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7/1 이상구(flypaper@yes24.com)
이번호가 몇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인물과 사상'이라는 책에 대한 얘기는 꽤 들었던 것 같다. '젊은 신문방송학과 교수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다 해먹는다'는 노골적인 악평에서부터, '저희 학회의 시사토론의 교재로 삼을 만한 뭐 좋은 책이 없을까요?', '음....단행본도 좋지만, 인물과 사상 같은 잡지도 신선하지 않을까?'하는 선후배간의 심각하게 진지한 대화를 옆에서 몰래 엿듣기까지.... 두런 두런 적지 않은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어떤 후배 녀석은 이 책 '인물과 사상'의 창간 정기구독자임을 흐뭇하게 여기고 있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읽는 책이구나...해서... 기회가 되면 나도 한 번 봐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기회는 그렇게 쉽게 찾아 오지 않았다.
그러다, 어찌 어찌...언니와 함께 서점에 들려 한 켠에서 빈둥빈둥 '촘스키, 끝없는 도전'이라는 책을 뒤척거리고 있는데, 언니가 왼손에 책을 하나 들고 나가자고 한다. '책 샀어?'하고 보니 '인물과 사상', 건네 받아 아무 생각없이 책을 펼쳤는데.....드러난 내용은, 방금 빈둥거리며 읽던 책 '촘스키, 끝없는 도전'의 서평 비슷한 글이었다. 신기하기도 하여라! 융이라면 '싱크로니시티', 내지는 '공시성 이론' 운운하며 한껏 멋을 부려 말을 할 만한 아리송한, 하지만 재미난 우연이었다.
그런 재미난 우연과 함께 읽은 이 책, '인물과 사상'의 이번달 주제 역시 가장 굵직한 것은 '조선일보 길들이기'다. '역시...라니! 처음 읽었다면서?' 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처음 읽었지언정, 그래도 줏어 들은건 있어 '조선일보'와 '인물과 사상' 간의 함수관계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음...어째 글이 좀 유치해지기 시작하는군...그러나...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사실 이 책을 그동안 읽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그 '조선일보 길들이기'라는 테마 때문이였는지도 모른다. 쿤데라식으로 말하면, 저자에게 있어서 조선일보는 엄연히 '부도덕한' 언론이다. 그러한 부도덕한 언론에 대한 상대적 정론지로서 역할을 자처하는 책이 이 '인물과 사상'의 조선일보 파헤치기인데, 하지만 나처럼 신문을 거꾸로 읽는(삐딱하게 예각으로 읽는다, 내지는 파헤치며 읽는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뒷면에서부터,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넘겨가며 읽는다는 아주 단순한 뜻) 독자에게는 별 소용이 없는 카테고리이다. 요컨데, 신문이 다 그게 그거지,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차이라고 해봐야 허슬러와 펜트하우스의 차이 정도밖에 더 되겠어?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지니고, 신문의 뒷면에서부터 문화,스포츠,가십,광고 등만 보고 사회, 정치, 경제, 사설 등은 내키는데로 건너 뛰는 나같은 안일한 독자에겐 정론지를 자처하기 위한 강인한 투쟁정신도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만다. 좀 부끄럽긴 하지만, 그렇게 되버리곤 한다. 뭐..나이가 들면 나아지겠지, 했지만...어쨌든 지금도 그러기는 마찬가지다.
그러한 이유로 이번 호 역시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김대중 정권과 관료집단 개혁', '조선일보와 한국 사회의 냄비 근성', '조선일보를 해부한다의 구수환 PD를 말한다'등은 대충 글씨를 읽는 수준으로만 훝었고, 가장 재미있게 봤던 내용은 '21세기의 혁명아 마르코스 부사령관'이라는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 투쟁에 관한 글이었다. 사르트르가 '금세기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불렀던 체게바라를 떠 올리게 하는 이 사내는 그 행동방식이 치밀하고 명료하고 강인하며, 범인들의 상식을 뛰어 넘는 전술을 구사할 줄 안다는 점에서 본받을 점이 참 많다. 게다가 스키 마스크에 파이프 담배를 문 모습은 '20세기 마지막 낭만적 혁명주의자'라는 이름에 걸맞는 꽤 근사한 스타일이다.
또한 페이지 138에 실려 있는 한 자유기고자의 '책 사는 것도 습관이다'라는 글도 흥미롭다. 익명의 이 기고자는 '도서 대여점이 출판사 매출 감소의 주범이 아니듯, 대학가 복사집 또한 불법 복사, 복제의 원흉이 아니다. 문제는 돈주고 책 사면 바보로 여기는 세태와 지적 소유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풍토가 근본적인 원인임'을 지적하며 '책 사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자'고 제안을 한다. 타당한 제안이고 일리 있는 캠페인이다. 하지만 아직은 좀 이른 제안이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유는...말하자면 길어지니 관두고, 여하튼 만화책을 소설 읽는 것보다 더 즐겨 읽는다는 일본에서 만화책을 돈 주고 사서 보는 시스템이 자리잡기까지는 국민소득 만달러 수준에 이르러서야 겨우였다는 것만 봐도 얼추 비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소프트에어의 가격에 대한 거품을 빼지 않고 도덕심, 내지는 애국심에 호소해 정품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자는 캠페인과 비슷하다. 정품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그렇게 싼 편이 아닌것과 마찬가지로, 책값 또한 싼 편은 아니다. 물론 외국에 비해서 비싸지 않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국민소득, 지겹지만 또 IMF, 문화수준, 텍스트에 대한 애착 같은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좀 거칠게 표현됐지만, 그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선 아직은 좀 이르지 않나 하는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내 생각으론 말이다.
P.S.
위에서 언급한 '21세기의 혁명아, 마르코스 부사령관'이라는 송기도 교수의 글은 다음과 같은 인용구로 시작한다.
'우리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래 5백 년 동안 계속 싸워 왔다. 지금은 '이제 그만!'이라고 말할 때다.'(1994년 1월 1일 사빠띠스따 민족 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
아주 전투적인 이 선언문을 '........왔다. 지금은'에서 한 번 쉬고, ''이제 그만!''을 텔레토비에서처럼 읽어 보았더니....후후...참 재미있군요. 한 번 해보세요. 잔뜩 인상 쓰다가, 일순간 방싯방싯 '이제 그만!' 이라구요. 재미없어요? 뭐, 아니면 관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