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해 여름이 우리 청춘의 마지막 여름이었을 것이다. 그 해 한 여름을 보내며 우리는 청소년들의 세계에서 어른들의 세계로 훌쩍 넘어가버렸다. 나(안토니오)는 그 해 여름에 있었던 사건들을 수십 년이 지난 후에 회고하고 있다. 배경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어느 이름 없는 바닷가 소도시, ‘영국인 거리’와 그 주변 동네. 소설은 ‘미친놈’ 미겔 다빌라, ‘멧돼지’ 아마데오 눈니, ‘바람벽’ 파코 그리고 아벨리노 모라타야, 이 네 명의 패거리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미겔은 한쪽 신장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는다. 그리고 수술 후, 입원실의 옆 침대 환자에게서 선물받았던 단테의 《신곡》을 한 줄 한 줄 외우며 시인이 되리라 결심하게 된다.
친구들과 어울려 파코가 몰고 나온 파코 아버지의 승용차를 타고 도시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던 미겔은 어느 날, 수영장에서 ‘키다리’ 룰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발레리나를 꿈꾸지만 가난 때문에 발레 학원을 다니지 못하고 밤이면 마을 술집에 들러 춤을 추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여름이 깊어갈수록 두 사람의 사랑도 깊어만 간다.
그러나 그 여름의 끝자락, 마을에 들른 외판원은 룰리에게 치근덕거리고, 미겔은 마을 타자 학원의 선생인 ‘카르타고 모자를 쓴 여인’에게 유혹당한다. 룰리는 미겔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상처받고, 결국 외판원에게 넘어가고, 또한 미겔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
한동안 만나지 않던 두 사람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초가을의 어느 날 다시 만나기로 한다. 외판원은 그 사실을 알고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장소에 매복해 있다가 미겔을 납치하고, 여기에 미겔을 원수 대하듯 하는 친구 하나가 합류한다. 미겔은 이 둘에게 몰매를 맞은 후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집으로 겨우 돌아오지만 그 후유증으로 그만 죽고 만다.
아마데오 눈니는 아버지에 이어 또 어머니에게서마저도 버림받고 할아버지 집에 얹혀 사는 거의 고아나 다름없는 친구다.
멧돼지는 가라데를 배운다. 이소룡을 영웅으로 생각하고, 방에 이소룡 영화 포스터를 붙여놓고, 무술 잡지를 사서 모은다. 멧돼지는 할아버지와 같은 방을 쓴다. 불알을 훤히 드러내고 다니는 할아버지, 잠을 잘 수 없도록 코를 골아대는 할아버지, 그래서 멧돼지는 가끔 할아버지를 폭행한다. 손자에게 얻어맞은 할아버지는 동정심을 사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털어놓는다.
어느 날 영국에서 마이클이라는 영국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어머니의 편지가 온다. 멧돼지는 고민 끝에 어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으로 갔는데, 새 아버지가 될 사람은 흑인 혼혈이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창녀 일을 해왔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된다.
영국에서 돌아온 멧돼지는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애써 모아둔 무술 잡지를 불태워버리고, 할아버지에게 화내는 일도 드물어졌다. 멧돼지는 하루 종일 뒷마당에서 영국에서 사온 해골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리거나 직접 만든 창을 나무를 향해 던지거나 한다. 어느 날, 멧돼지가 던진 창은 나뭇가지에 걸려 다시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간 시간이 지난 초가을, 비구름이 몰고온 거센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창은 땅으로 떨어지면서 할아버지를 꿰뚫고 땅에 박힌다. 멧돼지는 할아버지 살해용의자로 지목받고 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는다. 할아버지를 미워했고 종종 할아버지를 폭행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혐의를 벗고 풀려난다.
파코는 다른 세 친구와 달리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비록 아버지가 범죄자로 감옥을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파코는 다른 친구들이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닷지 자동차를 몰고 나와 친구들과 함께 이리저리 나돌아다닌다. 파코는 구두 공장에 다니는 ‘몸뚱이’라는 여자 친구와 어울린다.
파코의 아버지는 파코에게 친구들과 헤어지라고 종용하며, 파코가 법학을 공부해 변화사가 되기를 바란다.
파코는 패거리 중에서도 특히 미겔과 단짝이며, 미겔과 룰리, 파코와 몸뚱이, 이렇게 네 사람은 자주 어울린다.
그 여름이 끝나고 이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파코를 만난다. 파코는 예전 아버지의 바람대로, 이제 의젓한 변화사가 되어 그 해 여름에 있었던 일을 나에게 들려준다.
아벨리노 모라타야는 비록 가난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라나 터너라면 사족을 못 쓰던 아벨리노는 취업을 위해 타자 학원에 다닌다. 그는 학원에서 ‘카르타고 모자를 쓴 여인’이라는 여선생을 만나, 여선생의 묘한 매력에 이끌려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여선생은 아벨리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친구 미겔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수십 년이 지난 현재, 아벨리노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미겔 패거리를 부러워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내게도 나름대로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는 항상 미겔 패거리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놈들의 우정, 놈들이 타고 다니던 자동차……. 나는 어떻게든 미겔과 가까워지려고 했으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여름은 끝났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이 되었다. 그 여름이 끝나고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 가야 할 길을 갔다. 우리의 진짜 모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여름에 찍었던 사진을 들여다보며 나는 그 여름을,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가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