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무리하게 밀어붙여서라도 전사자들의 ‘숭고한 희생’을 찬양하고, 그것을 ‘경의와 감사’의 대상으로 미화하는 행위는 모종의 중요한 효과를 만들어낸다.……똑같은 인간인 적병들과 죽고 죽이는 관계로 내몰리면서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비업非業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허망함, 석연치 않은 그 무엇까지 일본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었다는 의미 부여를 통해 충전充塡되고 해소되었던 것이다. 만일 패전 후 일본의 ‘평화와 번영’이 진정 일본군 장병들의 전사 덕분에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라면, 전사는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필요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전사는 국가의 손을 거쳐, 정당화되기도 하는 것이다.
---전사戰死를 정당화하는 효과 p. 26
내가 참배한 목적은 메이지유신 이후로 우리 일본 역사에서 뜻하지 않게 가족을 남겨두고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모든 분들께 충심으로 애도의 마음을 올리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많은 전사자들의 숭고한 희생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나라를 위해 숭고하게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추도의 대상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국민들 속에서 중심적인 시설로 자리 잡고 있는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여 추도의 정성을 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상관저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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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의 논리’는 1930년대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하다. 21세기의 고이즈미 수상은 “메이지유신 이후로 우리 일본 역사에서 뜻하지 않게 가족을 남겨두고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모든 분들”을 ‘숭고한 희생’으로 삼아 ‘경의와 감사’의 대상으로 간주함으로써, 근대 일본의 식민지주의 전체를 “오늘날 일본의 평화와 번영”의 기초로 평가하고 있다.
---회귀하는 ‘야스쿠니 논리’ p. 54
‘조국을 위하여 죽는 일’을 숭고한 희생으로 찬양하는 시스템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이미 충분하게 발달해 있었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또는 고대 로마의 레스 퍼블라카res publica―이 말은 republics의 어원이 된 ‘공공의 것’을 가리키며 ‘국가’의 다른 이름이다.―이러한 도시국가나 국가공동체를 위하여 싸우다 죽은 사람들은 크게 존경을 받았고, 나아가서는 신격화되는 관습이 이미 존재했으며, 늦어도 기원전 5세기까지는 전쟁 영웅의 의사 신격화가 충분하게 발달해 있었다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 영령 추모이다. 마치 야스쿠니에서 영령들이 제신으로 불리는 것처럼, 신격화의 내실과 성질은 다소 차이가 날지 몰라도 어떤 신적인 존재로 추존되고 있는 것은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숭고한 희생’의 연원 p. 185
‘국가교’의 구조가 특정 국가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국민국가의 일반적인 구조라고 가정한다면,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국가교’가 반드시 기독교의 세속화된 형태라고만 말할 수도 없는 것은, 야스쿠니의 논리나 야스쿠니의 불교적 형태의 존재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독교나 신도나 불교 모두 종교로서 무서운 것, 즉 죽음―또는 사망자―의 성화, 성별의 논리 즉 ‘희생의 논리’와 무관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중의 일본에서처럼, 이들 모든 종파가 똘똘 뭉쳐서 국가의 전쟁 정책으로 휘말려 들어가 적극적으로 이에 가담하는 행위가 가능했던 것이다.
---국가교의 보편성 p. 219
한국군은 1960년대에 베트남이 공산주의의 침략에 직면했을 때, 베트남의 자유와 세계평화를 위한 십자군으로 파병되어 베트남을 원조했다. 한국군은 1973년 3월에 군을 철수할 때까지 만 8년 동안 베트콩을 상대로 혁혁한 전공을 거두었고, 나아가 활발한 대민지원활동을 펼쳐 한국군의 위용과 용맹함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냉전체제 하에서 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날카로운 대립관계에 놓여 있던 한국의 ‘반공’이라는 국시에서 보자면, 이 파병은 어쩌면 정말로 ‘십자군’=‘정의의 전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은 미국의 패배로 끝나버린 이 전쟁에서 한국군이 낸 약 5,000명의 전사자는 과연 무엇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었던가?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p. 244
이곳은 5·18민중항쟁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높이 받들기 위하여 전 국민의 참된 마음을 담아 ‘민주의 나무’로 조성한 숲이다. 이곳에 심겨 있는 ‘민주의 나무’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산화하신 5월의 영령들을 찬양하고 5·18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전국화, 세계화로 승화시키는 거목으로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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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주의, 국가주의 국가에서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마저도 국가가 사망자들을 찬미하려 할 때, 마치 판에 박은 듯한 ‘희생’ 논리와 레토릭을 작동시키고 마는 것은 왜일까? 희생 없는 국가 혹은 희생 없는 사회는 애당초부터 존립 불가능한 것일까?
---‘5월의 영령’광주민중항쟁의 기억 p. 253