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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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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456쪽 | 55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01075204
ISBN10 890107520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우리의 삶 한가운데 그 해 여름이 있었다. 시라고는 한 줄도 쓰지 못한 시인, 수영장 트램펄린 위에서 우단 같은 눈을 빛내며 뛰어놀던 난쟁이, 어느 날 밤 비구름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남자. 하루하루가 피곤에 지친 나뭇잎처럼 우리 위로 떨어져내렸다.
이 소설은 미겔 다빌라와 그의 오른쪽 콩팥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이 소설은 카르타고 투구 아가씨, 멧돼지 아마데오 눈니, 바람벽 파코, 아버지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파코가 타고 다녔던 딸기크림색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소설은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우리는 평생 수많은 사진을 찍어왔다. 그 사진들 중 어떤 것이 우리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마지막 사진 한 장이 우리가 진정 누구였는지 밝혀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다. 미겔 다빌라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그 해 여름이 우리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사진이라는 것을.
--- p.11

레스토랑 안에는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룰리는 미겔리토에게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미겔리토도 알고 있었다. 그에게도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고 있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실제로 미겔리토의 꿈은 서서히 이루어져가고 있었다. 룰리는 천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룰리는 베아트리체처럼 미겔리토에게 천국을 펼쳐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천국을 향해 달려갈 것이었다.
--- p.74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그리고 그 해 여름이 찾아왔다. 룰리 히간테는 스포츠센터 수영장 탈의실에서 미겔리토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한 주 한 주가 흘러갔다. 함께 산책을 하고, 독성이 강한 협죽도의 잎을 손바닥으로 쓸어보고, 후미진 골목길에서 입을 맞추고, 미겔리토의 집에서 몰래 사랑을 나누고, 시를 써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불가능한 꿈을 키워나갔다.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꿈은 자꾸만 다음으로 미루어졌다.
룰리 히간테의 삶은 그런 식으로, 그와 엇비슷하게 흘러갔다. 룰리는 자신이 허공이나 벽에 그리던 그 머나먼 나라에는 결코 가보지 못했다. 그녀의 삶은 그녀가 살던 동네의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 우리는 동네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사춘기와 청년기의 일부를 보내야만 했다. 마침내 그녀의 삶은 우르술라 아줌마의 정원에 핀 장미처럼 동네를 벗어나지 못한 채 조금씩 시들어갔다. 그녀의 청춘에서 떨어져나온 꽃잎이 깨지고 뭉개진 보도블록 위로, 산산이 부서진 아스팔트 위로 떨어져내렸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세월이 흘러 우리가 그 해 여름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을 때, 우리가 서로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얼굴을 떠올릴 수 없었을 때의 일이다.
--- p.123

나는 플랑드르의 벌판에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 나는 몽 누아르 근처 오솔길에서 산책을 즐겼다. 이 오솔길 역시 영국인 거리로 불리고 있었는데, 길을 계속 따라가면 아담한 군인 묘지가 나왔다. 푸른 잔디밭 위에 백여 개의 하얀 돌비석이 나란히 늘어서 있는 묘지는 마치 어느 집 안마당처럼 느껴졌다. 나는 낮은 구릉으로 올라가보았다. 희미한 안개 사이로 릴과 됭케르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보였다. 메테렌 교회의 탑도 볼 수 있었다. 교회 탑은 안개와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듯 보였다. 허망하게 금방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탑. 이런 정경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할 화가는 없을 듯했다. 나는 나 자신의 삶은 어떠했는지,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내가 태어나 자란 도시의 영국인 거리는 아득한 곳에 있었다. 어떤 과정을 거쳐 나는 이곳 영국인 거리에 와 있게 된 걸까. 나는 생각했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우리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까지 한번 들어가보자. 그래, 이 음침한 풍경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눈으로 직접 목격했던 것, 살아 있는 우리의 심장에 대한 글을 써보자. 우리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에 대해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스치고 지나간 풍경화였다.
--- p.417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바로 그 해 여름이 우리 청춘의 마지막 여름이었을 것이다. 그 해 한 여름을 보내며 우리는 청소년들의 세계에서 어른들의 세계로 훌쩍 넘어가버렸다. 나(안토니오)는 그 해 여름에 있었던 사건들을 수십 년이 지난 후에 회고하고 있다. 배경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어느 이름 없는 바닷가 소도시, ‘영국인 거리’와 그 주변 동네. 소설은 ‘미친놈’ 미겔 다빌라, ‘멧돼지’ 아마데오 눈니, ‘바람벽’ 파코 그리고 아벨리노 모라타야, 이 네 명의 패거리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미겔은 한쪽 신장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는다. 그리고 수술 후, 입원실의 옆 침대 환자에게서 선물받았던 단테의 《신곡》을 한 줄 한 줄 외우며 시인이 되리라 결심하게 된다.
친구들과 어울려 파코가 몰고 나온 파코 아버지의 승용차를 타고 도시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던 미겔은 어느 날, 수영장에서 ‘키다리’ 룰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발레리나를 꿈꾸지만 가난 때문에 발레 학원을 다니지 못하고 밤이면 마을 술집에 들러 춤을 추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여름이 깊어갈수록 두 사람의 사랑도 깊어만 간다.
그러나 그 여름의 끝자락, 마을에 들른 외판원은 룰리에게 치근덕거리고, 미겔은 마을 타자 학원의 선생인 ‘카르타고 모자를 쓴 여인’에게 유혹당한다. 룰리는 미겔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상처받고, 결국 외판원에게 넘어가고, 또한 미겔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
한동안 만나지 않던 두 사람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초가을의 어느 날 다시 만나기로 한다. 외판원은 그 사실을 알고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장소에 매복해 있다가 미겔을 납치하고, 여기에 미겔을 원수 대하듯 하는 친구 하나가 합류한다. 미겔은 이 둘에게 몰매를 맞은 후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집으로 겨우 돌아오지만 그 후유증으로 그만 죽고 만다.

아마데오 눈니는 아버지에 이어 또 어머니에게서마저도 버림받고 할아버지 집에 얹혀 사는 거의 고아나 다름없는 친구다.
멧돼지는 가라데를 배운다. 이소룡을 영웅으로 생각하고, 방에 이소룡 영화 포스터를 붙여놓고, 무술 잡지를 사서 모은다. 멧돼지는 할아버지와 같은 방을 쓴다. 불알을 훤히 드러내고 다니는 할아버지, 잠을 잘 수 없도록 코를 골아대는 할아버지, 그래서 멧돼지는 가끔 할아버지를 폭행한다. 손자에게 얻어맞은 할아버지는 동정심을 사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털어놓는다.
어느 날 영국에서 마이클이라는 영국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어머니의 편지가 온다. 멧돼지는 고민 끝에 어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으로 갔는데, 새 아버지가 될 사람은 흑인 혼혈이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창녀 일을 해왔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된다.
영국에서 돌아온 멧돼지는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애써 모아둔 무술 잡지를 불태워버리고, 할아버지에게 화내는 일도 드물어졌다. 멧돼지는 하루 종일 뒷마당에서 영국에서 사온 해골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리거나 직접 만든 창을 나무를 향해 던지거나 한다. 어느 날, 멧돼지가 던진 창은 나뭇가지에 걸려 다시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간 시간이 지난 초가을, 비구름이 몰고온 거센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창은 땅으로 떨어지면서 할아버지를 꿰뚫고 땅에 박힌다. 멧돼지는 할아버지 살해용의자로 지목받고 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는다. 할아버지를 미워했고 종종 할아버지를 폭행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혐의를 벗고 풀려난다.

파코는 다른 세 친구와 달리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비록 아버지가 범죄자로 감옥을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파코는 다른 친구들이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닷지 자동차를 몰고 나와 친구들과 함께 이리저리 나돌아다닌다. 파코는 구두 공장에 다니는 ‘몸뚱이’라는 여자 친구와 어울린다.
파코의 아버지는 파코에게 친구들과 헤어지라고 종용하며, 파코가 법학을 공부해 변화사가 되기를 바란다.
파코는 패거리 중에서도 특히 미겔과 단짝이며, 미겔과 룰리, 파코와 몸뚱이, 이렇게 네 사람은 자주 어울린다.
그 여름이 끝나고 이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파코를 만난다. 파코는 예전 아버지의 바람대로, 이제 의젓한 변화사가 되어 그 해 여름에 있었던 일을 나에게 들려준다.

아벨리노 모라타야는 비록 가난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라나 터너라면 사족을 못 쓰던 아벨리노는 취업을 위해 타자 학원에 다닌다. 그는 학원에서 ‘카르타고 모자를 쓴 여인’이라는 여선생을 만나, 여선생의 묘한 매력에 이끌려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여선생은 아벨리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친구 미겔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수십 년이 지난 현재, 아벨리노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미겔 패거리를 부러워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내게도 나름대로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는 항상 미겔 패거리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놈들의 우정, 놈들이 타고 다니던 자동차……. 나는 어떻게든 미겔과 가까워지려고 했으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여름은 끝났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이 되었다. 그 여름이 끝나고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 가야 할 길을 갔다. 우리의 진짜 모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여름에 찍었던 사진을 들여다보며 나는 그 여름을,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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