 그가 복제기술시대의 새로운 매체로서 특히 영화에 주목한 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벤야민이 이 에세이들에서 전개하는 매체미학적 성찰들은 종종 기술결정론, 기술낙관주의로 오해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영화가 지니는 혁명적 기능들이 제대로 성취되기 위해서는 영화를 스타 숭배의 사이비 아우라를 확산시킴으로써 역기능을 조장하는 '영화자본'이 몰수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분명히 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대량복제시대에 걸맞는 대중의 자발성과 자기조직의 역량에 대한 벤야민의 지나친 신뢰의 태도는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거듭 유보적 태도를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대중은 그가 희망하거나 진단한 것만큼 진보적이지 않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짧은 에세이는 마르크스주의적 미학이론의 고전적 텍스트로 수용되었으며, 21세기 새로운 매체가 속속 등장하는 요즈음 들어서 새롭게 각광받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제2권의 해제 18~20쪽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제1판, 제2판, 제3판에 대한 자세한 텍스트 탄생사 가 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총본산인 사회연구소의 정치적 고려 때문에 판본의 다양화가 이루어졌음 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판본은 벤야민이 '정본'이라고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리뷰/한줄평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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