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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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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2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663쪽 | 960g | 153*224*35mm
ISBN13 9788934928300
ISBN10 893492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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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역자 : 표정훈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번역가, 평론가로 일해 왔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 강좌,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등에서 강의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나의 천년』 『탐서주의자의 책』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등을 저술했고 『중국의 자유 전통』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고대 문명의 환경사』 외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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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기체인 산소를 박탈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집중 학습 과정을 밟을 것이다. 내 지식의 기반에 구멍 하나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극심한 전문화의 시대에, 나는 종합적인 지식을 완벽하게 갖춘 아메리카 대륙 최후의 제너럴리스트가 될 것이다. 나는 아마도 상당히 가능성 있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남자가 될 것이다.---p.14

여전히 브리태니커야말로 정통 중의 정통, 백과사전계의 티파니 명품이었다. 1768년에 탄생한 브리태니커는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중단 없이 출간된 참고 도서라는 영예를 갖고 있다. 그 세월 동안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해리 후디니 같은 이들이 브리태니커에 글을 썼다. 주문을 넣고 며칠 기다리자 상자들이 도착했다. 나는 골판지를 뜯고 새 구입품을 꺼냈다. 참으로 잘 생긴 책들이다. 늑장도 부릴 겸, 나는 책 전부를 한 줄로 쌓아올려 보았다. 내 젖꼭지에 닿았다. 127센티미터! 나는 새로운 적수를 눈앞에 두고 혼자 주먹을 날려 보았다. 오른손 잽을 날리려다 말고 문득 한 발 물러서서 다시 녀석을 바라보았다. 심란한 광경이다. 이걸 다 읽는다는 게 정말 훌륭한 생각일까? 최선의 시간 활용일까? 콜럼비아 대학에서 수업을 듣거나 새 수영복을 사는 등 좀 쉬운 일을 성취하는 게 낫지 않을까? 허나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이미 칼을 빼 들었다. 나는 첫 권을 쿵 하고 허벅지에 올린다. 제법 묵직하게 느껴진다. 박식하게 느껴진다. 근사하게 느껴진다. 표지를 여니 억센 책등이 약간 반항하는 것이 느껴져 또한 기분이 좋다. 그리고 나는 읽기를 시작한다.---p.17, 18

르네 데카르트는 사팔뜨기, 즉 사시 여성에게 성적으로 집착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데카르트가 안쓰러웠다. 17세기 유럽 지식인 집단에 사시 여성이 과연 얼마나 됐겠느냐는 말이다. 데카르트의 사시 여성 취향이 브리태니커에 실린 이유가 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이유란 다분히 철학적 함축을 담고 있다. 데카르트는 『철학 원리』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사팔뜨기 소꿉친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커서도 사시 여성에 이끌리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시 여성 취향의 원인을 깨닫자마자 그 취향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눈을 가진 여성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친절한 브리태니커가 알려주기를, 데카르트의 이 통찰이야말로 그가 “신체를 제어하는 마음의 능력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는 기초”였다. 보다 정확히 하자면 성적 취향을 제어하는 마음의 능력과 자유 의지 정도가 될까? 이런 세상에나! 데카르트의 어린 시절 여자 친구가 서양 사상에 그토록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니!---p.112, 113

당대의 프랑스 지식인이었던 마리 드 구르메라는 여성은 몽테뉴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너무 흥분하여 기절을 했다. 책을 읽다가 기절하는 여성. 얼마나 근사한 정경인가. 현대인은 독서에 진저리가 난 상태다. 나는 빨려 들고, 지겨워하고, 야릇한 기분이 되고, 짜증이 나고, 놀라워 한 적은 있지만, 기절에 필적하는 일은 해보지 못했다. 슬프다. 요즘도 독자들이 책 속의 생각에 흥분하여 기절하곤 했으면 좋겠다. 나를 비롯한 모든 독자들이 독서에 대해 보다 육감적인 반응을 보였으면 좋겠다.---p.386

나는 사 년간 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때 배웠던 모든 지식을 아래의 한 문단과 바꾸라면 기꺼이 바꾸겠다. 로버트 아드리라는 학자가 쓴 글로, 브리태니커에 인용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은 진보한 유인원들이었지, 추락한 천사들이 아니었다. 무기를 갖고 서로 죽이는 유인원들이 우리의 조상이었다. 그러니 무엇에 놀라야 하겠는가? 우리의 살육과 학살과 미사일과 화해를 모르는 군대들에? 아니면 가치가 충분하지 않다 해도 우리가 맺은 협정들에, 자주 연주되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작곡한 교향곡들에, 틈만 나면 전장으로 변한다 해도 우리가 일군 평화로운 토지에, 성취되는 일이 드물다 해도 우리가 꾸는 꿈들에 놀랄 것인가? 인간의 기적은 타락이 아니라 그 장엄한 진보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늘의 별들 사이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우리의 시를 통해서이지, 시체를 통해서가 아닌 것이다.”
아멘. 정말이지 훌륭하다. 내가 몽테뉴를 읽다 쓰러진 여인처럼 책을 읽다 기절하는 일이 있다면 지금이 완벽한 순간이다. 얼마나 힘 있는 문장들인가. 인생의 밝은 면을 보려는 사투, 그것은 브리태니커를 읽을 때나 일상을 살 때 늘 내가 현재진행형으로 치르는 사투이다.
---p.467,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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