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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2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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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543쪽 | 612g | 128*188*35mm
ISBN13 9788901077277
ISBN10 8901077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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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온몸의 근육이 푸딩처럼 흐물거린다. 무릎이 꺾이면서 이불 위로 쓰러졌다. 그때 겐타는 자신이 서프팬츠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무리하지 말고 그냥 편히 쉬시우.”
할머니는 자신이 집 주인이면서도 걱정스러운 듯 방구석에 앉아 머뭇머뭇 손등을 문지르고 있다.
“입고 있던 잠방이는 너무 많이 찢어져서 벗겨서 밖에 널었지.”
할머니의 햇볕에 그을린 뺨이 거무칙칙해졌다. 얼굴이 빨개진 것 같았다. 바다에 들어가면 느슨해지기 때문에 서프 팬츠 끈은 조금 세게 매어야 한다. 오마이갓! 그렇다면 내 걸 봤단 말이야?
“나중에 훈도시를 내어줄테니 그걸 차시우.” “네?”
잘못 들었다는 생각에 할머니의 얼굴을 쳐다봤다. 할머니는 변명하듯 얼른 덧붙였다.
“죽은 영감은 훈도시만 쓰던 사람이라, 우리 집에는 댁이 입었던 것처럼 화려한 속옷은 없다우.”
“영감 게 좀 작을지 모르지만” 겐타의 아랫도리를 흘끗 훔쳐본 할머니가 슬며시 웃었다.
“꽤 훌륭하던 걸……”
--- p.45

심장이 두근거렸다. 비밀 트렁크 속의 또 다른 비밀. 지퍼를 열고 손을 넣어 조심스레 안에 있는 것을 꺼냈다.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 앞으로 온 낡은 편지 한 통, 그리고 반듯하게 접은 작은 옷가지들. 봉투는 너무 낡아서 너덜너덜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지워져서 다 읽을 수는 없었지만 할아버지 이름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숨겨둔 애인? 옛날 사람인 할머니한테도 그런 일이? …… 또 하나는 뜻밖의 물건이었다. 남자의 트렁크스.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바래있었다. 두껍고 겉이 매끈매끈한 감인데 상당히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옛날 사람들도 이런 걸 입었나? 딱 서프 팬츠였다. 꽃무늬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설마, 이건……. 팬츠 안쪽에 방수 주머니가 달려 있다. 주머니 안에 뭔가가 들어 있었다. 미나미는 꺼내 든 것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10엔짜리 동전 같은 색으로 녹슬었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자동차 열쇠였다. 열쇠 머리 부분이 검은색인 토요타 차 키. 그리고 키홀더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이게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 pp.385-386

어디선가 자기 목소리인지 분명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정당한 전쟁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전사(戰死)에는 존귀함도 천함도 없다. 책임자 새끼들 다 나와! 거리 500. 구축함 포대에 서 있는 미군 병사의 모습까지 뚜렷이 보였다. 얼굴이 새빨갰다. 화를 내는 걸까? 아니면 겁먹은 걸까. 가이텐이 명중하자마자 곧바로 탈출하는 거야. 전쟁에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쟁은 죽을 위험이 전혀 없는, 안전한 곳에 있는 놈들이 계획하고 명령하는 거다. 또다시 가까운 거리에 포탄이 떨어졌다. 사고가 뿔뿔이 흩어진 머리는 벌써 날아가 버렸는지 새하얗다. 긴장을 늦추자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발동간을 쥐고 있었다. 미나미, 미나미. 텅 빈 머릿속으로 겐타는 자꾸만 미나미의 이름을 불렀다.
--- pp.534-535

갑자기 무서워졌다. 겐타가 또 물에 빠진 건 아닐까. 겐타는 절대로 죽지 않아. 설령 100미터짜리 거대한 파도가 삼키더라도. 미나미의 세계에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 다만 물에 빠진 충격으로 또다시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면 어쩌나, 그게 걱정이었다. 작년 여름 사고 이후, 겐타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미나미는 쭉 불안했다. 바다에서 돌아온 겐타가 또 다시. 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빨리 돌아와. 다시 이상해져도 까딱없어. 내가 고쳐줄게. 그래, 겐타는 겐타야. 돌아온 겐타가 겐타야-. 그런데 정말 어디까지 나간 걸까. 울고 싶어지는 마음을 달래며 미나미는 수평선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파도 저 멀리서 참깨 알 같은 머리가 보였다. 겐타다. 바람이 밀짚모자를 날려버렸지만 미나미는 뒤돌아보지 않고 파도가 밀려오는 곳까지 달려갔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겐타를 두 팔로 꼭 안아주기 위해서.
--- pp.54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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