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는 다운시프트로, 부업은 투잡으로 대체되었다. 직장 지상주의는 가족 지상주의를 이기지 못하고, 효율 중심 생활은 문화 중심 생활에 밀리고 있다. 농업적 근면성의 쨍쨍한 해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문화적 세련미의 은은한 달이 떠오르고 있다. 가로수길은 그 명백한 변화의 리트머스다. ---“헝그리 정신의 종말,을 닫으며”에서
다운시프트Downshift., 기어를 저속으로 바꾸다. 이 말은 ‘사회적으로 속도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속도를 내더라도 다른 사람을 의식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많이 벌고 많이 쓰며 살 것인가, 아니면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다. 생활이 각박해질수록 ‘느림’에 대한 갈망은 더욱 강렬해진다. 현대인에게 시간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상품이 되었다. 2002년 데이터 모니터에 따르면 한 해 190만 명이 스트레스를 피해 직장이나 집을 옮겼다. 1천2백만 명이 급여 삭감을 감수하고 근로 시간을 단축했다. 미국의 시대, 헝그리 정신의 시대가 가고 유럽의 시대와 다운시프트 시대가 오고 있다. --- "유럽과 다운시프트”에서
신사동 가로수길의 건물은 대부분은 낡고 작다. 대로변이라 해도 빌딩보다는 주택을 개조한 건물이 많다. 신축보다는 리모델링을 선호한다. 무질서하게 줄지어 늘어선 건물들은 한마디로 들쭉날쭉하다. 발걸음을 건물 안으로 들여놓는다. 맨 처음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천장이다. 콘크리트를 그냥 노출시켜버린 알몸 천장, 숨어 있어야 할 크고 작은 배선과 배관 파이프까지 뭇시선 앞에 당당하다. ‘공사를 마무리하지 않은 건가, 아니면 보수공사중인가’ 곧 바로 의도적인 노출을 눈치 챈다. --- “비.유어.셀프.BE YOURSELF!”에서
인사동과 압구정의 일요일은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이 세 명이 되고 조금은 여유롭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동대문의 일요일도 마찬가지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일요일은 조용하다. 주중보다 더 여유롭다. 명절이면 텅 비어버린 서울의 한산한 거리 풍경을 보는 듯하다. 가로수길 가게 주인들은 대체 이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휴일이면 문화와 휴식 공간을 찾아 발길을 옮기는데 가로수길은 이런 손님조차 마다한다. 가로수길 가게 주인들은 주말을 맞아 오히려 자신의 삶을 즐기고 여유로운 마음을 나눈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장사꾼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가로수길 가게를 통해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는 것이다. ‘즐거운 삶’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 “헝그리정신의 종말”에서
한국 사회가 성장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미국에 대한 짝사랑도 식기 시작했다. 서서히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한국 사회의 눈이 유럽을 보기 시작했다. 그곳은 획일적인 기성품 대신 다양성이 존중 받는 땅이다. 패스트푸드 대신 두세 시간 동안 식탁 문화를 즐기고, 시에스타를 누리는 땅이다. 물질 가치보다는 정신과 전통의 가치를 더 인정하는 땅이다. 물질적으로 여유를 누리게 되자 유럽은 한국인에게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 --- “미국과 헝그리 정신”에서
임신을 한다는 것은 아줌마가 된다는 뜻이다. 직장 여성에게는 신체의 변화가 부담스럽고, 연예인에게는 경력의 끝을 의미했다. 아이는 소중하지만 불러오는 배는 부끄럽게 생각했다. 예전의 임부복은 펑퍼짐하고 헐렁했다. 불러오는 배를 가려줄 박스 스타일이다. 자기표현에 익숙한 세대에게 임신은 예쁘고 아름다운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인식된다. ---“임부복의 변신”에서
과거가 효율로 대변되던 ‘직선의 시대’였다면 현재는 느림을 예찬하는 ‘곡선의 시대’다. 기능 중심의 세계에서 사람 중심의 세계로 변하고 있다. ---“느림과 여유를 지배하는, 인간”에서
주차장이 없는 가로수길을 다니기 위해서는 ‘걷기’가 필수다. 트렌드에 민감한 이들이 가로수길을 찾는다. 그들은 스타일과 편의성이라는 가치 사이에서 고민한다. 하지만 막상 가로수길에 들어서면 스타일에 대한 고민은 필요 없다. 걸어 다녀도 큰 무리가 없다. 바닥에 깔린 폴리우레탄 덕분이다. 나이키 에어맥스처럼 폭신한 폴리우레탄1이 꼼꼼하게 깔려 있다.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고도 한 시간쯤은 너끈히 걸을 수 있다. 개발이 우선이던 시대에는 사람보다는 차가, 건물이, 그것의 기능이 중요했다. 가로수길 바닥에 깔려 있는 폴리우레탄은 과거의 관점에서 벗어났다. 가로수길은 자동차 위주의 거리에서 차츰 차 없는 거리, 자전거 도로, 걷고 싶은 거리로 변하는 시대와 닿아 있다. ---“사람이 주인공인 거리”에서
현대 교통과 자전거의 속도에 관한 재미있는 수치가 있다. 이반 일리히는 인간이 최대의 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 속도가 24킬로미터이며 이것을 넘어서면 그 속도로 이동하기 위해 치르는 대가가 그것으로 얻는 이익을 훨씬 넘어선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효율적이고, 편리하기 위해 이동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동 수단을 이용하기 위해, 즉 자동차를 구입하고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 한계 속도가 24킬로미터인데, 이것이 바로 자전거의 속도다. ---“자동차보다 사람이 우선인 시대”에서
가로수길에는 느림이 존재한다. 느린 발걸음, 차 한 잔의 여유, 그곳의 느림이 더욱 빛나는 것은 가로수길을 둘러싼 압구정과 신사동의 빠름 때문이다. 빠르게 달려오던 자동차도 가로수길에 들어서는 순간 느림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빠름을 중요시하는 이동 수단과 느림을 중요시하는 가로수길의 충돌은 언제나 느림의 승리로 끝난다. 승리한 자는 패자의 고통을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느림의 나라에선 느림이 법이다. ---“느림은 빠름보다 우월하다”에서
고속 성장에 여념이 없던 우리는 숨 돌릴 여유를 찾았다. 세상의 중심에서 당당히 인간의 가치로 눈을 돌렸다. 산책을 즐기고, 단 한 입이라도 유기농 식품을 먹으려고 애쓴다. 아날로그 시대의 ‘정情’은 디지털 시대에 살 냄새 나는 ‘디지로그’를 탄생시켰다. 사회는 인간 중심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폴리우레탄의 폭신한 길을 걷는 가로수길 사람들은 느림과 여유의 우월성을 몸으로 느낀다. 가로수길에서 느림과 여유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이다. --- “사람을 향합니다,를 닫으며”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결혼 적령기를 지난 여성을 부르던 ‘노처녀’라는 낱말 역시 세월의 흐름 속에 묻히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올드 미스’로 불렸던 그들이 자신의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능력 있고 경제력 있는 미혼 여성이라는 뜻의 ‘골드 미스’로 불린다. 결혼보다 직업을 중요하게 여기고, 탄탄한 경제력으로 독립된 삶을 꾸려나가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당당한 ‘골드 미스’. 한국 사회의 인식도 달라졌다. 결혼까지 미루며 노력한 그들의 시간과 능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 "가로수길에서 만난 누나들의 완소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